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 많은 집을 ‘잘 사는 집’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사실 이 나이가 되도록 단 한 번도 그 이유가 궁금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생선을 먹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아침부터 뚱딴지 같은 생각이 덜컥 마음에 걸려버렸다. 나는 잘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70년대에 방방곡곡 울려 퍼지던 노래가사는 확실히 우리민족의 독특한 가치관을 보여준다. ‘잘 사는 것’은 누가 뭐래도 떵떵 거리며 잘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민족의 무의식을 지배한다.
프랑스의 카르카손 미술관에는 자크 가믈랭(Jacques Gamelin)의 유화가 한 점 걸려있다.
그림의 중앙에는 멋진 갈색 말을 타고 빈민촌에 나타난 젊은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갑옷에 붉은망또를 두른 그의 화려한 행차는 그림 우편 한 구석에 걸인처럼 주저앉아있는 남루한 노인 앞에 멈춰 섰다.
알렉산더와 디오게네스(Alexandre et Diogene 1763년作).
그림의 제목이다.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알렉산더 대왕과 디오게네스의 유명한 에피소드를 그려놓은 것이 분명하다.
르부르 박물관에 가면 비슷한 구도를 가진 피에르 퓌제(Pierre Puget)의 대리석 조각(1693년경의 作品)을 볼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말에서 내리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자크 가믈랭의 그림과 너무나도 구도가 비슷하다. 요즘 같았으면 충분히 표절시비가 일어나고도 남을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두 사람모두 알렉산더 대왕과 디오게네스의 유명한 에피소드를 자신의 작품세계에 끌어들이고 싶었을 만큼 그 일화가 감동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가 정복전쟁을 통해 세상의 대왕으로 군림하던 시절, 패전국의 거지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알렉산더 대왕이 사신을 보내 디오게네스를 궁궐에 초대하지만 디오게네스는 대왕의 초대를 번번이 거절했다.
알렉산더와 디오게네스의 그 유명한 일화는 알렉산더가 친히 ‘그의 집-술통’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왕이 디오게네스의 술통집에 도착했을 때 디오게네스는 가믈랭의 그림에서처럼 다리를 길게 뻗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왕의 행차에 눈을 뜬 그에게 대왕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을 들어주겠다’는 제안을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그러하시면 자리를 비켜주십시오... 왕 때문에 따뜻한 햇빛이 가려집니다” 그리고는 돌아누워 다시 잠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그 일화는 무려 23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묘사한 작품들과 함께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사실 디오게네스는 시니시즘(Cynicism)으로 불리는 그의 철학세계보다 대왕과의 에피소드로 더 많이 알려진 특이한 철학자이다. 그만큼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심오하다는 뜻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전쟁은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욕구를 보여준다. ‘좀 더 좀 더’의 노예가 된 대왕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대왕의 행차 앞에서조차 시니컬한 삶을 살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 화가 자크 가믈랭이 그리고 싶었던 ‘잘 사는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비교를 통한 상대적 행복의 소유자 알렉산더. 그리고 마음 가운데 스스로 행복의 씨앗을 뿌린 절대적 행복의 소유자 디오게네스.
“If I were not Alexander, then I should wish to be Diogenes”
알렉산더가 훗날 디오게네스와의 만남을 추억하면서 신하들에게 했던 말이다.
“만약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If I were not Alexander’라는 말은 정말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나는 그 안에서 알렉산더의 어쩌지 못할 야망과 욕구를 발견하게 된다. 사실 그는 ‘빈손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두 팔을 관 밖으로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주라’는 유언으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룬다.
‘
잘 산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정말 나도 한 번 잘 살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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