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닥친 폭염으로 온열 질환 사망자가 폭증하자 에어컨 보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환경보호를 명목으로 무분별한 냉방 확대를 금지하는 정치적 방향과 충돌하고 있다.
지난달 말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덮친 런던의 어느 지방의회는 아파트 등 주택에 설치된 에어컨을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단속에 나섰다. 창문을 열거나 선풍기를 트는 등 온도를 내리는 방법을 다하고도 더위를 견딜 수 없으면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다.
실제로 북런던 캠던에서는 가정집에 설치된 에어컨 두 대를 영구적으로 철거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천장에 선풍기가 없으니, 위의 규정을 어기고 에어컨을 설치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영국의 에어컨 보급률은 약 4.3%로 106만 가구 정도에 불과하다.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남유럽이 50%, 프랑스는 24%다.
이처럼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이 낮은 것은 기후 관련 정책도 걸림돌이지만 건축 규제로 인한 요인이 강하다. 건축적·역사적 가치가 있는 지역을 지키기 위해 지정된 보존 구역의 경우 에어컨을 설치하려면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런던시에만 28곳의 보존 구역이 있다.
그런데 최근 유럽에서만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유럽 각국 정부가 폭염 대책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에어컨 보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병원, 요양시설, 학교, 대중교통 등 취약계층이 이용하는 시설에는 에어컨 보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레딩대 연구진에 따르면 “저소득층, 75세 이상 고령자, 한부모 가구 등 더위로부터 가장 큰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 정작 냉방을 이용할 가능성이 낮은 ‘냉방 격차’(cooling divide)를 겪고 있어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기후과학자 클로이 브리미콤 박사는 "폭염 속에서 우리는 데이터센터를 식히는 데는 막대한 전력과 물을 쓰면서 정작 사람을 보호하는 데는 인색하다"며 "AI보다 사람의 생명이 더 소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WHO 유럽사무소장 한스 클루게는 "유럽은 에어컨과 같은 기계식 냉방보다는 그늘, 단열, 냉방 센터 등 장기적인 해결책에 투입돼 왔다. 모두 제 나름 역할을 한다. 의학적으로 에어컨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에어컨을 보급하도록 보장하는 동시에, 모든 사람을 위해 나무와 녹색 지붕, 더 시원한 건물 등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라고 했다.
한인헤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