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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대영박물관 아시리아 전시실에는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대형 전시물이 있다. 바로 발라왓 게이트(Balawat Gates)다. 이 전시는 신아시리아 제국 샬만에세르 3세 시대와 관련된 유물에 바탕을 둔 것으로, 거의 7미터 높이의 삼나무 문을 실물 크기로 복원한 것이다. 문에는 여러 줄의 청동 띠가 둘려 있으며, 원래의 청동 띠 유물은 별도로 전시되어 있다.

 

이 청동 띠들에는 왕의 군사 원정, 정복, 조공, 행렬 등의 장면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비문에는 아시리아가 정복한 지역들과 조공을 바친 나라들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발라왓 게이트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당시 제국의 군사력과 통치 범위를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박물관 유물과 전시 설명이 전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 앞에 서 있을 때, 그리스도인은 단지 고대 제국의 위세만 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위세가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했는지, 또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를 함께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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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왓 게이트(Balawat Gates)는 샬만에세르 3세(재위 기원전 858–824년) 시대에 발라왓의 왕궁에 설치되었던 삼나무 문을 실물 크기로 복원한 것이다. 원래 이 문은 높이가 거의 7미터에 이르렀으며, 각 문짝에는 여러 줄의 청동 띠가 둘려 있었다. 이 청동 띠들에는 왕의 군사 원정이 장면별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또한 비문에는 아시리아가 정복한 지역들과 조공을 바친 나라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제국의 권세와 통치 범위를 시각적으로 보여 준다. 현재 전시된 문은 실물 크기 복원품이며, 여기에 부착된 청동 띠는 원본을 바탕으로 제작된 복제품이다. 원래의 청동 띠 유물은 왼편에 전시되어 있다.]

 

 

 

1. 제국의 문이 보여 주는 질서

고대 세계에서 문은 단순한 출입구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문은 도시의 경계였고, 권위와 질서가 드러나는 장소였다. 성문은 방어 시설인 동시에 재판과 공적 선언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발라왓 게이트는 아시리아 제국이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고자 했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물로 읽을 수 있다.

 

청동 띠에 새겨진 장면들은 반복적으로 한 가지 현실을 보여 준다. 왕은 승리하고, 다른 민족은 굴복하며, 조공은 제국의 중심으로 모인다. 이것은 역사적 기록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이미지다. 제국의 질서는 힘을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그 힘은 눈에 보이는 장면으로 끊임없이 재현되었다.

 

바로 여기서 해석이 시작된다. 발라왓 게이트(Balawat Gates)를 바라보는 우리는, 이 문이 사실상 “힘에 복종하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전쟁과 복속, 조공의 장면들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이 문은 제국의 힘을 선전하는 상징물로 보기에 충분하다.

 

2. 성경이 보여 주는 또 다른 문

이와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자신을 황제의 문이나 정복자의 문으로 소개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양들이 드나드는 문, 곧 생명과 보호의 문으로 말씀하셨다.

 

이 사실 위에서 우리는 복음의 성격을 묵상할 수 있다. 세상의 문이 힘과 통제를 상징한다면, 예수님의 문은 보호와 인도, 생명을 상징한다. 세상의 문은 자격과 성취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복음의 문은 길 잃은 자와 지친 자에게 먼저 열려 있는 은혜의 문으로 다가온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크고 화려한 문을 동경한다. 더 높은 자리, 더 큰 성공, 더 강한 힘을 가진 문을 통과해야 자신의 가치가 확증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된 생명이 그런 문 뒤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참된 생명은 목자의 음성이 들리는 문 안에 있다.

 

3. 베데스다 양문 곁에서 드러난 복음

요한복음 5장은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베데스다 못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또한 그곳에 오랫동안 앓던 병자가 있었으며, 그의 병든 기간은 38년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사실은 단지 병자의 치유 사건에 머물지 않는다. 여기서 복음의 진수가 드러난다. 예수님은 화려한 권력의 한복판보다, 병든 자와 기다림과 절망이 모여 있는 자리로 가셨다.

 

베데스다는 찬란한 승리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무력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소였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한 사람에게 다가가 먼저 말씀하셨다.

 

이 장면은 제국의 문과 하나님 나라의 문이 무엇이 다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제국의 문이 승리자의 영광을 드러낸다면, 예수님의 발걸음은 상처 입은 자의 회복을 향한다. 제국의 문이 힘을 중심으로 질서를 세운다면, 예수님의 사역은 연약한 자를 향한 자비를 드러낸다. 이것이 바로 복음(Good News)이다.

 

4. 문을 부수는 권력과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

요한계시록 3장 20절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라고 말씀한다. 이 구절은 본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말씀이다. 따라서 이 본문이 직접 발라왓 게이트(Balawat Gates)를 염두에 두고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오늘의 묵상 속에서 읽을 때, 우리는 중요한 진실에 이르게 된다. 인간의 권력은 종종 문을 무너뜨리고 들어가며, 힘으로 질서를 강요한다. 반면 예수님은 문 앞에 서서 두드리신다. 그러므로 복음은 강제된 복종이 아니라 인격적 초청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제국은 사람을 압도하며 들어가지만, 주님은 사랑으로 초청하신다. 제국은 패배자를 만들지만, 그리스도는 죽은 영혼을 살리신다. 그러므로 복음의 문은 힘으로 열리는 문이 아니라 은혜로 열리는 문이다.

 

5. 법의 문에서 은혜의 문으로

이 대조는 법의 문제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대 근동에는 여러 법 문서가 있었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함무라비 법전이다. 성경의 율법 역시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형식 속에 주어졌다는 점에서, 고대 근동 법 전통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형식보다 방향이다. 성경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 힘없는 자를 향한 책임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곧, 성경의 법은 단지 사회 통제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거룩과 자비의 길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의 율법은 통제의 문이 아니라 은혜로 인도하는 문이다. 인간의 법이 쉽게 힘의 질서를 지지할 때, 하나님의 법은 약한 자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6. 유물은 남고, 제국은 사라진다

박물관은 인간 문명의 영광을 보존하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그 영광의 유한함을 증언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한때 세상을 두렵게 했던 아시리아 제국은 사라졌고, 오늘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은 그 흔적들이다. 발라왓 게이트(Balawat Gates) 역시 이제는 권력 그 자체가 아니라, 권력을 설명하는 유물이 되었다.

 

이 역사적 사실 앞에서 신앙인은 다시 복음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인간의 문은 아무리 높고 강해 보여도 결국 닫힌다. 그러나 성경은 닫히지 않는 문을 말한다. 유월절의 어린양, 그리고 그 성취인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죽음 아래 있던 인간에게 구원의 문을 여셨다. 세상의 문은 무너질 수 있지만, 주님이 여신 문은 인간의 힘으로 닫을 수 없다.

 

결론: 당신은 어느 문 앞에 서 있는가?

오늘날에도 발라왓 게이트(Balawat Gates)는 다른 얼굴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성공, 경쟁, 소유, 인정, 비교의 문이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속삭인다. “이 문을 통과해야 네 가치가 증명된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를 전혀 다른 문 앞으로 부른다. 예수님은 높은 문이 아니라 낮은 문으로 오셨고, 정복의 문이 아니라 생명의 문을 여셨다.

 

박물관의 차가운 유물은 과거의 권력을 증언한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 세상의 문은 결국 닫히지만, 주님이 여신 문은 닫히지 않는다. 오늘도 복음은 박물관의 침묵을 깨운다. 죽은 제국의 기록 위에 살아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 복음은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한다.

힘의 문이 아니라, 생명의 문으로 들어오라.


■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글쓴이 전공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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