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을 판매하는 서점이 빛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동네마다 있었던 작은 서점은 이젠 찾아볼 수 없습니다. 종이책이 힘을 잃어 간다는 것은 그만큼 시대가 변했다는 증거입니다. 과거에는 펜의 힘을 믿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조용하게 보낼지라도 그의 글은 세상을 뒤흔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치 욕망에 휩싸인 정치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글을 써내는 작가들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의 외침이 지극히 미세한 촛불에 불과할지라도 역사적으로 촛불이 세상이 바꾼 것은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현대는 팬의 힘이 아닌 영상의 힘이 더 큰 힘을 말합니다. 그러나 영상이 힘이 있다 할지라도 영상은 글로써 시작됩니다. 글이 가진 힘이란 작은 촛불이라 할지라도 거대한 태양을 이길 때도 있게 됩니다. 작은 촛불은 화려한 곳에서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고요하고 고즈넉하여 그 누구도 찾지 않은 깊은 산속이나 골방에서 만들어집니다. 세상과 등졌으나 세상을 훤히 들여다보는 혜안을 가진 자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골방에 들어가서야 세상을 볼 수 있는 진정한 객관적인 지혜의 눈이 생기게 됩니다. 세상을 알기 위해서 세상 한복판에서는 오히려 세상을 향해 흡수될 뿐 진실의 길을 잃게 됩니다.
세상은 넓습니다. 그 넓은 세상을 발로 밟아야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깊은 골방에 있을지라도 세상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 있을지라도 세상을 볼 수 있는 혜안에서 나온 글은 거대한 숲에서 벗어나서 숲 전체를 볼 수 있게 합니다. 깊숙한 숲에서는 오히려 숲을 볼 수 없습니다.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게 됩니다. 숲을 벗어났을 때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혜안이 생깁니다. 먼 곳에서 숲을 봐야 하지만 때론 숲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숲에 몸을 담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독만권서여행만리’(讀萬卷書如行萬)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작가는 두 가지 일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여행하다 보면 세상이 보이고 사람 사는 인생사의 깊은 골짜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좌옹서성 가진관천하’(坐擁書城 可盡觀天下) 라는 말은 “책의 성에 앉으면 천하가 보인다.”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만권의 책을 읽으면 신의 경지에 다다른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과거엔 만권의 책을 접한다는 것은 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하기에 만권의 책이 있다는 의미로 전라북도 고창에 있는 “만권루”라는 현곡정사에 옛 선비들이 공부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실제로 만권의 책이 존재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만권루라는 표현은 세상의 모든 책을 가졌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종이책으로 만권을 수집한다는 것이라든가 만권을 읽는다는 것은 실로 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는 종이책에서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종이책에서 벗어나니 만권 이상의 책을 작은 저장기기에 넣어 다닐 수 있게 됩니다. 좋은 점도 있지만 글 행간에서 읽히는 작가의 숨소리를 듣는 것이 줄어든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영국의 쇼핑몰에 있는 서점을 한동안 서성거렸습니다. 책을 사기 위함이 아니라 서점이 주는 냄새를 음미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책을 선택하여 읽기보다는 책이 사람을 선택할 때가 있음은 책을 즐겨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특이한 현상입니다.
책을 사랑하고 책 읽기를 습관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늘 다짐하는 나만의 철학이 있습니다. 책의 숲에서 길 잃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을 빼앗기지 않고 책이 나를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책을 읽기 위해 애를 쓰는 겁니다. 책을 읽는 것은 작가의 인생 행간을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은 책으로서 소중합니다. 물론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책이 더 많습니다. 서점에 꽂힐 공간을 얻지 못해서 빛이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창고에서 숨을 죽일지라도 그 책이 탄생하는 과정은 작가의 인생의 고액을 농축한 것입니다.
책은 마치 입맛을 북돋우는 감칠맛 나게 하는 조미료를 뿌려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순수한 영혼에서 순수한 글이 나옵니다.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바르게 보지 않고 비뚤어진 생각으로 가치관에서 나오는 글은 입맛만 자극하여 건강을 해치게 하는 조미료 냄새가 가득합니다. 서점에 전시된 책들은 마치 내용과는 관계없이 지나는 독자들에게 호객하기 위한 강렬한 문구로 장식돼 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을 집필한 작가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읽는 자도 예의를 갖추어야 하고, 글을 쓰는 사람도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고전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정장 차림으로 읽었다 합니다. 글에 대해, 글을 쓴 작가에 대해 예를 갖추기 위함입니다. 우리네 선비들도 글을 읽을 때도 정자세로 앉아서 옷을 바르게 차려입고 읽는 것은 상식입니다. 깊이 있는 책을 읽을 때는 비스듬히 누워서 읽는 것보다는 정 자세로 읽을 때 기억이 오래 남아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단순한 읽음의 행위가 아니라 저자의 인생 행간을 읽는 기쁨을 얻는 일입니다. 광화문의 교보문고 입구에 새겨진 문구가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쇠퇴해져 가는 서점가를 둘러 보면서 책을 만들기에 자기 영혼을 바친 작가들의 인생 행간을 둘러 보는 기쁨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