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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리버풀은 18~19세기 영국 산업혁명의 중심지였고 대서양 무역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항구였다. 대영 제국의 확장에 큰 역할을 한 이 항구 도시는 1807년 노예무역이 폐지될 때까지 노예를 실어 나르고 들여오는 중심지이기도 했다. 1801년에 7만 8,000명이던 인구는 1901년에 68만 5,000명으로 증가할 만큼 이 시기 비약적인 발전을 해 20세기 초에는 대영 제국 제2의 도시가 됐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리버풀은 유럽 어느 도시보다 심한 폭격을 당해 황폐해졌다. 그런데 다행히 빠른 복구를 했고 그나마 피해가 덜했던 구항만 지역은 세계 무역 중심지로서 근대식 건물과 부두 등이 잘 보존돼 있다. 그래서 리버풀의 해양 무역도시는 해양 무역 문화의 발전을 보여 주는 훌륭한 예로 꼽힌다. 당연한 결과로 2004년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리버풀 수변구역에 상업 시설, 주거 시설이 무수히 개발됐다. 프리미어리그 에버튼의 새 축구경기장을 신축하는 과정에 선착장과 석조 구조물 등을 훼손하기도 했다. 따라서 유네스코는 18~19세기 세계 무역 중심지이자 근대 항구 시설과 건축물이 있는 해양산업 도시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고 경고했고 결국 2021년 세계유산 등재를 취소했다.
 
리버풀 얘기를 길게 한 건 우리에게 타산지석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1호인 종묘 앞에 최고 142m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해서 정부(문체부)와 서울시가 다투고 있다. 종묘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그럼 종묘 때문에 낙후한 주변 지역을 그냥 두느냐는 주장이 대립한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인정해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했다고 홈페이지에 설명한다. 뛰어난 건축적 가치는 '동양의 파르테논'이라 불릴 정도다. 그런데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그 가치가 사라져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될 수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유산이 등재 당시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진정성, 완전성을 상실했다고 판단되면 목록에서 삭제될 수 있다. 현재까지 세계유산이 등재 취소된 사례는 2007년 오만의 아라비안 오릭스 보호구역, 2009년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 그리고 2021년 리버풀 등 모두 3건이다. 오만의 아라비아오릭스 보호구역은 멸종위기종인 아라비아오릭스를 보호하기 위해 1994년 지정했는데 오만 정부가 보호구역 면적을 90%까지 줄이면서 서식지 파괴와 밀렵의 위협이 커져 취소됐다. 18~19세기 낭만주의 문화, 건축 경관이 조성된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대규모 현대 교량 건설로 취소했다. 
 
종묘 인근에 건축해도 된다는 입장은 리버풀의 경우 유적지 인근에 고층 건물을 세운 것이 아니라 유적지 자체를 훼손했기 때문에 세계유산이 취소된 것이라 주장한다. 즉 리버풀은 종묘 인근에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종묘 안에 건물을 지은 셈이라고 한다. 따라서 리버풀과 종묘는 다르다는 태도다. 리버풀과 달리 런던의 '런던타워'는 초고층 빌딩이 인근에 들어섰지만, 문화재와 거리, 경관을 고려한 설계로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서로의 주장만 있고 대화가 없다고 한다. ‘세계유산’도 중요하고 '낙후 지역 개발'도 중요하다. 그런데 리버풀과 종묘가 같은지 다른지, 제 주장을 하는 사이사이에 상대방의 설명도 들어야 해결할 길을 찾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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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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