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영대한민국대사관, '이한응 열사' 증손자 이기준 교수 초청 추모 행사 개최
지난 30일, 주영대한민국대사관에서 뜻깊은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김흥종 주영 한국 대사가 대한제국 시절 국권 침탈에 맞서다 순국한 '이한응 열사'의 증손자인 이기준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와 가족을 대사관으로 초청한 것입니다. 이날 김 대사와 이 교수는 대사관 1층 로비 정면에 설치된 이한응 열사의 동상 앞에서 고인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며 함께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한응 열사는 1904~1905년 주영공사관 대리공사로 재직하며 일제의 국권 침탈 책동에 맞서 마지막까지 치열한 외교적 노력을 다하다가, 1905년 5월 12일 런던에서 자결로써 순국한 인물입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인정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 바 있습니다.
이번 행사 소식을 접한 뒤, 필자는 김종백 작가의 저서 <한영수교 140년 만에 처음 쓰는 영국한인사>를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책 속의 기록과 사진들을 통해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와 이 동상이 세워지기까지 현지 동포들이 흘린 눈물겨운 노력의 발자취를 다시금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책의 기록에 따르면, 이한응 열사 흉상은 1993년 광복절 기념식을 기념해 재영 한인사회의 자발적인 모금과 영국 유학 중이던 한국인 조각가의 재능 기부로 제작된 조형물입니다. 과거에는 대사관 내 공간 문제로 구석진 곳에 방치되어 있다가, 대사관 건물 리모델링을 통해 방문객 누구나 가장 먼저 마주할 수 있는 1층 로비 정면에 정중히 재배치되어 대사관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이한응 열사의 엄숙한 표정을 만나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영국 현지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추진 중인 이한응 열사 순국지 '블루 플라크(Blue Plaque)' 부착 운동의 중요성을 생생히 짚어내고 있습니다. '블루 플라크'란 영국 정부가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인물의 거주지나 사건 발생지 외벽에 부착하는 푸른색 원형 명패(문화재 지정 표지)를 말합니다. 현재 런던 도심 내 칼 마르크스 생가 등 세계적 명소에 부착되어 관광객과 시민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현재 한인사회가 블루 플라크 부착을 요구하고 있는 곳은 이한응 열사의 순국지이자 옛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인 '런던 얼스코트 트레보버 로드 4번지(4 Trebovir Road, SW5)'입니다. 해당 건물은 내부가 아파트로 개조되었으나 외관만큼은 120년 전 그날의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강조하듯, 이곳에 블루 플라크가 걸릴 경우 재영 한인들에게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현지인 및 세계 관광객들에게는 한국의 역사와 유적지를 알리는 소중한 홍보 자산이 될 것입니다. 물론 영국 정부의 블루 플라크 승인을 받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최종 부착 권한이 영국 관청에 있는 만큼, 철저한 역사적 검증과 함께 수많은 이들의 서명 및 청원이 필수적입니다.
책 속 기록을 보며 한 가지 아쉬운 점도 눈에 띕니다. 매년 열사의 순국일인 5월 12일을 전후해 한인사회 일각에서 추모 행사를 제안하거나 기념식을 치러왔다는 기록이 보이지만, 정작 올해 실제로 5월 12일 즈음에 추모 행사가 대사관 등에서 제대로 진행되었는지는 명확히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홍보나 소식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재영 한인사회 전체를 대대적으로 초청해 치르는 대규모 공식 행사의 형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측됩니다. 역사적 의미가 깊은 날인 만큼, 동포사회의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적극적인 홍보와 소통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외교관 이한응이 타국 땅에서 외롭게 눈을 감은 지 120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의 마지막 외교 무대였던 옛 공사관 건물이 그저 평범한 아파트로 잊히게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영국 런던 한복판에 당당히 '푸른 명패'를 새겨 넣기 위해 현지 동포사회와 우리 정부가 함께 힘을 모으는 일, 그것이야말로 시대를 뛰어넘어 고귀한 목숨을 바친 선열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보답이자 기억의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오마이뉴스 이택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