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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아름다운 하모니

hherald 2026.03.23 17:50 조회 수 : 11

 사람은 소리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일지라도 배경 소리가 없으면 마치 간을 하지 않은 음식과같이 무덤덤해집니다. 사람이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들을 수 없는 소리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문화마다 소리가 달라집니다. 나라의 입문인 공항에 내리면 소리와 함께 냄새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맡을 수 없지만 이웃 사람들은 한국인의 몸에서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인도 식당에 가면 묘한 카레 냄새가 나며, 중국 식당은 혼합 향료 내음이 식욕을 자극합니다. 냄새만큼 소리는 상상력을 더해 줍니다. 오래전에 이집트를 방문했는데 정규적으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Azan)이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것으로 두통을 앓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잔 소리는 누군가에게는 신앙이지만 이방인에게는 괴로운 소음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 역시 누군가에게는 소음이 될 수 있고, 누군가의 소리는 내게 소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창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할 때 팝송을 유난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의 이름도 생김새조차도 기억나질 않지만, 그가 즐겨듣던 팝송은 언제나 내게 소음이 되었던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영국 생활이 시작될 때가 계절의 여왕 5월이었습니다. 눈부신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마치 지상 천국과 같았습니다. 새벽부터 전해지는 새들의 합창은 행복을 뛰어넘어 경건하게까지 했습니다. 새들의 합창을 듣기 위해 새벽이 기다려지곤 했습니다. 눈을 감고 듣기도 하고 커튼을 젖혀 쏟아져 들어오는 빛과 함께 경건하게 그들의 합창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숙집 할머니는 귀마개를 쓰곤 했습니다. 새벽에 들리는 새소리가 소음으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들리는 소리는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 상태에 따라 아름다운 소리가 되지만 귀를 막아야 하는 소음이 되기도 합니다. 무슨 소리를 듣고 자랐는지에 따라 그의 인격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렸을 때는 강원도 골짜기 산속에서 자랐습니다. 들리는 소리라곤 자연의 소리뿐이었습니다. 사람 소리는 가족 외에는 들리질 않았습니다. 바람 소리를 듣는 것은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키웠던 몇 마리 짐승의 울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려오면 그 상태가 어떤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 울음소리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아침이 되면 소를 밧줄에 길게 늘어뜨려 묶어 놓습니다. 밧줄의 길이만큼 소에게는 자유가 주어집니다. 주어진 범주에서 풀을 뜯다가 거친 풀뿌리에 밧줄이 꼬여서 움직일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소는 울음으로 자신의 상황을 알리곤 했습니다. 바람결에 실려 온 소리를 듣고는 ‘아부지, 소 밧줄이 걸렸데요.’라고 외치면 처음에 믿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신기해했습니다.
 
랜드필 하모닉(Landfill Harmonic)이라는 특별한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세계 유명 방송에 다큐로 방영되었으며 한국 방송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파라과이 빈민촌 카테우라(Cateura)에서 시작된 오케스트라입니다. 그 마을은 일명 쓰레기 마을로 불린 곳입니다. 생활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예전 한국의 난지도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의외로 본능적 기능이 발달했습니다. 이를테면 소리와 냄새에 민감합니다. 소리를 잘 들어야 자신이 안전할 수 있고 굶주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곳 아이들은 방치되다시피 했습니다. 쓰레기 더미를 뒤져 먹고 살아야 하는 삶이 녹록지 않기에 아이들 교육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런 최악의 환경에 선생님이 부임합니다. 쓰레기로 버려진 깡통이나 통을 이용하여 재활용 악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보편적인 오케스트라가 갖추어야 할 악기들을 버려진 쓰레기로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음악을 통하여 잡을 수 없는 무지개가 현실이 되게 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쓰레기를 보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음악으로 되돌려 보냅니다.” 
 
오케스트라 단장인 파비오 차베즈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소음과 더러움이 가득한 곳에서 그들은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장미를 피워냈습니다. 시궁창에서 천상의 꽃을 피워낸 것입니다. 그들은 가난했기에 소리에 민감했고, 차베즈 선생은 약점으로 여겨졌던 것을 강점이 되게 했습니다.
 
소리는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입니다. 소리가 없다면 공포를 주는 영화일지라도 더 이상 공포를 줄 수 없게 됩니다. 멋진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소리를 높여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미한 악기 소리까지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입으로 뿜어내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잦아지면 잔소리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의 입에서 뱉어지는 소리는 교훈이 되고 인문학 특강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내 안에는 고통스러운 소음과 아름다운 소리가 탑재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소리라 할지라도 그것이 장소와 격에 맞지 않으면 소음이 될 뿐입니다. 세상은 소리로 넘쳐납니다. 소리가 소음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운 하모니가 됩니다. 소음과 아름다운 하모니의 결정은 나에게 있습니다. 소음을 입으로 뱉지 않고 아름다운 소리를 말할 수 있음은 내 자아의 성숙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박심원 목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park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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