한 영국 의사가 혈당 걱정 없이 흰 식빵 먹는 법을 동영상 SNS에 소개해 연일 화제다. 의사들은 통상 혈당 스파이크를 유발할 수 있는 흰 빵을 먹지 말라고 조언하는데 NHS 외과 의사가 간단한 과정을 거쳐 흰 빵을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하니 큰 주목을 받는다. 그는 빵을 얼리고 해동한 후 구워 먹으면 혈당을 높이는 빵의 구성 성분이 바뀌어 흰 빵도 일반 빵보다 두 배 이상 혈당이 낮아진다고 주장한다.
흰 빵. 빵의 색깔에 따라 서열이 있던 시절, 흰 빵은 신분과 지위상 최상위의 의미였다. 하얀 밀가루 빵은 귀족과 도시를 상징했고 어두운색의 잡곡빵은 노동자와 시골을 상징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보면 하이디는 스위스 시골 산속에서 검은 빵만 먹다가 도시 프랑크푸르트에 와서 흰 빵을 처음 먹게 된다. 흰 빵의 맛에 반한 하이디는 늘 검은 빵만 먹는 할아버지와 이웃집 할머니를 생각해 매번 식탁에 올라오는 흰 빵을 몰래 챙겨둔다.
빵에 서열을 매겨 차별하는 문화는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당시 의사들은 농민들이 흰 빵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부드러운 고급 음식에 농민들이 익숙하지 않고 특히 농민들은 딱딱한 빵을 먹어야 더 열심히 일한다는 이상한 주장을 했다. 더 나아가 농부가 흰 빵을 먹으면 신의 뜻에 어긋나 사회 기강과 윤리를 해친다며 법으로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잡곡들은 열등한 곡식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영양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층민들의 주식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시 잡곡으로 만든 검은 빵이 질적으로 나쁘기도 했다. 검은 빵에는
톱밥, 진흙, 도토리, 나무껍질 같은 것이 들어가도 표시 나지 않아 거칠게 함부로 만들고 질이 좋지 않았다.
흰 빵을 먹는지, 검은 빵을 먹는지가 경제적 요인이 아닌, 신분과 지위에 의해 결정되니 빵의 색이 정치적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주님의 기도 중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의 양식이 바로 고전 그리스어로 '아르토스'인데 바로 '빵'이다. 그런 빵에도 서열이 있었고 빵의 색으로 사회계층을 구분했다니 우스갯 소리 같지만, 계급과 관계없이 아무 빵이나 먹은 역사는 200년 남짓 된다. 소위 '빵의 평등권'이다.
'빵의 평등권'을 누리는 지금은 어떤가. 흰 빵은 값싼 식품으로 돈 없는 서민들이 대형 할인점 카트에 집어넣는 상품이 되었다. 흰 빵은 혈당 급증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에 따르면 빵을 얼리고 해동하고 굽는 과정에서 실제로 혈당 수치를 크게 낮춰 당뇨병의 위험을 낮추고 체중 감량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SNS로 빵을 얼려 먹는 방법을 소개한 영국 의사가 화제가 된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 의사들은 서민들이 흰 빵을 못 먹게 했는데 지금 영국의 한 의사가 흰 빵을 얼려 먹으라고 건강 조언을 한다. 흰 빵 역사의 아이러니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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