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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세상엔 영원한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영원할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래성처럼 힘없이 무너져 버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인하다 느껴지는 쇠붙이라 할지라도 산산조각 분해됩니다. 이론적이긴 하지만 지구상에 오래 존재하는 척추동물 중에는 그린란드 상어가 400년 이상을 사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불멸의 홍해파리라 불리는 바닷속 벤저민 버턴은 늙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초기화 기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약육강식의 물리적인 힘으로 잡아먹히지만 않는다면 그 존재의 길이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대양백합조개는 약 500년 이상을 존재할 수 있습니다. 
 
북극고래는 200년 이상,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은 170년 이상 존재하는 개체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고작 백 년 미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장수의 대명사로 알려진 학은 실제의 50년 이내로 사는 단명의 존재입니다. 백 세 시대라 하지만 실제로 가까이에서 백 세를 능가하는 어르신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존재하는 것에 끝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존재의 끝은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과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종교적으로도, 인간이 쌓아 놓은 지식 체계에 존재하는 어떠한 이론으로도 속 시원하게 설명할 순 없는 일입니다. 
 
존재의 시작은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그 존재의 시작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몇 해 전 새해 첫날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기 위해 수많은 인파 속에 있었습니다. 그해에는 역사적으로도 가장 선명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태양이 선명하게 동해에서 떠오를 때의 모습을 일컬어 오여사라고 합니다. 
 
수많은 인파가 오여사가 떠오르기를 기대하는 맘으로 각양각색의 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추운 겨울의 새벽을 견디어 내고 있었습니다. 서로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카메라 데드라인을 넘어서지 않았습니다. 작은 카메라는 앞으로 나오고 키 높은 카메라는 뒤로 빠져서 서로의 조화를 이뤘습니다. 
 
드디어 오여사가 떠오르는 조짐이 동해를 붉게 물들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초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농익은 태양, 드넓은 바다를 먹기 좋게 익은 감 홍시처럼 붉게 물들이며 오여사가 떠오르는 찰나 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카메라 데드라인 경계를 가로질러 달려 나갔습니다. 그녀의 움직임으로 조정해 놓은 카메라는 순식간에 혼선이 왔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15초에서 30초 이내에 가장 좋은 선홍빛을 담을 수 있게 됩니다. 그녀의 비명으로 대열이 무너진 카메라 군단들은 다시 재정비하기 위해 초를 다투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나중에 그 여인에게 물어봤습니다. 자신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에 비명이 나왔고 몸을 주체할 수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했습니다. 경이로움에 대한 경배의 마음이 폭발적으로 발동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존재의 시작은 마치 그와 같습니다. 처음 손자의 탄생을 봤을 때 아직 하루가 채 가기도 전에 세상에서 가장 쭈글쭈글한 작디작은 존재를 간호사 선생님이 안고 복도를 걸어오는 길을 따라 하늘에서 조명이 비쳤습니다. 한 걸음씩 가까이 올 때 무릎을 꿇고 손자를 향해 소리 지르며 경배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 지르며 경배의 마음으로 달려 나간 그 여인 이상의 감동의 경배였습니다. 
 
일 년 전 아들과 같은 사위를 하늘로 보냈습니다. 아들은 인사도 없이 홀연히 하늘로 떠났습니다. 이제 불혹의 나이를 넘어선 젊은이가, 살면서 감기 한번 걸리지 않을 만큼 건강한 젊은이가, 영국에서 닥터가 되었기에 건강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젊은이가, 아침을 깨울 수 없는 마지막 밤을 보냈다는 사실에 목 놓아 울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에 있는 모든 질서가 파괴되기를 바랄 만큼의 마음 세상이 파괴되었습니다. 
 
아들을 하늘로 보내고 일 년을 보내면서 아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 서글픔, 애절함, 이론적으로 이해되지만 실제로 해석되지 않는 죽음을 목도 하면서 쓴 시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하늘로 간 아들에게> 내 영혼을 갈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습니다. 뼈를 갈아서 펜을 만들고, 살을 이겨서 종이를 만들고, 피를 찍어 써 내려갔습니다. 감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2주일 만에 완판이 되어 재판을 찍어낼 만큼의 사랑을 보내왔습니다.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책을 받아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백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한 번에 다 읽었다는 고백입니다. 죽음을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임을 배웠다며 눈물겨워 했습니다. 눈물은 슬픔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저 영원한 나라의 비전을 향한 거룩한 외침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지인이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해 주며 위로를 대신하고 싶다 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죽음과 희망의 조화라 했습니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시작과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존재 없음에서 존재의 시작으로, 끝은 존재의 마감이 아니라 영원한 새로운 존재의 찬란한 시작이기에 끝은 슬프지만, 새로운 희망의 선물입니다. 아들은 이 땅에서 존재의 끝을 보인 듯하지만, 실제론 저 영원한 나라에서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절망이 새로운 희망이 됩니다.
 
 

박심원 목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park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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