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 Snow White
디즈니에서 만든 실사 영화 <백설공주> 런던 시사회와 레드카펫 행사가 취소됐는데 주인공 백설공주역을 한 레이첼 제글러 Rachel Anne Zegler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레이첼 제글러는 어머니가 콜롬비아인이고 아버지가 폴란드인이라 라틴계의 구릿빛 피부를 물려받았다. 그래서 대중들은 그녀가 ‘백설 Snow White'의 이미지에 맞지 않다고 캐스팅 단계부터 비난했다. 지난해 첫 예고편이 올랐을 때부터 부정적 댓글이 많았다. '좋아요'가 10만 개, '싫어요'는 130개가 넘었다. 이번 런던 행사 취소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로 디즈니 측의 고민이 짐작 간다.
백설공주는 그림 형제가 주로 독일에서 구전되던 민담을 수집하여 편찬한 책 <그림 동화>에 나오는 동화다. 이 책에는 <헨젤과 그레텔>, <개구리 왕자> 등 우리가 흔히 아는 동화들이 있다. 책을 만든 그림 형제(형은 야코프 그림 Jacob Grimm, 동생은 빌헬름 그림 Wilhelm Grimm)는 둘 다 19세기 동화 작가 겸 언어학자였다. 나폴레옹 전쟁을 겪으며 독일인의 정체성을 깨우치고자 독일 문학을 연구했고 민담을 책으로 엮었다. 백설공주는 53번째 이야기다.
진실만을 말하는 마법 거울, 누가 예쁘니? 7살이 된 백설공주가 더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그 내용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세뇌당해 우리가 상상하는 공주 옷은 늘 알록달록하다. 그리고 디즈니 때문에 공주가 뽀뽀로 깨어났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다르다. 독 사과를 먹은 공주를 난쟁이들이 유리관에 보관했는데 왕자가 이를 구입해 갖고 가다가 덤불에서 휘청거리다 목구멍에서 독 사과가 빠져나와 공주가 살아난다. 독이 문제가 아니라 사과가 목에 걸린 거다. 결론은 잔혹해서 각색된 경우가 많다. 왕자와 공주의 결혼식에 참석한 왕비에게 달군 쇠로 만든 신발을 신기는 고통을 줘서 죽인다는 내용이다. 원래 그림 형제가 수집한 민담에는 나쁜 왕비는 계모가 아니라 친엄마였다고. 동화로 부적절해서 계모로 바꿨다고 한다.
원작에서는 눈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져 '백설'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묘사되지만, 이번 영화에서 눈이 내리는 날 태어나 '백설'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런데도 못마땅한 이들은 주인공의 피부색을 빗대 백설공주가 아니라 '흑설공주'라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한다. 공교롭게도 흑설공주는 미국의 여성학자인 바바라 워커의 동화에 나온다. 제목에서 느낌 오듯, 백설공주를 비틀어 만든 설정으로 흑설공주는 딱히 영리하진 않아도 아름답고 마음씨도 착한 아가씨. 계모인 새 왕비는 현명한 데다 인품도 훌륭한 인물. 외모지상주의와 계모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며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썼다.
이번 디즈니의 영화 <백설공주>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과 논란은 사실 주인공 본인의 실언에서 시작됐다는 말이 무성하다. 레이첼 제글러는 "원작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원작은 공주를 스토킹하는 왕자와 그런 왕자를 좋아하는 공주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이상한 이야기다"라며 망언에 가까운 말들을 했다. 그래서 "백설공주의 문제는 인종도 각색도 아닌 제글러의 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원작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없다'는 비난의 또 다른 표현이었을까.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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