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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뿌리

hherald 2010.07.19 13:50 조회 수 : 10607

이젠 꽃바구니를 사다 걸어도 ‘개 발의 편자-Horseshoe’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집집마다 경쟁을 하듯이 현관에 꽃바구니를 걸어놓는다. 아내와 동네를 산책하면서 이집 저집 꽃바구니를 심사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산책은 언제나 그랬듯이 싸움으로 끝이 나고 만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집도 꽃바구니를 걸어놓고 사람답게 살자’는 이야기다. 물론 꽃바구니를 걸어야 사람답게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딸랑 꽃바구니만 사다 건다고 끝이 날 문제가 아니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집 앞 가든을 그대로 둔 채 꽃바구니만 사다 걸면, 누가 봐도 개 발의 편자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여보, 이제 우리도 꽃바구니 사다 걸까?”
집 앞에서 일명 노가다土方를 뛰고 있는 나를 바라보던 아내의 표정이 정리 된 가든처럼 환하다. 한가한 토요일 아침 내내 흐뭇한 표정이다. 누가 얄미운 여자 아니랄까 봐 커피잔을 손에 들고 십장什長처럼 내 앞을 왔다갔다한다. 그러더니 겨우 마시다 남은 커피를 내게 건네며 하는 말이었다.
“꽃바구니?”

 

 

사실 내가 먼저 그럴 생각이었다. 앞 가든 정리가 끝나는대로, 월요일쯤 가든센터에서 보기 좋게 꾸며놓은 꽃바구니를 사다 걸어놓고 퇴근하는 아내를 놀래 켜 줄 심산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김이 샌 느낌이다. 시켜서 한 일과 마음이 내켜서 한 일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좀 유치해서 그런지 이 나이가 들어서도 아직까지 내 앞에서 감동하는 아내의 모습이 보고 싶다.
꽃바구니를 사다 거는 일은 나중으로 미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B&Q에 가보니 체리토마토로 만든 바구니가 있었다. 언젠가 ‘데일리 텔레그라프’에서 ‘Best tomatoes for hanging baskets’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기사와 함께 붙여놓았던 멋진 토마토바구니 사진이 생각났다. 그렇지 않아도 늦은 감이 있었지만 뒷마당에 옮겨 심을만한 토마토 모종을 찾고 있던 중이었는데, 토마토 모종에 꽃바구니까지 해결할 수 있는 1타 2피,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속된 말로 가격까지 착했다. 7.99 파운드.

 

 

그런데 이게 웬 횡재인가! 붙어있는 바코드를 스캔 하는데 1.75파운드가 찍힌다. 다시 가든코너로 달려가서 트롤리에 3개를 더 싣고 와서 계산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직원이 뭔가 잘 못 된 것이 아니냐며 확인하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토마토 모종을 심지 않은 빈 바구니 가격이 5.99파운드이니 여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도 했다. 영국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한 둘인가? 몇 년 전에는 노르웨이 가는 비행기표를 단돈 1파운드씩에 구입해서 여름휴가를 다녀왔는데...

 

 

바구니 하나는 현관에 걸고 나머지 세 개는 뒷마당 사과나무에 보기 좋게 매달았다. 옆집 사는 마크가 토마토바구니를 보더니 자기 집 앞에 심어놓은 토마토와 바꾸자며 너스레를 떤다. “짜식~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쌩뚱맞게 현관에 걸린 토마토바구니를 보더니 아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원하는 화려한 꽃바구니는 다음 주에 한국출장을 다녀오는 귀가 길에 걸어놓을 생각이다.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부는 하루였다. 토마토바구니에 물을 주려고 나갔더니 아뿔싸... 바람에 가지 두 개가 부러지고 잎새가 말라붙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잘 자라고 있었는데 그 잘난 바람에 어이없이 망가진 것이다. 옆집 토마토 역시 꼴이 사납기는 매 한가지였다. 토마토전용 비료를 물어 섞어 뿌려주고 부러진 가지는 잘라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현관문을 열고나가 토마토바구니를 들여다본다. 많이 회복은 되었지만 앓고 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옆집 토마토를 보니 몰골 사납던 놈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하게 살아나 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어쩌면 인생살이와 그렇게도 닮은 꼴일까!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 잘난 바람에 가지도 부러지고 인생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마크네 토마토처럼 그런 바람쯤은 훌훌 털어내고 더 강하게 일어서서 또 다른 바람을 향해 도전장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허울좋게 허공에 매달린 ‘Hanging Basket’ 같은 인생을 꿈꾸며 산다. 그러나 인생 어느 지점에서 바람을 만나면 그 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깊이 있는 뿌리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뿌리는 꽃을 피울 때 더 악착같은 세월을 보내야 하는 아픔이다. 더구나 사람들의 눈 앞에서 허울좋은 위선으로 허공에 매달려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숨겨진 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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