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만나는 런던-82
시민/ 리차드 해밀턴
The Citizen/ Richard Hamilton
오늘날의 인간을 그토록……
이십 세기, 미국이 지구역사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서양문화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간다. 미국이 세계문화의 주역으로 자리잡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팝(Popular)이라는 공룡 같은 대중음악이다. 미국의 엄청난 ‘규모의 미(美)’와 영어라는 만국공통어의 위력으로 세계의 귀를 장악하게 되는 팝은 흑인음악과 영국민요라는 두 가지 중요한 뿌리를 지니고 있다. 흑인음악의 전통은 아프리카대륙 전체에서 찾아야 하므로, 영국은 현대를 지배하는 팝음악의 가장 큰 지분을 지닌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팝음악의 전세계적 확장에 자극 받아 발생하는 미술사조가 ‘팝아트’다. 미국이 현대미술의 주도권을 쥐는데 선봉장역할을 했던 팝아트의 시작은 뜻밖에 영국화가들이었다. (런던을 불태우며 대중음악에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선사한 펑크(Punk)의 발상지가 영국이 아닌 미국 뉴욕이었던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팝아트의 선구자로 볼 수 있는 영국 화가는 리차드해밀턴(1922~ )이다. 콜라주기법으로 새로이 당면한 현대인들의 생활을 고찰한 그의 초기작 ‘오늘날의 가정을 그토록 다르게,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1956)’는 팝아트의 시초가 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현재는 독일에 있는 그림이다.)
리차드해밀턴의 후기 대표작을 한 점 소개한다. 테이트브리튼의 걸작 ‘시민(1981~3)’이다. 팝아트의 성향보다는 보다 광범위하게 정치적, 종교적 사색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의 알리바이를 추적하려면 80년대 초반 영국의 한 교도소로 거슬러 올라 가야 한다. 당시 벨파스트 근교 메이즈(Maze)라는 감옥에 투옥된 아일랜드 독립군(IRA) 투사들은 자신들에게 단순 범죄인이 아닌 정치범 대우를 해 줄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마가렛대처 정부의 대응은 단호하였다. (내 경험으로는 여자들은 타협을 잘 모른다.) 자신들의 요구를 거부당하자 그들은 결국 최후의 항전을 불사한다. 아주 원시적인 전투방식이었다. 죄수복 착용을 거부하였고 자신들의 분뇨를 벽에 칠하며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 모습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되어 TV를 통해 방영되었다. 영국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프로그램이다.
영국인들에게는 실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영국인들의 상식에 각인된 IRA는 그저 황당한 사람들이었다. 억지스럽고 이상한 종자들이었다. 헌데 그 다큐멘터리를 통해 드러난 그들의 현장은 마치 거룩한 신화처럼 숭고한 종교처럼 보여졌던 것이다. 리차드해밀턴이 표현한 것은 바로 그런 충격의 모습이었다. 해밀턴은 단식투쟁 66일 만에 사망한 보비샌드스라는 남자를 그리고 있다.
두폭화 유화인 이 그림은 감옥의 현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서인지 금속 액자에 들어 있다. 왼쪽은 추상의 형상들이 확대된 듯 한 모습이다. 아마도 남자가 감방의 벽에 칠한 자신의 분뇨일 것이다. 오른쪽은 남자 보비샌드스의 모습이다. 쇠그물망의 창 같은 것이 보이고, 자신의 몸에서 나온 분뇨로 벽에 그린 그림이 보인다. 남자는 그 안에서 담요를 죄수복 대신 걸친 채 아주 의연한 자세로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있다. 와우……
자신의 최후의 수단인 자신이 분출한 분뇨, 똥으로 그들은 투쟁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종교적 순교의 모습처럼 숭고해 보였으며, 하나의 전설이나 신화처럼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쉽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원시 상태의 감방 안에서 그들이 택한 저항과 죽음에서 우리는 폭력이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이미 이천 년 전에 가르쳐준 그리스도를 연상하게 된다. 더불어 리차드해밀턴은 예술이 지닌 원초적이고 즉물적인 속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신념 같은 추상적 권력에 의해 원시의 상태로 회귀한 어느 남자의 필사적 몸부림은 가히 예술의 핵심에 가깝게 다다른 심각한 똥칠이었던 것이다. 그 똥칠 앞에서의 묵상은 언제나 나에게 엄숙한 예술의 가치를 보여주는 서글픔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
심각한 알리바이를 지닌 그림이다. 정확하고 구체적이었으며, 비참한 바닥의 알리바이를 지닌 그림이다. 남자의 창백한 얼굴은 결코 패배할 수 없는 인간의 신념을 보여주는 듯이 눈부시며, 그가 자신의 배설물로 이루어낸 벽화(?)들은 죽음으로도 배신할 수 없었던 사랑의 멜로디처럼 아름답다. 무엇인가? 우리를 인간이게 만들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리차드해밀턴식의 물음을 던지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다. “오늘날의 인간을 그토록 다르게,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무엇인가? 화폐인가? 본능인가? 학벌인가? 민족주의인가? 문화적 호의호식인가? 종교인가? 부부싸움인가? 한가한 예술감상인가? 쇼핑인가? 컴퓨터인가? 정치적 안정인가?...... 화폐인가? 본능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