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혀 영국적이지 않은 사태’가 영국에서 벌어졌다. 영국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인종문제와 무슬림 혐오로 인한 극심한 난동 사태가 벌어져 한 주 넘게 시끄러웠다. 그러나 세계 언론이 대단하게 보도한 것과는 달리 영국인의 일상이 위협을 받는 정도는 아니었고 주말을 지나면서 사태는 진정되었다.
사건은 알려진 바와 같이 리버풀 북부의 사우스포트라는 해변마을에서 일어난 ‘묻지마’ 칼부림 살인사건 때문이었다. 지난 7월 29일 미국 인기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음악에 맞춰 요가와 춤을 배우던 댄스교실에 17살 청년이 쳐들어와 칼을 휘둘렀다. 그의 만행에 6살, 7살, 9살 여자아이 3명이 희생되었다. 8명의 어린이와 2명의 어른들도 경상을 입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여쁜 어린이들이 묻지마 살해를 당하자 영국인들은 좀 심하게 말해 눈이 뒤집혔다. 급기야 흥분한 사람들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특히 잉글랜드방어연맹(EDL·English Defence League) 같은 극우파 단체 소셜미디어(SNS)에는 범인이 2023년에 건너온 무슬림 망명자(asylum seeker)라는 거짓 정보가 떠 불에 기름을 부었다. 진실은 전혀 달랐다. 17세의 범인은 웨일스에서 태어난 영국인이었다. 단지 부모가 아프리카 르완다 출신일 뿐이었다. SNS의 정보는 거짓이었고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분노 부른 소녀 세 명의 죽음
사건 다음날부터 런던은 물론 잉글랜드 지방도시에서 사람들이 모이면서 결국 흥분한 군중들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스크와 난민, 망명자 숙소로 몰려가서 불을 지르고 벽돌을 던졌다. 무슬림이 주인인 동네 상점 유리창에 화염병이 날아들어 불이 났다. 난민 비자 신청을 도와주는 인권변호사 사무실도 습격을 받았고 그런 변호사 사무실 주소가 SNS를 통해 퍼졌다. 습격을 공개적으로 부추기는 문자들이 난무했다.
‘우리는 아파트를 돌려받기를 원한다’
특히 잉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심했다. 영국 언론은 극우단체가 영국에 상존하던 반(反)이민 정서에 기름을 부은 사태라고 판단했다. 시위대가 내건 슬로건은 간단하고 효과적이었다. 그들의 플래카드에는 ‘불법이민자들에게 아파트를 주지 말고, 그들을 돕지 말고, 추방하라’라고 쓰여 있었다. 또 ‘우리는 우리들의 아파트를 돌려받기를 요구한다’라는 문구도 보였다.
런던과 하틀풀, 맨체스터 등에서는 시위가 곧바로 난동으로 번졌다. 주로 모스크와 난민들의 숙소인 동네 호텔이 공격받았다. 차량과 도서관 등도 공격받았고, 무슬림과 관련 없는 중동인들이 경영하는 상점과 식당이 공격받아 부서지고 약탈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시위를 주도하는 전국적 단체는 없었으나 소규모 SNS 모임을 통해 시위 날짜와 장소 등이 퍼져나갔다. 특히 소수의 대형 SNS 인플루언서들이 거짓 정보를 퍼나르면서 사태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영국 사회는 이번 사태를 무척 심각하게 바라보면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에 참여한 시위대의 대부분이 극우단체와는 전혀 연결돼 있지 않던 일반 시민이었다는 점에 영국인들의 충격이 크다. 심지어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족들도 난동 현장에서 잉글랜드 국기인 성조지 적색 십자가기를 흔들면서 시위를 응원했다. 난동 목적으로 참가한 시위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이민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내려는 순진한 이유에서 시위에 참가한 것이다. 폭력적인 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BBC 기자에게 시위대 중 한 명은 “이건 정말 진짜 야만적인 행동이다.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폭력과 난동에 분명히 반대하는 일도 벌어졌다. 시위 참가자 중 소수의 난동꾼을 제외한 대다수는 평소 자신들의 불만을 나타내려고 나온 시민들이었음이 여기서도 엿보인다.
