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가 넘치는 시대, 다시 ‘팩트’를 묻다
수많은 정보와 영상 매체가 범람하는 시대다. 우리는 매일 화려한 이미지와 자극적인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다. 어떤 장면은 과장되고, 어떤 이야기는 편집되며, 어떤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재구성된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사실을 분별하는 눈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참된 신앙은 허공 위에 세워진 감정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실제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 위에 서 있다. 성경은 신화나 교훈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자기 백성을 다루신 살아 있는 증언이다.
런던 대영박물관 아시리아 전시실에 들어서면 고대 제국의 차가운 숨결과 마주하게 된다. 그곳에는 아슈르나시르팔 2세 시대의 님루드 궁전 부조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기원전 9세기 신아시리아 제국의 강력한 왕이었다. 이 부조들은 북이스라엘 멸망 자체를 직접 묘사한 유물은 아니다. 그러나 훗날 이스라엘과 유다를 짓누르게 될 앗수르 제국의 군사 문화와 공포 정치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다.


[왼쪽에는 활을 든 앗수르 병사들이 성을 향해 공격하고 있고, 가운데에는 바퀴 달린 공성 병기, 곧 성벽을 부수기 위한 파성퇴가 성벽 가까이 접근해 있다. 오른쪽에는 높은 성벽과 탑이 보이며, 성 위의 방어자들은 활을 쏘거나 저항하고 있다. 이 장면은 앗수르가 단순히 병력만 강한 제국이 아니라, 공성 병기와 조직적인 전술을 사용해 견고한 성읍을 무너뜨렸던 군사 강국이었음을 보여준다.]
1. 부조에 새겨진 제국의 전쟁 기계
부조 속 앗수르 군대는 단순한 고대 병사들의 행렬이 아니다. 그들은 고도로 조직된 전쟁 기계처럼 움직인다. 어떤 장면에서는 병사들이 동물 가죽을 부풀려 만든 부유 장비를 껴안고 강을 건넌다. 자연의 장벽도 그들의 진군을 쉽게 막지 못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바퀴 달린 공성 병기와 파성퇴가 성벽 가까이 접근하고, 궁수들은 성 위를 향해 화살을 쏘아 올린다. 성벽을 무너뜨리고, 도시를 포위하고, 적의 저항 의지를 꺾는 앗수르의 공성술은 고대 근동 세계에서 매우 두려운 군사 기술이었다.
이 장면은 요엘서가 묘사하는 압도적인 군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 앞에서 백성들이 질리고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요엘 2:6) 또한 요엘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들이 용사 같이 달리며 무사 같이 성을 기어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되 그 줄을 이탈하지 아니하며 피차에 부딪치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며 무기를 돌파하고 나아가나 상하지 아니하며”(요엘 2:7-8)
물론 이 본문을 곧바로 특정한 앗수르 군대의 기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요엘서의 질서정연하고 압도적인 군대 이미지는, 고대 근동 세계가 실제로 경험했던 제국의 공포와 깊이 맞닿아 있다.
2. 제국의 예술은 선전이었고, 부조는 협박이었다
앗수르의 부조는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의 메시지였다. 앗수르는 궁전 벽에 전쟁과 정복의 장면을 새겨 넣었다. 방문하는 사신들과 조공을 바치는 나라들은 그 부조 앞에서 제국의 힘을 보아야 했다.
“반역하면 이렇게 된다.”
이것이 부조가 말하는 침묵의 언어였다. 제국은 돌과 석고 위에 공포를 새겼다. 그것은 예술이면서 동시에 선전이었다. 아름다운 조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협박이었다.
성경이 말하는 앗수르의 위협은 이런 배경 속에서 훨씬 더 선명해진다. 고대 근동의 작은 나라들에게 앗수르는 실제적인 공포였다. 성벽을 의지하던 도시도, 동맹을 믿던 왕들도, 앗수르의 군사력 앞에서 떨었다.
