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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98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윌리엄 블레이크
Ancient of Day/ William Blake

그림.JPG
 
자기만의 방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자기만의 방이 있다. 그 방은 유리로 만든 방처럼 깨지기도 쉽고, 장난감으로 만든 방처럼 부숴지기도 쉽고, 고무로 만든 방처럼 변하기도 쉽다. 인간이라면 저마다 가슴 속에 하나씩 지니고 사는 그 방들을 세상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늘 초인종을 누른다. 귀찮은 외판원처럼 세상은 끊임없이 찾아와 세상의 경험과 지혜를 답습하고 세상의 신상품들을 구매할 것을 거세게 강요한다. 그것들을 거부하고 뿌리치는 일은 쉽지 않은 범사에 해당한다. 예술가인 화가들은 어떨까? 그들도 세상이 권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그들의 영혼도 세상이 가르쳐준 미술이라는 틀로부터 구속당하고 있다. 화가들도 세상이 알아주는 미술을 하기 위하여 세상이 보내는 외판원들에게 세뇌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화가의 개성이란, 얼마만큼 세상이 보낸 외판원들로부터 세뇌 당하지 않고 자신의 미술을 지켰는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진정한 화가란 지구 상의 수십억 인간들과 차별화되는 단 한 사람만의 작업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상의 시류와 유행을 극복한 그 작업이 가상하게 보일 때 우리는 그를 ‘개성 넘치는 화가’라고 불러준다. 서양 미술사상 가장 개성 넘치는 화가가 누구일까, 라는 속절없는 질문이 존재한다면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영국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를 호명할 것 같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화가이상으로 시인으로 유명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낭만이라는 거대한 물줄기 속에서도 독보적으로 자신의 개성을 지켜낸 돋보이는 인물이다. 개인의 감성을 중시했던 낭만주의 속에서도 유별난 개성의 소유자였다. 젊은 시절 한때 시인이 되어 볼 궁리를 했던 필자는 오래도록 그를 중요한 시인으로만 기억했다. 그의 유명한 시 “호랑이여, 호랑이여, 밤의 숲에서…(The Tyger)”를 아기였던 아들에게 읽어주며 흥분하곤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가 시인역할보다 더 돋보이는 화가의 역할을 해낸 인물이라는 사실에 기꺼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은 주로 시집의 삽화로 유명하다. 에칭에 수채물감을 입힌 그의 삽화들은 대영박물관에서 질리도록 감상할 수 있다. 테이트 브리튼에도 그의 작품들이 풍성한 편이다. 시대가 원하는 그림과는 동떨어진 기이한 소재를 이상한 형식으로 표현했던 그가 당대에 평가 받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동시대의 화가들이 추구하는 것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여러 가지 신비스러운 경험을 소중히 붙잡았다. 블레이크는 종교와 관련된 이상한 체험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님을 보았다던지, 여러 예언자들을 보았다던지 하는 환상을 본 체험들이다. 물론 블레이크는 종교관 마저 개성 넘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그는 당시 거의 왕따 수준의 대접을 받거나 미친놈 수준의 기인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현대 미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블레이크는 다르다. 현대미술에서는 남과 차별화되는 개성이야말로 미술의 가장 중요한 가치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블레이크의 개성을 올바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 하기 쉬운 오해 두 가지를 먼저 풀어버려야 한다. 하나는 그가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독학파라는 오해다. 그의 그림들이 보여주는 테크닉적 오류들이 만들어내는 그런 오해는 그가 충분한 전문적 미술교육을 받은 바 있지만, 배운 대로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그가 마치 종교적으로 불순했던 인물이라는 오해다. 그가 비판했던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억압하는 교회라고 보아야 한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만이 깊은 믿음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의 삽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1794, 대영박물관)’는 컴퍼스를 쥐고 세상을 만드는 하나님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제목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Ancient of Day)’는 성경의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용어로 환상 속의 하나님을 지칭한다. 블레이크 자신이 보았던 환상을 그린듯한 그림이다. 블레이크는 기독교와 그리스신화를 섞은듯한 자신만의 신화를 지니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존재하지만 모두가 만나려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다. 백발과 긴 수염을 휘날리며 진지하게 세상을 만들고 있는 노인이 바로 그분이다. 블레이크는 자신의 환상에 등장했던 하나님을 다니엘의 환상을 기억해내며 보다 객관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듯 하다. 블레이크 아니라면 누구도 이렇게 그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조그만 그림은 아마도 미술 사상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삽화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 삽화가 들어 있는 블레이크의 시집 ‘유럽 예언서(Europe, A Prophecy)’를 펼쳐 드는 순간, 담당 직원은 당신에게 “페이지를 넘길 때는 조심스럽게 종이의 끝을 잡아 주세요.”라고 나지막이 주문할 것이다. 대영박물관의 그 엄숙한 열람실에서 가장 이상한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를 만나는 일은, 런던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행위의 하나다. 그 방에는 자기만의 방에 갇혀 있던 블레이크의 이상한 숨소리가 아직도 먼지로 날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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