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만나는 런던-86
스테이트 브리튼/ 마크 월링거
State Britain/ Mark Wallinger
도를 아시나요?
파리에 비해 런던에는 큰 건물이 없는 편이다. 꼽자면, 두 가지 곡절이 존재한다. 첫째, 프랑스에 비해 소박하고 실리적인 국민성 때문이다. 물론 뒤늦게 강대국이 된 영국은 중세의 화려한 귀족문화가 발달하기에 역부족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째, 상대적으로 약했던 왕권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귀족들의 눈치를 봐야 했던 영국의 왕권이었다. 이 곡절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영국인들의 자랑거리가 될 만하다. 소박했기에 세계 최강에서의 끝없는 추락을 면할 수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왕권이 약했기에 민주주의의 갖가지 수련을 쌓을 수 있었던 나라가 영국이다.
큰 건물이 드문 런던에서 가장 큰 건물은 거의 모든 외국 관광객들이 눈도장을 찍고 간다는 1,100개의 방이 있는 건물 ‘국회의사당’이다. 런던의 간판 조형물인, 거대한 정확성의 수동시계 빅벤이 있는 ‘런던의 입’과 같은 건물이다. 1295년 국회의 효시라 할 ‘모범의회’가 열렸던 자리, 오늘날 인간들이 더 이상의 착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사용하는 사회정치제도인 민주주의의 요람과 같은 건물이다. 원래는 궁전 자리였으나 19세기 초반 화재로 거의 소실되어 설계공모를 거쳐 찰스베리의 설계로 재건축한 신고딕 양식으로는 대표적 건물이다. 국회 건물의 뒤편에는 조그마한 잔디밭이 국회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있는데, 이제 그곳은 런던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꼭 보아야 하는 런던의 또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곳에서 천막을 치고 데모하는 인간들의 모습 때문이다. 갖가지 인간세상의 문제점들을 내걸고 그들은 이를 테면 고독한 투쟁을 하고 있는 일종의 투사들인데, 아무도 모르는 경지에 오르고 싶어하는 일종의 도를 닦고 있는 사람들로도 보인다.
그들의 우상이었던 사람이 지난 6월 암으로 사망한 브라이언 호(Brian Haw, 1949~2011)다. 목수였던 그는 2001년 이라크전쟁에 대한 영국외교정책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배지가 빼곡히 달린 빛 바랜 낚시모자가 트레이드마크였던 호는 끈질기고 외로운 투쟁 속에서 어느덧 반전 평화운동가가 되어 있었다. 그의 데모하는 모습은 민주주의의 나라 영국의 또 하나의 상징처럼 되었다. 그의 귀여운 주접(?)이 손에 박힌 가시 같았던 토니블레어의 노동당 정부는 2006년 호의 데모캠프를 강제철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철거된 그의 캠프는 이번에는 미술작품이 될 운명이었다.
마크월링거(1959~ )는 철거된 호의 데모캠프를 미술관(테이트브리튼)에 재연하였다. 그 길고 허접스런 데모캠프는 미술관 안에 들어서자 일약 눈부신 장관을 이루어냈다. 그것은 미술이라고 하기에 잔인했지만 미술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진지하고 참혹해 보였다. 인간사회의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애절한 사연들을 담고 있는 그 허접스러운 데모캠프는 숙명적으로 미술품이었다. 마크월링거는 이 데모캠프의 재연으로 1995년 경합 끝에 데미안 허스트에게 빼앗겼던 터너상을 수상하였다. 이 시대 최고의 미술꾼(나는 그렇게 부르고 싶다.) 데미안 허스트가 미술의 지경을 넓히는데 주력하는 충격의 형식주의자라면 마크월링거는 사회적 집단의식을 다루는, 한결 젊잖은 내용주의자라고 본다. 얼마나 광범위한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가는, 현대미술이 무시하고 싶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숙명적 탯줄과 같은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스테이트브리튼’이라는 설치미술이 보여주었던 효과는 압도적인 것이었다. 브라이언호라는 전직 목수가 반항할 수 있는 현대인들의 자유를 선도적으로 보여주었다면, 마크월링거라는 미술가는 자유를 방해하는 제도의 허구성까지를 보여줌으로 미술의 통찰력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런던의 알려지지 않은 명소, 숨겨진 비장의 미술관으로 나는 국회광장을 소개하고 싶다. 그곳에 가면 사철 아쿠아스쿠텀 코트를 걸친 영원한 영국수상 처칠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서툰 글씨로 쓰여진 각종 문구들, 낡아빠진 천막들, 고통 받는 어린이들의 사진 등으로 이루어진 데모캠프들이 보인다. 나의 눈에 그것은 도를 닦으려는 사람들이 모인 일종의 야외 도장으로 보인다. 편집 없는 천연의 미술품들이 정연하게 전시된 미술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치, 교육, 언론, 종교 같은 이 시대의 필요악적 위험요소들이 뒹구는 쓰레기하치장으로 보이기도 한다. 최근 그곳에는 ‘남북통일’이라는 한글 문구가 등장하였다. 볼 때마다 감격스러워 뭉클해지지만 나는 애써 가까이 다가서지 않는다. 누군지 모르는 그의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도 화가일 것이다. 나는 그저 가슴으로 봐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