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영한인회와 한인회비
67년 전으로 그슬러 올라간다. 영국 교민들의 역사에 처음 '한인회'가 생긴 것이 1958년이다. 처음부터 한인회란 이름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유학생들이 모여 만들었으니 '재영한국유학생회 在英韓國留學生會'라 했다. 당시는 영국에 사는 모든 한인이 대사관에서 모이는 경우가 잦았다. 대사관이 런던 서남쪽 카도간 스퀘어 Cadogan Square에 있었는데 대사관 회의실에서 그해 삼일절 행사를 했다. 유학생들이 이왕 모였으니 모임을 하나 만들자 해서 결성했다. 67년 전 유학생 6인이 모여 한인회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는 유학생이었지만 훗날 이 6인의 발기인이 정치, 경제, 학문 등 한국사에 남긴 발자취는 대단하다.
당시 영국에 유학하러 갔다면 당연히 내놓으라 하는 금수저였을 테지만 그들이 영국에서 유학생회를 만들 때는 학생 신분인지라 생활이 빠듯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회비를 냈는데 연회비가 10실링 Shilling이었다. 당시는 파운드와 펜스 사이에 실링이란 화폐 단위가 있었다. 1958년의 1파운드를 현재와 비교하면 약 22파운드 정도. 그러니까 연회비 10실링(0.5파운드)는 지금 돈으로 약 11파운드, 6명이 모두 연회비를 냈다면 유학생회가 사용할 수 있는 돈이 1년에 66파운드다.
당시 회비를 얼마 거둬 어디에 사용했다는 등의 기록은 찾을 수 없어 아쉽다.
어쨌거나 1958년 이후로 한인회비는 쭉 있었다. 한인회장을 주재 상사 임원들이 하던 7.80년대나 교민이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던 90년대에도 한인회비를 내든 말든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90년대에는 한인회 이사들이 모여서 회장을 뽑는 관행에 따라 회비를 낸 사람만 한인회장 출마 자격을 갖도록 했다. 한인회비가 한인회장 피선거권의 자격증이었다.
그런데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앞둔 2011년 가을에 한인회비가 기상천외한 신분 변화를 한다. 이때부터 한인회비를 낸 사람에게 한인회장 선거권을 준다. 세금 못 내면 투표권이 없는 형국이 됐다. 한인회비는 곧 선거권, 표가 됐다. 이렇게 되면 표가 필요한 피선거권자가 이를 대신 살 수 있다는 부작용, 소위 매표 행위가 벌어질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돈이 들어오는 유혹을 전임 한인회장이나 출마하는 후보자들이나 모두 고칠 마음이 없었다. 평소 거둘 수 없던 한인회비를 선거 기간에 몽땅 거둘 수 있어 전임 회장은 그만 두는 마당에 이 돈을 챙길 수 있고 회장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은 자기도 2년 후 같은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회장에 당선되고도 이런 악법을 손보자는 정의, 고치자는 요구에 모른 척, 못 들은 척했다.
악법도 법인지라, 선거철에 회비를 내다보니 한인회비가 마치 2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전임 한인회에 주는 보상금 같은 성격이 됐다. 한인회비가 2년 임기 끝 선거기간에 한꺼번에 들어오고 불과 며칠 사이에 이 돈이 모두 사라지는 마법을 부린다. 한인들은 내가 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알고 싶은데 깨끗하게 알려준 경우가 없다.
이번에도 한인회장 선거를 한다고 할까? 공탁금이니, 선거권을 주는 한인회비니 하는 말들이 또 나올까? 한인회를 운영하는 회비가 한인회비인데 한인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으니 어떤 명목으로 한인회비를 운운할까, 벌써 답답하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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