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는 한인들이 모인 영국한인의사협회(KUMA : Korean UK Medical Association)가 있다. 2006년에 결성됐으니 약 20년의 역사를 갖는다. 스스로 말하길 '영국의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하고 영국 내 한국인들의 영국 의료 시스템 이용을 돕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선단체'이다. 이들의 봉사활동 중 대표적인 것이 해마다 열리는 '건강의 날' 행사다. 이는 KUMA 회원인 여러 분야의 한인 의사들이 한인들의 건강 상태를 측정해 치료 및 처방전을 조언해 주고 한인 대상 건강 세미나를 열어 질병 예방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올해 10회째인데 5월 10일 토요일, 뉴몰든 Methodist Church에서 열린다.
영국에서 의사가 된 한인 의사가 지금은 무척 많은데 100년 전 1925년에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윤치왕(1895~1982년) 박사가 처음으로 알려져 있다. 산부인과, 외과 의사이자 교육자이며 군의관으로 육군 예비역 소장 출신이다. 대한제국의 병조판서 윤웅렬의 아들로 개화파 정치인 겸 기독교 운동가 윤치호가 이복형이며 제4대 대통령 윤보선이 5촌 조카다.
영국 의사가 된 계기가 좀 특별하다. 1911년 105인 사건으로 형 윤치호가 총독부에 투옥되자 무력 투쟁을 결심하고 중국의 사관학교에 입학할 계획을 세웠다. 상하이로 가 신규식 등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니 군인이 될 한국인은 많으니 독립 후 나라에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며 유학을 추천했다.
이에 윤치왕은 1914년 칭다오에서 독일 배를 타고 40일을 항해, 사우샘프턴에 도착했다. 버밍햄에서 영어 개인교습을 받아 중고등학교 과정을 수료하고 1919년 글래스고 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했다. 당시 한 반에 3백 명 정도로 외국인이 10여 명. 시험이 어려워 반 정도만 졸업했다. 당시 글래스고 의대는 5년이었고 인턴, 레지던트 제도가 없었다.
당연히 인종차별을 경험했는데 특히 졸업하려면 4학년 때 산원에 나가 신생아를 받아야 했는데 동양인이라 기피했다고 한다. 실습할 대상이 없어 잉글랜드 신생아 받기를 포기하고, 방학 때 아일랜드에서 하숙하면서 아일랜드 신생아 50여 명을 받았다. 그러나 덕분에 '영국의 빈민가나 각 지방의 특성 및 의식 구조를 알 수 있는 경험이었다'고 한다.
1925년 영국 의사 면허증을 받고 영국 왕립아동병원에 1년간 근무하다 1927년 귀국한다. 1930년 전문 지식을 쌓으려 다시 영국을 방문해 토마스병원 등에서 연수하다 귀국한다. 그는 의사협회 회장, 제2군관구사령관, 세브란스 병원장 등을 역임했다.
올해 건강의날 행사에는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약사까지 함께해 더욱 풍성하게 꾸며질 계획이라고 한다. 특히 올해의 주제가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러운 증상들'이라니 조금 민감할 수 있는 증상을 한인 의사에게 알리고 속 시원하게 해결할 기회이기도 하다. 올해는 윤치왕 박사가 처음 영국 의사가 된 지 100년 되는 해다. 영국 한인 의사 100년史, 뜻깊은 해에 뜻깊은 행사가 되겠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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