극우파 거물, 휴가지에서 거짓 문자로 선동
영향력이 큰 인플루언서들이 퍼나르는 거짓 정보를 믿고 영국 정부의 이민 정책에 항의하고자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특히 X(옛 트위터)에 영국 최악의 극우분자로 유명한 EDL 설립자 토미 로빈슨이 퍼나른 거짓 정보에 현혹되어 무슬림과 난민들로부터 영국을 보호하자는 선동에 속은 사람들도 많았다. 이번 시위를 처음으로 주동한 로빈슨은 자신은 사이프러스에서 휴가를 즐기면서 100여만 X 추종자들에게 거짓 정보를 퍼나르면서 난동을 부추겼다. 로빈슨은 “그들에게 오지 말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들은 계속해서 온다. 더 이상의 이민자를 받지 말자. 얼굴에 마스크를 하고 오라. 이 문자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뿌려라”라고 사태를 부추겼다. 로빈슨의 추종자들이 선동 문자를 퍼나르면서 플리무스, 맨체스터, 선더랜드, 벨파스트 등의 도시로도 난동이 번졌다. 난민들이 기숙하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홀리데이인호텔 직원들은 난동꾼들의 난입에 대비해 냉장고와 가구들로 문을 안에서 막고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호텔 직원들은 그때가 일생에서 가장 공포에 떨던 순간이었다고 기자들에게 증언했다.
이번 사태는 결국 불법 난민과 정치적 망명자들에게 투입되는 막대한 정부 예산에 불만이 쌓인 영국인들을 극우 단체들이 교묘하게 이용해 벌어진 일이다. 평소 데일리미러, 데일리텔레그래프, 더선 같은 영국 우익 언론들이 이런 막대한 예산 실태를 집중적으로 보도해 일반인들의 불만을 키운 것도 한 원인이 됐다. 우익 언론들의 집중적인 보도로 쌓인 반이민 정서가 묻지마 칼부림 사건을 계기로 터져나온 셈이다. 지난 총선에서 보수당이 참패 끝에 13년 만에 정권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반보수당 정서의 근저에도 이런 이민 정책 실패가 도사리고 있었다.
난민에 쏟아붓는 막대한 예산이 도화선
그렇다고 해서 영국 정부에 뾰족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매일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씩 목숨을 걸고 도버해협을 건너오는 불법 난민들과 조국의 분쟁을 이유로 영국으로 도망쳐 온 정치적 망명자들을 무조건 내칠 수도 없으니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영국법은 이런 이민자들과 망명자들을 무조건 추방할 수 없게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영국인들 전체에 퍼져 있는 인도주의적 정서도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인도주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원치 않는 이민자들을 일정 기간 보살피기 위해 그야말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영국에는 지난 3월 기준 무려 7만8907명의 망명 신청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중 3만5000여명이 영국 전역의 267개 호텔에서 기숙하고 있다. 최근 가장 많은 망명 대기자들이 몰렸던 건 작년 9월이었는데 그 숫자가 400여개 호텔에 5만6000여명이나 됐다. 작년 한 해 이들을 위해 지불된 예산이 무려 39억6000만파운드(약 6조9300억원)로 2018년 예산의 6배에 이르렀다. 난민과 망명자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자 영국은 프랑스에 난민들이 도버해협을 건너오지 못하게 하는 경비로 올해부터 2년간 4억7600만파운드(약 8330억원)를 줄 방침이다.
