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정치적 수사(修辭)물질적 타협으로 평화는 결국 파멸의 예고편일 뿐이다. 고대 북이스라엘의 므나헴 왕이 선택한 ‘세상 의지하기’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도 잔혹한 제국이었던 신아시리아의 철혈 군주, 디글랏 빌레셀 3(Tiglath-pileser III, 성경의 '불')라는 거대한 덫을 불러들였다. 성경 열왕기하 15장 29절이 고발하는 강제 이주의 참상은 하나님이 아닌 눈앞의 은(銀)권력을 의지했던 인간 중심적 가치관이 치러야 했던 처절한 청구서였다.

 

1. 철혈의 개혁가이자 잔혹한 정복자, 디글랏 빌레셀 3(Tiglath-pileser III, 성경의 'Pul')

북이스라엘의 몰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몰락의 가속 페달을 밟았던 인물, 디글랏 빌레셀 3세(Tiglath-pileser III, 성경의 '불')라는 인물의 역사적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기원전 745년, 아시리아의 극심한 내란을 수습하며 찬탈자로 왕위에 오른 그는 고대 근동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꾼 천재적인 군사 전략가이자, 동시에 극도로 냉혹한 정복 군주였다.

디글랏 빌레셀 3세의 성격은 한마디로 '치밀하고 잔인한 실용주의자'였다. 그는 단순히 영토를 넓히고 약탈하는 과거의 정복 방식에서 벗어나, 피정복민이 다시는 반역을 꿈꾸지 못하도록 제국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통제 시스템으로 재편했다. 디글랏 빌레셀 3세가 단행한 상비군(Kisir sharruti) 제도의 도입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문적인 병종(보병, 기병, 전차병, 공병)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가공할 만한 군사 기계를 탄생시켰다.

특히 디글랏 빌레셀 3세의 업적 중 가장 악명 높은 것은 ‘쌍방향 대규모 강제 이주(Mass Deportation) 정책’이었다. 그는 정복한 지역의 엘리트, 기술자, 백성들을 통째로 뿌리 뽑아 제국의 반대편으로 이주시키고, 그 빈자리에 다른 피정복민들을 채워 넣었다. 이는 피정복 국가의 민족적 정체성을 완전히 해체하고, 애국심이나 결속력을 원천 차단하여 반란의 싹을 잘라버리는 극단적이고도 효율적인 통치 수단이었다.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이 잔혹한 시스템을 체계화하여 신아시리아를 당대 최고의 초강대국으로 올려놓았다.

 

20260608_181850.jpg

 

[Tiglath-pileser III (디글랏 빌레셀 3세 /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 고대 신아시리아 제국의 강력한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재위 기원전 745년~727년)의 이름입니다. 성경(열왕기하 등)에서는 '불(Pul)'이라는 이름으로도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2. 북이스라엘의 해체, 이주를 감행한 앗수르 왕 (왕하 15:29)

이러한 디글랏 빌레셀 3세의 철혈 정책은 북이스라엘에 치명적인 비극을 안겨주었다. 열왕기하 15장 29절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거대한 전환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베가 때에 앗수르 디글랏 빌레셀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땅을 점령하고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이 구절은 단순히 한 번의 패전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디글랏 빌레셀 3세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국 영토에서 강제로 끌어내어 앗수르 본토로 이주시킨 ‘첫 번째 앗수르 왕’이라는 역사적 팩트를 성경은 엄중히 강조하고 있다.

훗날 기원전 722년 사르곤 2세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기 전, 이미 디글랏 빌레셀 3세에 의해 북방의 갈릴리와 납달리, 그리고 요단 동편의 길르앗 등 이스라엘 영토의 절반 이상이 강탈당하고 그곳의 주민들이 먼저 포로로 끌려갔다.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지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분리되어 이방 땅으로 흩어지는 이 가혹한 '민족 말살의 서막'을 연 장본인이 바로 디글랏 빌레셀 3세(불)였던 것이다.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이스라엘의 국경을 허물고 중심부를 고립시켰으며,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신앙적·민족적 토대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눈앞의 위기를 임기응변으로 모면하려 했던 이스라엘의 정치가들이 초청한 결과치고는 너무나도 참혹한 대가였다.

 

3. 므나헴의 달란트, 파멸을 매수한 어리석은 타협

이 비극의 원인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역사의 시계를 조금 앞으로 돌려 보면, 북이스라엘의 므나헴 왕의 선택을 마주하게 된다. 선왕을 살해하고 찬탈로 왕위에 오른 므나헴은 정통성이 없었기에 국내외적 위기 앞에 극도로 취약했다. 그때 아시리아의 불(디글랏 빌레셀 3세의 본명 혹은 바빌론 즉위명) 왕이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땅을 밟았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 므나헴이 취한 행동은 신앙인들에게 깊은 탄식을 자아낸다. 므나헴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민족의 죄를 자복하며 구원을 청하는 대신, 앗수르 왕의 손에 ‘은 천 달란트’라는 천문학적인 조공을 쥐여주었다(왕하 15:19).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므나헴은 국내의 부자들에게 인당 은 50세겔씩을 강제로 징수하는 수탈을 감행했다.

