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중국 컨테이너 화물선 '이스탄불 브릿지'호가 영국 최대 상업항인 펠릭스토우항에 도착했다. 지난달 22일 중국 저장성 닝보·저우산항을 떠난 지 20일 만이다. 18일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도중에 폭풍을 만나 이틀이 지연됐다. 그래도 통상 40일 정도 걸리는 뱃길을 20일만에 왔다. 수에즈운하를 통한 것이 아니라 북극항로를 통해 왔기 때문이다.
북극 길은 이제 더 이상 탐험을 하던 지역이 아니다. 가성비가 좋은 무역로, 얼음 실크로드, 빙상 실크로드로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 근처에서 화물선이 수에즈운하 항로로 항해하면 유럽까지 40일 이상 걸렸을 뱃길을 20일만 에 간다. 친이란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선박을 향해 공격했던 '홍해 위기'와 같은 일이 또 생겨 아예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서 간다면 50일 이상 걸리는 길이다.
'빙상 실크로드'인 북동항로 Northeast passage는 북극해 중 러시아 인근을 지나는 항로다. 유명한 탐험가 아문센이 개척한 북서항로는 대서양에서 북아메리카의 북쪽 해안을 따르는 항로다. 북동항로가 현재는 국제법상 공해이기는 하나 빙산과 유빙 때문에 항로로 사용하기 어려웠고 다니려면 쇄빙선의 에스코트를 받아야 해서 쇄빙선을 갖고 있는 러시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아 배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넓어져 항로에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빙하가 녹아 쇄빙선의 도움이 필요없고 2040년 정도가 되면 북극이라도 여름철에는 얼음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돼 북동항로를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진다.
북극 항로의 최고 장점은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운항 거리가 짧아진다는 것. 우리나라의 경우 부산항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북극 항로로 운항하면 약 1만 5000km, 수에즈 운하를 거치면 약 2만 2000km다. 항해 기간도 33일에서 18일로 줄어든다. 거리가 짧으니 당연히 연료비도 줄어든다
또한 이 길에는 해적이 없다. 북극해를 면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으로 이런 나라에서 해적이 나올 리 없고 나와도 국가에서 알아서 처리할 거다. 또한 이 뱃길은 춥고 인구가 거의 없어 소말리아처럼 쪽배 타고 해적질할 여건이 못 된다.
지구온난화의 가속으로 2030년쯤에는 북극항로의 연중 운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지리적으로 북극항로의 최대 수혜자는 동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이다. 중국은 유럽과 연결하는 육·해상 실크로드, 일대일로의 북극 확장판으로 이번에 빙상 실크로드에 올랐다. 그리고 그 첫 화물선이 영국의 항구에 도착했다.
우리나라도 이번 정부 출범과 함께 북극항로 개척에 대한 적극적인 추진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빙상 실크로드는 단순한 해상 물류만이 아니다. 극지 과학 연구, 기후 변화 대응, 국제 협력까지 포괄한다. 대통령도 "북극항로를 개척하여 부산항을 거점항구로 만들겠다"라고 공약했었는데 북극항로의 상시개통을 통해 부산항이 환적항으로서 번성하고, 쇄빙선 수주로 우리나라 조선업이 부흥하는 것,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북극항로를 통하면 열에 민감한 제품이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한다. 부산에서 출발해 신선한 상태로 영국 항구에 도착한 우리 상품을 받는 날을 기다려 본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
» | 빙상 실크로드 | hherald | 2025.10.20 |
635 | 위대한 개츠비 곡선 | hherald | 2025.10.13 |
634 | "종사를 보살피옵소서" | hherald | 2025.10.06 |
633 | 재영한인회와 정관 | hherald | 2025.09.15 |
632 | 재영한인회와 한인회비 | hherald | 2025.09.08 |
631 | 영국의 한인타운과 재영한인회 | hherald | 2025.09.01 |
630 | 스포츠맨 독립운동가들의 영국과의 인연 | hherald | 2025.08.18 |
629 | 신천지는 한류가 아니다 | hherald | 2025.08.11 |
628 | 쿨케이션 coolcation | hherald | 2025.08.04 |
627 | 유라시아 철도와 육상 실크로드의 기착지 | hherald | 2025.07.21 |
626 | 7월 14일은 '북한이탈주민의 날' | hherald | 2025.07.14 |
625 | 한인종합회관과 재영한인교육기금 | hherald | 2025.07.07 |
624 | 백만장자 millionaire | hherald | 2025.06.23 |
623 | 돈 만진 손, 안 씻으면 벌금 | hherald | 2025.06.09 |
622 | 트럼프는 '타고(TACO)'를 모른다? | hherald | 2025.06.02 |
621 | 아디다스가 아크로폴리스를 밟다니... | hherald | 2025.05.19 |
620 | 레오 14세 교황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 hherald | 2025.05.12 |
619 | 영국 한인 의사 100년史 | hherald | 2025.04.28 |
618 | 관세 공포, 사재기 광풍 | hherald | 2025.04.14 |
617 | 찬탄이든 반탄이든 제발 서로를 좀 존중하자 | hherald | 2025.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