그런데도 프랑스가 제대로 국경 해안 관리를 못해서 그런지 여전히 매일 난민들이 보트, 심지어는 튜브까지 타고 해협을 건너오고 있다. 그러는 중 사고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8월 11일에도 도버해협을 건너려는 난민 2명이 익사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날 53명의 난민은 프랑스 해상경찰에 의해 구조됐다. 작년에는 익사한 난민의 숫자가 25명이나 됐다.
현재 영국 하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매일 도착하는 난민 숫자가 자세히 나온다. 예를 들면 지난 8월 5일(보트 2척) 114명, 8월 6일 355명(11척), 8월 11일 703명(11척)이 도착한 걸로 기록돼 있다. 영국에 들어온 난민 숫자는 2022년 4만5774명, 2023년 2만9437명, 올해 6월 24일까지 1만2901명으로 기록돼 있다.
이런 난민들을 적을 대하듯 무작정 쫓아낼 수 없다는 데 영국 정부는 곤혹스러워한다. 아직도 세계 강대국에 속하는 영국이 인도주의를 내팽개치고 난민과 망명자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내키지 않아도 난민들을 받고 보살펴야 한다. 물론 금액 자체로 보면 엄청난 금액이지만 영국의 경제력으로 보면 아직은 감당할 범위 내이긴 하다.
난민 예산, 영국 전체 예산의 0.3% 불과
올해 영국 전체 예산은 1조 2260억파운드(약 2145조5000억원)로 올해 난민 경비(6조9300억원)는 이 중 0.3% 불과하다. 올해 대외원조 예산 83억파운드(약 14조5250억원)와 비교해도 난민 예산은 그중 47%밖에 되지 않는다. 영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순위는 세계 6위다. 같은 6위권인 독일 인구가 8380만명인 데 비해 영국은 6697만명이니 강대국으로서의 임무를 안 할 수 없다. 선진국과 강대국 노릇에는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하는 고달픈 임무가 늘 포함돼 있다.
난민 예산을 항목별로 따져보면 호텔 기숙비도 만만치 않다. 난민 1명이 기숙하는 한 달 호텔비가 752만원이나 된다. 이는 영국 건강보험서비스(NHS) 간호사 한 달 월급 2782파운드(약 486만원)의 거의 1.5배이다. 이런 자극적인 숫자를 우익 언론들이 써대니 일반 영국인들 사이에서 반이민 정서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국에 건너온 난민이나 망명자들의 실상은 아직 참혹하다. 자격 심사를 받는 동안 거의 목숨만 부지하는 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다. 숙소 경비는 거액이지만 이들이 영국 정부로부터 지급받는 돈은 정말 굶어죽지 않을 수준으로 주당 49.18파운드(약 8만6065원)를 받는다. 이 돈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옷도 사입고 해야 한다. 영국 같은 고물가 사회에서 1개월 34만원으로 어떻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 만일 숙소에서 식사를 제공받으면 주당 8.86파운드(약 1만5505원)를 받기 때문에 한 달에 6만2000원의 돈으로 생활해야 한다. 이 돈으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난민 심사를 받는 동안에는 노동을 할 수 없고 마냥 기다려야 한다. 보통 1년이 걸리는 심사 후에야 체류 허가를 받아 노동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 이때부터 무료 건강보험 혜택도 받고 아동들은 무료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거짓 정보에 쉽게 빠진 40~50대 백인 남성
이제 이번 난동 사태의 이면을 더 깊숙하게 들여다보자. 영국 언론들은 이번 사태가 벌어진 근본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분석을 하고 있다.