3.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앗수르의 그림자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부조가 북이스라엘 멸망을 직접 기록한 것은 아니다. 북이스라엘은 훨씬 후대인 기원전 722년 또는 721년경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다. 성경은 이 사건을 이렇게 기록한다.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할라와 고산 하볼 강 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열왕기하 17:6)
이 말씀은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단순한 정치적 패배가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땅을 잃었고, 성읍을 잃었고, 공동체의 중심을 잃었다. 강제 이주는 제국이 피지배 민족의 정체성과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 사용한 잔혹한 통치 방식이었다.
대영박물관의 아시리아 부조는 바로 이런 제국의 세계를 보여 준다. 전쟁, 공포, 조공, 강제 이주, 심리전이 결합된 거대한 제국의 질서다. 북이스라엘과 유다가 상대해야 했던 것은 바로 이런 세계였다.
4. 성경은 앗수르를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로 보았다
성경은 이 역사를 단지 국제정치의 관점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를 향해 이렇게 선포한다.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이사야 10:5)
이 말씀은 충격적이다. 하나님께서 잔혹한 제국 앗수르를 자기 백성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단지 군사력이 약했다는 데 있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고, 우상을 의지했으며, 세상의 힘을 더 신뢰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이 두려워하던 제국을 통해 그들의 교만과 불순종을 깨뜨리셨다. 부조 속 성벽을 향해 돌진하는 파성퇴는 단지 고대 전쟁 기술만을 보여 주지 않는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백성의 굳어진 교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아픈 상징이 된다.
5. 도끼가 주인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앗수르가 하나님의 도구였다고 해서 앗수르가 의로운 나라였다는 뜻은 아니다.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 앗수르는 자신들이 역사의 주인이라고 착각했다. 자신들의 칼과 병거와 공성 병기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교만을 꾸짖으신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이사야 10:15)
이 말씀은 제국의 본질을 꿰뚫는다. 앗수르는 도끼였지, 찍는 자가 아니었다. 막대기였지, 역사의 주관자가 아니었다. 아무리 강력한 제국이라도 하나님의 손을 벗어나 스스로 역사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앗수르 역시 무너졌다. 한때 고대 근동을 떨게 했던 제국은 신바빌로니아와 메대가 주도한 세력 앞에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니느웨는 함락되었고, 제국의 영광은 폐허가 되었다.
6. 제국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주권은 남는다
궁전 벽을 가득 채웠던 승리의 부조들은 이제 박물관의 전시물이 되었다. 그토록 많은 나라를 떨게 했던 공포의 기록이 오늘날에는 유리 전시장 안에서 조용히 관람객을 기다린다. 제국은 자신들의 영광을 영원히 새기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 부조를 통해 오히려 제국의 한계를 증언하게 하셨다.
대영박물관의 아시리아 부조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보아야 한다.
첫째, 성경은 실제 역사와 동떨어진 종교적 상상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제국의 위협, 이스라엘의 심판, 유다의 두려움은 실제 고대 세계의 정치와 군사 현실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둘째, 그 모든 역사 위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있다. 앗수르가 강했기 때문에 역사가 움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 제국을 잠시 허락하셨기 때문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오늘 우리의 앗수르 앞에서
오늘 우리도 때로 앗수르 같은 현실 앞에 선다.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 무너질 것 같은 상황, 두려움을 주는 권력과 환경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신앙인은 눈앞의 공포만 보아서는 안 된다. 부조에 새겨진 제국의 힘보다 더 깊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역사 위에 새겨진 하나님의 주권이다.
제국은 부조에 공포를 새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에 주권을 새기셨다. 세상의 권력은 자신을 영원한 것처럼 과시하지만,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는 잠시 쓰임 받다 사라지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위협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되, 그것을 하나님보다 크게 보아서는 안 된다. 참된 평안은 제국이 약해질 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믿을 때 온다.
차가운 부조 앞에서 우리는 따뜻한 복음의 진리를 듣는다. 역사는 힘 있는 자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역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있다. 세상의 제국은 무너져도, 하나님의 주권은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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