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못에서 뛴다
삶은 다양성을 추구합니다. 한결같은 삶은 성실하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지만 가까이에 사는 사람에게는 답답한 면이 있게 됩니다. 세상은 다양성의 법칙에 따라 유지되고 있습니다. 과거 잘못된 통치 이념으로 국민을 통일시키려 했습니다. 행동을 통일하고 음식도 동일한 것으로 먹이고 똑같은 구조의 집에서 의복도 같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 세기가 지나기 전에 그런 통치 이념에서 배운 사람들 스스로가 이념의 옷을 벗어 던지고 각자가 입고 싶은 색상의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음식도 다양해야 하고 생각하는 것이 통일을 이룰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봄이 되면 온 세상이 꽃으로 장식합니다.
만약 봄에 피는 꽃이 한 종류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잔인할 정도입니다. 어떤 사람이 벚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집 주변을 벚나무만 심었다 했습니다. 이른 봄에 싹을 틔우기 전에 피워내는 눈송이 같은 꽃이 주는 황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요.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 하더라도 열흘을 피울 수 없는 법입니다.
봄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오는 것을 벚꽃은 견뎌낼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 하얀 꽃잎들은 바닥에 떨구어졌습니다. 지극히 벚꽃을 사랑했던 사람은 실망했습니다. 일년내내 집 주변에서는 꽃을 구경할 수 없다 했습니다.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어 벚나무 몇 그루만 놓아두고 잘라냈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여 애지중지한 나무를 왜 자르냐 물었습니다.
다양한 꽃을 보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이른 봄에 피는 꽃, 늦은 봄에 피는 꽃, 여름에 피는 꽃, 가을과 겨울에 피는 꽃을 연구하여 순차적으로 집 주변에 심었습니다. 몇 해가 지나자 일 년 내내 꽃을 볼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 가지 옷만을 입고, 같은 음식만을 먹고,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답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을 즐기는 이유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음식도 문화도, 사람들도 사소한 환경일지라도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건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다양성이 중요하지만 내면은 변치 않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항구불변입니다.
항구불변이란 절대적 진리는 아닐지라도 성질이 영원할 정도로 오랫동안 바꾸지 않음을 뜻합니다. 사람은 다양성을 좋아해야 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면은 항구불변의 진리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자신들의 글방 앞에 배롱나무를 심었습니다.
배롱나무는 일명 20세기 초까지는 백일홍이라 불렸습니다. 백 일 동안 꽃이 피어있다는 의미입니다. 현대는 배롱나무를 백일홍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배롱나무보다 더 오래도록 피어있는 꽃이 개발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백일홍은 멕시코 산의 지니아 엘레강스(Zinnia Elegans)가 백일홍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배롱나무는 일명 선비 나무로도 불립니다. 선비들이 공부하는 서원이나 정자 주변에 심어 놓고 차를 마시며 공부했다 합니다. 이유는 껍질을 모두 벗어버렸기에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투명하고 청렴한 선비의 지조를 상징한다고 여겼습니다.
서양에서는 이 나무를 일컬어 진실의 나무라 부르기도 합니다. 거실 창 앞에 심어 놓고 온 가족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할 때 나무를 바라보며 마음에 담긴 것을 속이지 않고 진실되게 말하자는 의미를 그렇게 별칭으로 불렀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헤어져 있는 사람들은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합니다. 희망과 기대를 하고 만날 날을 손꼽아 고대합니다. 고산에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전주의 아띠울하우스에서 만난 소중한 믿음의 가족입니다. 헤어져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성장과 성숙이 있었을까? 새로운 집을 지었을 것으로 상상하며 방문하였을 때 감동의 눈물이 나왔습니다.
집은 마치 스위스의 눈 덮인 만년설 자락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는 군살이 하나도 없는 마치 미켈란젤로의 다윗 조각상을 보는 듯했습니다. 거대한 한 덩이 대리석으로 1501년에 시작하여 삼 년에 걸쳐 조각하여 불후의 명작을 조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다윗 상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조각을 할 수 있었냐며 질문했습니다.
“내가 조각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부분을 떼어내어
돌덩이 안에 갇혀 있던 다윗을 꺼내 주었다.”
집을 지을 때 자기 과시용으로 지을 가능성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더해지고 붙여지기를 반복해서 마치 군살이 가득한 비만을 낳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벗님이 지은 집은 바위에 갇힌 다윗과 같이 더함도 덜함도 없이 균형이 잡혀 있으며 마치 스위스 융프라우 만년설 자락에 세워진 그림 같은 집을 만들어냈습니다.
전문가가 디자인하여 세우지 않고 벗님이 직접 설계하고 감독하여 집을 지은 것도 감동인데 더 큰 감동은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배롱나무를 심었다는 거였습니다. 선비의 지조, 진실의 나무, 겉과 속이 같은 일치하는 진실의 삶,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지조의 정체성을 새겨놓고 이름을 '만성래'로 명명했습니다.
연비어약, 솔개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못에서 뛴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엔 하늘을 나는 솔개가 있어야 하고, 연못에서 날뛰는 물고도 존재해야 합니다. 모두가 하늘을 날고, 모두가 물속에서 안락한 삶을 산다면 세상은 붕괴될 것입니다. 다양성이 존재하지만, 절대로 변화되지 않는 본질의 숭고한 마음과 절개, 벗님의 건축을 통하여 배우게 됩니다.
박심원 목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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