1. 난동 현장에 나온 대다수의 난동꾼들은 40~50대 중년 백인 남성들이었다. 극단주의에 빠진 중년 백인 노동자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음모론에 약하고 대신 공동체에서는 목소리가 큰 영향력 있는 동네 유지들이다. 이들을 두고 ‘중년의 극단주의화(middle-aged radicalization)’라는 설명도 나오고 있다. 또 이들은 디지털 세대(digital native)가 아니어서 겨우 인터넷을 통해 뉴스나 볼 줄 아는 정도다. 그래서 거짓 정보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려낼 줄도 모른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분별력이 없어 SNS 선동에 취약하다. 그래서 어린 소녀들이 살해를 당하자 눈에 불이 붙어 거리로 뛰어나와 난동을 피웠다는 것이다. 이들 대다수가 문신을 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2. 영국 고위 정치인 중 일부가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슬람 혐오(Islamophobia)를 부추긴 탓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표적인 고위 정치인이 보리스 존슨 전 총리다. 존슨은 총리가 되기 직전 데일리텔레그래프에 쓴 칼럼에서 “무슬림 여성이 쓰는 부르카가 마치 우체통 같다”는 식으로 조롱했다. 그 칼럼이 게재된 이후 무슬림 신자들을 향한 공격이 375%가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존슨의 무슬림 혐오는 존슨을 보수당 당수 경선에서 유리하게 만들어 결국 당수가 됐고 총리까지 올랐다. 존슨의 이런 이슬람에 대한 시선은 3년이 넘는 재임기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3. 난동을 피운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남자다움을 으스댔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종차별 언행이 영국의 여인들과 아이들을 무슬림 이민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자부하고 이것을 과장한다. 그런 착각과 자기 암시에 세뇌되어 난동을 부렸다는 것이다.
4. 지금까지 거의 제대로 지적되지 않았던 영국 국수주의의 문제점이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영국 전체가 아니라 잉글랜드 내의 오래된 우월주의가 이번 사태의 숨은 원인이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웃한 웨일스와 스코틀랜드에서는 전혀 난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5. 이번 시위 사태로 체포돼 재판을 받는 대부분의 난동꾼들은 육체노동자들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고달픈 일상의 문제에 대한 이들의 고뇌가 누군가에 대한 비난으로 향했고, 결국 이민자들과 인종차별과 종교 문제에서 희생양을 찾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들은 살해당한 아동과 같은 나이의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SNS에 올라온 거짓 정보에 쉽게 빠진 채 이민자와 무슬림을 향한 분노를 폭발했다는 것이다.
영국 언론들은 이번 사태가 1주일 만에 진정된 이유도 분석 중이다. 무엇보다 1981년 런던 브릭스톤 폭동, 2011년 런던 폭동 등에서 교훈을 얻은 경찰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의 시위대 진압 기술과 함께 법원의 재빠른 재판 또한 큰 역할을 했음을 언론은 지적한다. 시위가 처음 벌어진 후 3~4일 만에 경찰은 779명을 체포했고 그중 349명을 기소했다. 법원은 이들이 체포된 당일이나 다음날 바로 판결을 내렸다. SNS를 통해 난민 호텔을 공격하자는 등으로 난동을 부추기거나 범인이 작년에 건너온 무슬림 청년이었다는 식의 거짓정보를 퍼뜨린 21세 청년은 2년, 26세 청년은 38개월, 28세 청년은 20개월의 형을 받았다. 14살 소년 한 명은 경관을 공격한 혐의로 소년범구치소에 2년간 갇혀 있어야 한다. 30세의 청년은 인종차별 발언으로 현장에서 체포되어 8개월형을 받았다. 이들은 정말 별 생각 없이 시위에 참가해 난동을 부렸다가 경찰의 안면인식 기술에 의해 체포되어 직장도 잃고 장기 수형의 중형을 받았다. 이들 대부분은 법정에서 흐느끼고 울었다.
물론 이번 사태도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으로 번질 기세를 보였지만 의외로 1주일 남짓 만에 진정되었다.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 난동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시위대에 대한 중형 재판 결과가 속속 언론에 공개되자 난동꾼들은 조심스럽게 발을 빼는 분위기다. 아무것도 모르고 끼어든 시민들 역시 시위대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재판이 이루어지고 판결이 나올 수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법원은 “우선 난동에 대비하는 직원을 많이 배치했고, 거의 컨베이어벨트 식의 재판이 이루어졌다”라고 답했다. 또 “만일 피고인이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고 사안이 중요하면 판결은 당일로도 가능하다”고도 했다.