므나헴의 계산은 명확했다. "이 돈을 주면 저 강력한 군주가 물러갈 것이고, 도리어 그의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고 내 불안한 왕권을 공고히 할 수 있으리라." 실제로 디글랏 빌레셀 3세는 돈을 받고 군대를 돌렸다. 므나헴은 자신의 정치적 수완이 성공했다고 자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타협이었다. 므나헴이 바친 은 천 달란트는 평화를 산 것이 아니라, 아시리아라는 포식자에게 이스라엘이 얼마나 맛좋고 손쉬운 먹잇감인지를 증명해 이 되고 말았다. 앗수르는 이 조공을 통해 이스라엘의 경제적 규모와 재정 상태를 정확히 파악했고, 언제든 군대를 밀고 내려오면 돈을 뜯어내거나 영토를 찬탈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므나헴이 의지했던 은 천 달란트와 세상 권력은 결국 파멸을 잠시 유예했을 뿐, 훗날 15장 29절에 나타난 대규모 강제 이주라는 대재앙의 도화선이 되었다.

 

4. 오늘날 우리의 가치관: 우리는 무엇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는가?

므나헴의 이 역사적 실패는 단순한 고대사의 기록이 아니다. 이는 2026년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과 현대 사회를 향해 본질적인 '가치관'의 문제를 던지는 거울이다.

우리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을 찾는가? 므나헴의 ‘은 천 달란트’는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자본의 힘, 권력의 네트워크, 그리고 세상적인 스펙과 타협안을 상징한다. 현대인들은 문제가 생기면 신속하게 지갑을 열거나, 유력한 사람을 찾거나, 세상의 시스템이 제시하는 합리적인(?) 편법을 동원한다.

세상 가치관의 핵심은 "모든 문제는 돈과 권력, 그리고 적절한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므나헴처럼 눈앞의 불을 끄기 위해 세상적인 방법과 동맹을 맺고, 그것이 성공적인 위기관리였다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하지만 세상의 힘을 의지해 얻은 평화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참혹한 대가를 요구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생과 물질을 의지할 때, 우리는 우리가 의지했던 바로 그 세상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영적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된다.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 제국의 문화와 가치관에 동화되어 영적으로 황폐해지는 현대판 '갈릴리와 납달리의 비극'이 오늘날에도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돈으로 산 안전망은 디글랏 빌레셀 3세의 무자비한 칼날 앞에 한순간에 찢겨 나갈 얇은 천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자.

 

5. 결론: 눈에 보이는 앗수르 뒤에 계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라

디글랏 빌레셀 3세가 비록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졌고 첫 강제 이주라는 끔찍한 형벌을 내린 주체였지만, 선지자 이사야는 그를 향해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사 10:5)고 선포했다.

아무리 강대한 세상의 제국과 군주일지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심판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사의 주관자는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므나헴의 어리석음은 눈에 보이는 앗수르의 군대와 은 천 달란트의 위력에 압도되어, 그 모든 역사의 배후에서 주권을 행사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인생을 의지하는 가치관은 반드시 실패한다. 세상과의 적당한 타협은 잠시 숨통을 트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영혼과 삶을 완전히 해체하는 파멸의 서막이 될 뿐이다.

오늘날 우리 삶에 밀려드는 수많은 위기 앞에서, 우리는 므나헴의 실패를 기억해야 한다. 은 천 달란트라는 신기루를 과감히 버리고, 역사의 주인이자 우리 삶의 유일한 피난처이신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유일한 가치관을 회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제국의 칼날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글쓴이 전공수 목사 

 

d226bf290f3d7b5e12cbb5637abf3a2e.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474 헬스벨- 우유, 알고 마시자! new hherald 2026.06.08
» 돌들의 함성 - 대영박물관 # 18 - 은 천 달란트의 신기루와 앗수르의 칼날: 므나헴의 선택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newfile hherald 2026.06.08
3472 시조생활- 황혼의 가슴 / 자갈치 시장 / 나의 베란다 newfile hherald 2026.06.08
3471 영국 생활 법률 –1회: 법률문제 발생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new hherald 2026.06.08
3470 부동산 상식- 영국 부동산 매매 절차 new hherald 2026.06.08
3469 헬스벨 - 수분 공급의 正道 hherald 2026.06.01
3468 돌들의 함성 - 대영박물관 #17제국은 부조에 공포를 새겼고, 하나님은 역사에 주권을 새기셨다 file hherald 2026.06.01
3467 시조생활 - 충신강 외 2편 file hherald 2026.06.01
3466 영국 생활 법률 – 해외 비즈니스를 위한 실전 법률 가이드 I - 왜 영국법을 알아야 하나? update hherald 2026.06.01
3465 신앙칼럼- 연비어약 hherald 2026.06.01
3464 부동산 상식- 매물을 성공적으로 판매하기 위한 준비 방법 hherald 2026.05.18
3463 신앙칼럼-경당문노 hherald 2026.05.18
3462 돌들의 함성 - 대영박물관 # 16 퇴색한 제국의 부조와 영원히 빛나는 하늘 보좌 file hherald 2026.05.18
3461 헬스벨 - 바분 할머니의 교훈 hherald 2026.05.18
3460 시조생활 - 석양 /눈물 / 스무 번째 봄 file hherald 2026.05.18
3459 시조생활-청춘의 조각돌 / 정거장 / 올림픽 그 한점 file hherald 2026.05.11
3458 부동산 상식- 영국 부동산 시장 hherald 2026.05.11
3457 신앙칼럼-복경호우 행복은 새의 날개보다 가볍다 hherald 2026.05.11
3456 헬스벨 - 혈당이 무너지면 사람이 무너집니다 hherald 2026.05.11
3455 돌들의 함성 - 대영박물관 # 15 청동 부조(Assyrian bronze relief)에 새겨진 공포 타락한 시대,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file hherald 2026.05.1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