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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페르시아와의 인연

hherald 2026.03.09 16:48 조회 수 : 7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역사 Historia'는 서양 최초의 역사서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쓴 것인데 들은 걸 그냥 적은 게 아니고 구전 口傳을 모으고 현장을 방문해 직접 보고 들은 정보와 발로 쓴 생생한 기록이다. 신화 같은 요소를 배제했기 때문에 편견이 없다. 그래서 그의 기록 속 페르시아는 단순한 침략자가 아니라 대제국의 규모와 문화를 가진 입체적인 존재다. 서구의 눈에 세계를 삼킬 만큼 거대하고 두려운 세력이었던 페르시아를 헤로도토스는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있는 그대로 기술했다. 사실 페르시아는 정복지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는 관용이 있었고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를 가진 품격 있는 국가였다. 

 

할리우드 영화 '300'처럼 페르시아의 왕은 악의 화신, 병사는 괴물이나 야만인으로 만든 건 역사의 왜곡이다. 이런 왜곡은 근본적으로 페르시아 제국, 지금의 이란에 대한 오래된 공포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지금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비이성적 집단으로 만들어 공격하는 것도 동양의 위협, 페르시아 제국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 속에 깔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전쟁을 선과 악의 구분법으로 단순히 재단할 수 없는 문제다. 

 

페르시아는 우리나라에서도 인연이 깊다. 2013년 영국 국립도서관 희귀 문서 중에서 발견된 '쿠쉬나메'라는 고대 페르시아 서사시에 나오는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 나라가 망하자, 중국을 거쳐 서기 650년경 신라에 온다. 태종 무열왕(김춘추) 시대쯤이다. 신라 공주 프라랑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페르시아로 돌아온다. 둘 사이에 아들 페레이둔이 태어나 이란의 구국 영웅이 된다. 이 이야기는 물론 픽션이지만 당시 신라가 페르시아와 활발히 교류했다는 증거다. 통일신라 시대에 아랍인들이 건너와 살았다는 아랍어 기록이 있으며, 경주 고분에서는 국보 193호인 봉수형 페르시아 유리병이 나올 정도다. 귀화한 페르시아인들도 있었는데 신라 향가 鄕歌 처용가에 나오는 처용을 이란인으로 추정하는 것도 그렇다.
1950년대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했던 가요 '페르샤 왕자'에 나오는 '별을 보고 점을 치는 페르샤 왕자'는 아라비아 공주를 사랑한다. 중동에 관한 지식이 없던 시절 이슬람 시아파 왕자와 수니파 공주의 택도 없는 사랑을 만들어 냈지만 노래 속 페르샤 왕자는 마법사 공주와 함께 전쟁 후 피폐한 마음을 달래고 고단함을 잊게 하는 위로가 됐다. 
서울 강남구에 테헤란로가 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있다. 한국과 관계가 우호적이었던 팔레비 왕조 시절인 1977년에 도로명 교환에 합의했다. 테헤란로는 1990년에는 국내 벤처기업의 성지였고 현재도 스타트업의 메카다.

 

페르시아 제국의 부활을 두려워하는 잠재적 공포 유전자가 서구에 있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는 것이 그런 맥락이라는 분석... 뭐든 차지하고, 신라 시대부터 우리와의 인연은 나쁘지 않다. 그래서 선과 악의 이분법이 맞지 않다는 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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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를 깨운다. 무모한 전쟁의 와중에 페르시아의 추억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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