난동꾼들 막아선 용감한 시민들
이번 사태에 대한 역풍도 거세게 불고 있다. 영국 각지에서 인종차별 반대, 난민 환영, 극우 반대 등의 시위대가 조직되어 전국적으로 맞불처럼 번진 것이다. 난동꾼들의 숫자가 수백이었다면 반인종차별, 친이민 시위대는 수천에 이르렀다. 이들의 숫자도 결국 난동꾼들의 사기를 꺾었다. 이들이 내건 대표적 슬로건은 ‘파시즘과 인종차별주의를 박살내자(Smash Fascism & Racism)’라는 것이었다. 브리스톨에서는 난동꾼들이 난민들과 망명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숙소를 습격하려 하자 인근 주민들이 무리를 지어 막아서서 난입을 못하게 하는 일도 벌어졌다. 버밍엄에서는 난동꾼들이 무슬림 상점을 약탈하려 하자 주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계열 청년 주민들이 못하게 막았다.
영국 언론은 종교의 차이를 불문하고 난동을 막은 청년들의 행동을 칭찬했다. 현재 영국 전역에서는 이번 사태의 여파로 평화적인 반인종차별, 반폭력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뉴캐슬, 미들즈브러, 아크레딩턴, 셰필드, 버밍엄, 브리스톨, 사우스앤드, 사우샘프턴, 브라이턴, 노스 핀클리, 월섬스토, 하로 같은 도시에서 난동꾼들의 몇 배는 되는 인원들이 이제 거리로 나섰다.
난동이 잦아들면서 역풍까지 거세게 불자 영국 사회는 난동 이전보다 사회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해 불행 중 다행이라는 안도의 분위기마저 감돈다. 실제 극우에 대한 반감은 난동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지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9수 만에 하원에 입성하면서 제도권 정치로 들어온 극우파 영국개혁당 나이젤 파라지는 난동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엄청난 후폭풍을 맞았다. 수천 명의 반인종차별 시위대가 영국개혁당 당사로 몰려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난동으로 피해를 입은 모스크에는 인근 주민들은 물론 멀리서까지 위문 방문객이 밀려들고 심지어 후원금까지 몰려들고 있다. 난동꾼들에 의해 피해를 당한 상점들의 부서진 유리창과 문, 담을 무료로 고쳐주려는 도움의 손길도 잇따르고 있다. 대다수 영국인들은 자신은 그런 인종차별주의자나 반무슬림 정서와는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동시에 무슬림 공동체가 받은 피해에 동정적이라는 의사를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영국 무슬림 사회는 이를 ‘빵을 부순다(break bread)’라고 표현했다. 음식을 같이 나누는 평화를 위한 손길을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가장 고함을 많이 지르던 시위대 일원일수록 소동이 가라앉은 후 가장 많이 반성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제일 먼저 피해자를 찾아와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고, 음식을 나누고,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시위대들이 던지려고 부숴놓은 모스크 벽돌담을 동네 청년들이 쌓는 사진도 영국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에 대해 피해 모스크 지도자는 ‘아름다운 소통(beautiful interactions)’이라는 칭찬도 했다. 비가 온 다음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속담 같은 일이 영국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다.
주간조선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보라여행사 대표. IM컨설팅 대표. 영국 공인 문화예술해설사.
저서: 여왕은 떠나고 총리는 바뀐다 <영국 왕실+정치 편> (2024) 핫하고 힙한 영국(2022),
두터운 유럽(2021), 유럽문화탐사(2015), 영국인 재발견1,2 (2013/2015), 영국인 발견(2010)
연재: 주간조선 권석하의 영국통신, 조선일보 권석하의 런던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