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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모름지기 남자는, 어쨌거나 여자는

hherald 2018.08.27 17:13 조회 수 : 419

 


1971년생인 영국의 쌍둥이 자매(에비 무어, 엠마 무어)가 2008년 런던에서 <Pinkstinks>라는 NGO를 만들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핑크색을 싫어한다는 건데 이 단체는 부모들을 다그쳐 핑크색 장난감과 학용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성 역할을 고정하는 이런 상품이 어린이 정서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었다. 국회의원, 유명 작가까지 이 운동에 동참해 힘을 실었고 2010년에는 영국의 유명 슈퍼마켓인 막스앤스팬스, 세인즈버리, 존루이스 등이 Pinkstinks의 지적에 따라 꼬리를 내리고 어린이용품에 붙어있던 'girls', 'boys' 라벨을 뗐다. 장난감과 어린이 도서에 성 중립화 바람을 불고 온 데는 <Let Toys Be Toys>라는 단체의 업적도 크다. 이들은 장난감이나 출판물 중에 이건 여자 어린이용, 저건 남자 어린이용 하는 구분을 없애자고 주장한 단체다.

 

이런 결과, 영국에서는 어린이용품에 성별 구분이 거의 사라졌는데 최근 영국 TUI 항공사가 어린이 탑승객에게 성역할 고정관념을 갖게 하는 장난감 스티커를 나눠줘 문제가 됐다. 처음 이 기사를 보고 'TUI 항공사가 만든 스티커에 문제가 있었구나' 생각해 '큰 기업이 왜 생각 없이 그런 걸 만들었을까?' 혀를 찼는데 사진을 보니 스티커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까 문제의 스티커는 두 종인데 하나는 군청색으로 ‘미래의 TUI 기장(captain)’, 또 하나는 하늘색으로 ‘미래의 TUI 승무원(crew)’이라 했다. 이렇게 보면 스티커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즉 성 중립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스티커를 준 승무원에게 있었다. 기장 스티커는 남자아이에게 승무원 스티커는 여자아이에게 준 것이다. 파일럿은 남자, 승무원은 여자라는 고정관념, 남녀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다르다는 고정관념을 스티커를 아이들에게 주면서 드러낸 것이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주고도 욕먹을 짓을 한 것이다. 비난이 거세지자 항공사 측은 "스티커 자체는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어린이를 위해 디자인된 만큼 이번 일은 단순한 혼동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진땀 해명을 했다.

 

페미니즘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소극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성이란 여자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만들어 여자에게 덧씌운 사회 문화적 산물이라는 말이다. 

 

우리도 할머니들이 으레 하는 말이 <모름지기 남자는, 어쨌거나 여자는>으로 시작해 전근대적이고 융통성 없는 성 역할을 손자 손녀에게 교육이랍시고 하는 경우가 많듯이 조부모나 부모가 (좋게 말해) 전통적일수록 전근대적 성 역할 시각을 가진다는데 여기서 자란 자녀도 그런 시각을 가질 경향이 많다고. 특히 어머니의 영향이 강한데 엄마가 어릴 때부터 자녀에게 <모름지기 남자는, 어쨌거나 여자는>하고 교육했다가는 자녀가 융통성 없는 성 역할 시각을 갖고 자랄 수 있다는 경고다. 

 

설마 영국 같은 나라에서 그러려고? 한다면 오산이다. 영국도 열린 성 역할의 시각을 가진 게 최근의 일이다. 영국 속담 중 <여자는 세 번 집에서 나오는데 세례받을 때, 결혼할 때, 묻힐 때다>라는 끔찍한 것이 있다. 여성의 한계를 가정의 울타리에 묶어두려는 시도가 아니고서야, 이런, 

 

이번에 문제가 된 TUI항공은 올해 영국 주요 기업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곳으로 조사됐다. 남성 직원은 여성 직원보다 시간당 평균 56.9% 임금을 더 받는다고 한다. 양성평등을 실천해 모든 직원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지 않은 꽉 막힌 회사 분위기가 '이건 여자 아이용, 저건 남자 아이용'하는 그 잘못된 시각을 품게 했던 건 아닐까.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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