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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영박물관에서 직접 촬영한 청동부조(bronze relief) 사진 앞에 서면, 관람객은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처음에는 고대 제국의 정교한 금속 공예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표면에 새겨진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공포다. 청동은 오래되어 어둡게 변했지만, 그 안에 새겨진 폭력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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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동부조(bronze relief)는 앗수르 군대가 정복한 사람들에게 가한 폭력과 공포를 보여 준다. 가운데에는 앗수르 군인이 서 있고, 한 손으로 무릎 꿇은 포로의 머리채를 붙잡고 있다. 포로는 벌거벗은 몸으로 고통스럽게 뒤로 젖혀져 있으며, 저항할 힘을 잃은 모습이다.이 장면은 단순한 전투 기록이 아니라, 제국의 힘을 과시하고 반란을 막기 위한 공포의 시각 언어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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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동부조(bronze relief)는 앗수르 제국의 정복 이후 장면을 매우 잔혹하게 보여 준다. 주변에는 잘린 손과 발처럼 보이는 형상들이 흩어져 있어 신체 훼손과 처형을 암시한다. 오른쪽에는 성벽이나 도시 구조물처럼 보이는 장면이 새겨져 있고, 그 위와 주변에는 잘린 머리들이 전시된 듯 보인다. 이 부조는 단순한 전투 기록이 아니라, 정복자의 힘과 공포를 과시하는 제국 선전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진 속 장면은 전쟁 이후의 참혹한 순간을 보여 준다. 앗수르 군인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서 있고, 그 앞에는 저항할 힘을 잃은 포로들이 등장한다. 한 포로는 무릎을 꿇은 채 머리채를 잡힌 듯 보이며, 또 다른 인물은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고 있다. 주변에는 잘린 손과 발처럼 보이는 형상들이 흩어져 있다. 어떤 장면은 말뚝형 처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물론 사진만으로 모든 세부 장면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부조가 전하고자 하는 분위기는 분명하다. 그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지배자의 공포다.

 

고대 앗수르 제국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 나라들을 정복했다. 그러나 그들이 의지한 것은 칼과 창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공포를 사용했다. 정복당한 사람들이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 공개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다시는 반란을 생각하지 못하게 했다. 이 청동부조는 단순한 전쟁 기록이 아니라, 제국이 백성들의 마음을 굴복시키기 위해 만든 시각적 경고문이었다. 말하자면 청동에 새겨진 국가적 협박문이었다.

 

이 장면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인간이 어떻게 같은 인간에게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을까? 문명이 발전하고, 제도가 세워지고, 예술을 꽃피어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고대 앗수르만을 향한 질문이 아니다. 오늘 우리 시대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성경은 앗수르를 단순히 강한 제국으로만 보지 않는다.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를 가리켜 “내 진노의 막대기” (이사야 10:5)라고 표현한다. 이 말씀은 매우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잔혹함을 선하다고 인정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악은 여전히 악이다. 폭력은 여전히 심판받아야 할 죄다. 다만 성경은 교만한 제국조차 하나님의 주권 밖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때로 악한 시대와 강한 세력까지도 사용하셔서 자기 백성의 죄를 드러내시고, 그들을 회개로 부르신다.

 

당시 북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을 떠나고 있었다. 겉으로는 종교가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우상에게 기울어졌다. 예배는 있었지만 정의가 무너졌고, 제사는 있었지만 긍휼은 사라졌다. 가난한 자는 억압당했고, 지도자들은 하나님보다 정치적 계산과 군사적 동맹을 더 의지했다. 그때 하나님은 앗수르라는 무서운 현실을 통해 자기 백성을 깨우셨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앗수르가 최종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앗수르는 자신들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군사력과 잔혹함으로 역사를 움직인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성경은 묻는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느냐.”(이사야 10:15) 도구가 주인을 자랑할 수 없듯, 제국도 하나님의 손 아래 있다. 결국 앗수르 역시 자신의 교만과 폭력 때문에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이 청동부조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첫째, 우리는 죄의 결과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죄는 개인의 마음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죄는 사회를 병들게 하고, 권력을 잔인하게 만들며, 사람을 도구로 전락시킨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힘은 반드시 폭력이 된다.

 

둘째, 우리는 세상의 힘을 절대화하지 말아야 한다.

앗수르의 군인은 강해 보이고, 포로는 약해 보인다. 그러나 성경의 눈으로 보면, 진짜 강자는 칼을 든 제국이 아니다. 진짜 강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세상의 권력은 사람의 몸을 위협할 수 있지만, 영혼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셋째, 우리는 참된 두려움을 회복해야 한다.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세상의 고통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기준을 가지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두려워해야 한다. 세상의 압박보다 죄를 더 두려워해야 한다. 실패보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앗수르의 청동부조는 공포를 새겼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는 복음(Good News)을 새긴다. 제국은 사람을 짓밟아 왕의 영광을 드러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짓밟히심으로 죄인을 살리셨다. 앗수르의 부조는 인간의 잔혹함을 보여 주지만,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 준다. 청동에는 포로의 고통이 새겨졌지만, 복음에는 구원받은 죄인의 소망이 새겨져 있다.

 

오늘도 세상은 힘을 자랑한다. 더 큰 권력, 더 많은 돈,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청동부조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폭력과 힘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공포가 공동체를 살릴 수 있을까? 하나님 없는 권력은 결국 무엇을 낳을까?

 

피 묻은 듯한 청동부조(Assyrian bronze relief)는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너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는 조용히 대답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라. 폭력의 시대 속에서도 은혜의 길로 돌아오라.”

 

■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글쓴이 전공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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