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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대영박물관에서 시작된 질문

 

런던 대영박물관의 아시리아 전시실에 들어서면 누구나 한 번쯤 걸음을 멈추게 된다. 거대한 인간 얼굴, 힘찬 황소의 몸, 그리고 펼쳐진 날개를 가진 석상이 문을 지키듯 서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고대 앗수르 제국의 수호상, 이른바 라마수(Lamassu)다. 한때 사르곤 2세의 궁전 입구를 지키던 이 거대한 조각은 제국의 권세와 위엄, 그리고 보호를 상징했다.

 

이 라마수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성경 에스겔서에 등장하는 ‘그룹’(Cherubim)은 무엇이며, 이 고대 앗수르의 수호상(Lamassu)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둘 사이의 외형적 유사성 때문에 성경이 고대 근동 신화를 빌려온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신자의 눈으로 보면, 이 문제는 단순한 차용이나 모방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더 깊은 영적 분별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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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를 지키는 수호자들 (Gateway guardians) - 인간의 머리를 하고 날개를 가진 사자와 황소 형상의 존재들인 라마수(lamassu)는 앗수르 도시와 궁전의 입구를 지켰다. 이 조각은 님루드(Nimrud)에 있는 아슈르나시르팔 2세 왕의 왕좌실 입구 양쪽에 세워졌던 한 쌍 중 하나이다. 이 강력한 존재들은 신화적 영웅들이 관련된 옷을 입고 있으며, 왕과 그의 궁전에 마법적인 보호를 제공한다고 여겨졌다. 사람이나 독수리의 머리를 가진 보호 존재들은 오른쪽에서도 볼 수 있다.]

 

 

 

1. 라마수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라마수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이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이었다. 앗수르 사람들은 인간의 지혜와 통찰, 황소의 압도적인 힘, 날개의 속도와 초월성을 한 형상 안에 결합했다. 그리고 그것을 왕궁 문 앞에 세워 악을 막고 왕의 권위를 드러내며 제국의 안전을 보장하고자 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오래된 본성을 본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문을 스스로 지키고 싶어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보이는 힘을 붙잡고 싶어 한다. 더 크고 더 강한 상징을 세워 놓고 그 앞에서 안심하려 한다. 그러므로 라마수는 단지 고대의 예술품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자기 세계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인간 문명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우리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돈과 권력, 경력과 명성, 건강과 관계를 삶의 문 앞에 세워 둔다. 그것들이 나를 지켜 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그런 것들이 전부 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보다 더 깊은 신뢰의 대상이 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우리 시대의 라마수를 세운 셈이다.

 

2. 성경의 그룹(Cherubim)은 누구인가?

 

성경에 나오는 그룹은 일반 독자에게 다소 낯선 존재다. 많은 사람들이 천사를 떠올릴 때 서양 종교화에 등장하는 귀엽고 평화로운 이미지를 생각하지만, 성경의 그룹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룹은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그분의 영광과 거룩함을 드러내는 장엄한 존재들이다.

 

창세기에서는 타락 후 에덴동산 입구를 지키는 존재로 등장하고, 출애굽기에서는 성막의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과 언약궤 위에 그룹의 형상이 나타난다. 또 에스겔서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둘러싼 신비롭고 두려운 존재들로 묘사된다. 요한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물들로 나타난다.

 

즉, 그룹은 인간의 상상 속 수호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를 드러내는 성경적 상징이다. 그들은 인간의 권세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을 중심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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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묘사된 성막에 있는 그룹(Cherubim)의 모습]

 

 

 

 

3. 닮은 점은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에스겔이 본 생물과 라마수 사이에는 분명 외형적 유사성이 있다. 사람, 짐승, 날개라는 요소가 모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 근동 세계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에스겔의 환상은 제국의 상징들을 떠올리게 하는 인상을 주었을 수 있다.

 

그러나 둘을 동일시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라마수는 보통 인간의 머리와 황소나 사자의 몸, 그리고 날개를 가진 혼합 형상이다. 반면 에스겔의 환상에 나오는 생물은 각각 여러 얼굴을 지닌 존재들로 묘사된다. 외형만이 아니라 기능도 다르다. 라마수는 인간 왕의 궁전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 상징이고, 그룹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드러내는 존재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하나는 인간 중심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중심이다. 하나는 제국의 문 앞에 서 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보좌 곁에 서 있다. 하나는 인간이 만든 돌조각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이 증언하는 하늘의 존재다.

 

4. 제국의 문지기와 하나님의 보좌

 

이 차이를 바르게 이해할 때, 우리는 에스겔 환상의 깊은 위로를 발견하게 된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나라를 잃었고, 성전은 멀었고, 제국은 압도적으로 강했다. 사람들의 눈에는 앗수르와 바벨론의 힘이 절대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왕궁 앞에 선 거대한 수호상들은 그런 절대권력의 시각적 선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자신의 보좌를 보여 주셨다. 그리고 그 보좌 곁에는 장엄한 생물들이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세상이 절대적인 힘이라 자랑하는 것들조차도 결국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뜻이다. 제국이 자기 문 앞에 문지기를 세워도, 온 세상의 참된 통치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선언이다.

 

신앙은 바로 여기서 갈린다. 사람은 보이는 거대함에 압도되기 쉽다. 그러나 믿음은 보이는 권세 너머에 계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제국의 수호상이 아무리 크고 웅장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를 대신할 수 없다.

 

5. 성막의 휘장에 새겨진 복음의 그림자

 

구약의 성막에서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에는 그룹이 수놓아져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이 함부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시각적 표지였다. 하나님의 임재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두려운 것이었다. 그룹은 그 거룩함의 경계를 상징했다.

 

여기서 라마수와의 차이가 더 분명해진다. 라마수는 인간 왕의 권세를 지키기 위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성막의 그룹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낮은 존재인지를 보여 주는 상징이었다. 라마수는 인간을 높이기 위해 세워졌고, 그룹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 나타난다.

 

그러나 복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성전 휘장이 찢어졌다. 이것은 죄인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는 복음의 선언이다. 인간이 세운 수호상은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지 못한다. 제국의 문은 지킬 수 있어도 영혼은 지킬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내어 주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을 여셨다.

 

결론. 오늘 우리는 무엇을 나의 문 앞에 세우는가?

 

대영박물관의 라마수는 지금도 조용히 서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히려 강한 질문이 된다. “너는 무엇을 너의 안전으로 삼고 있는가?” 사람들은 여전히 삶의 문 앞에 자기 나름의 수호상을 세우며 살아간다. 경제력, 사회적 지위, 경험, 인간관계, 심지어 종교적 외형까지도 자기 삶을 지켜 줄 것처럼 붙든다.

 

하지만 역사는 분명히 말한다. 앗수르는 무너졌고, 궁전은 사라졌고, 문지기는 박물관 유물이 되었다. 인간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권세는 결국 사라진다. 반면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고, 여전히 통치하신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제국의 문지기를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안전은 눈에 보이는 힘에 있지 않고,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 있다. 이것이 앗수르의 수호상(Lamassu)과 성경의 그룹(Cherubim)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믿음의 시선이다.

 

라마수는 인간이 만든 힘의 상징이다. 그룹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다. 하나는 인간이 스스로를 지키려는 몸부림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만이 참된 왕이심을 선포하는 표지다. 이 차이를 아는 순간, 박물관의 거대한 석상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비추는 배경이 된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제국의 문지기 앞에 설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것인가? 올바른 신앙은 언제나 그 선택에서 출발한다.

 

 

■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글쓴이 전공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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