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 1799 – 1837, 러시아) 의 시 정도는 흥얼거려야 지성인처럼 보였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우울한 날들을 견디면/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현재는 슬픈 것/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꿈 많던 시절 아쉬움이 있다면 고난과 고통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직면해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그저 시 한 수 외우는 것으로 고통과 고난은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거나, 혹은 젊은 시절 잠시 스쳐 가는 낭만적인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됩니다. 고통과 고난을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질이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고통과 고난의 이론적인 해석은 이렇습니다. 고통은 몸이 괴로운 형태이며, 고난은 그 고통으로 인한 정신적, 심리적인 어려움을 일컫습니다. 고통은 의학적으로 괴로운 형태를 증명해 낼 수 있지만, 고난은 생각과 마음의 영향이기에 증명해 낼 수 없게 됩니다. 고통은 물리적인 증상이라면 고난은 심리적 증상으로 주로 환경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의학의 도움으로 제거할 수 있는 일이며, 고난은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야 하는 형태입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크리스천 지성인 C.S. 루이스는 고난에 대해 “귀먹은 사람을 깨우려는 하나님의 확성기다.” 라 했습니다. 1942년에 출간된 그의 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크루테이프는 성도들의 믿음을 이간질하여 넘어지게 하는 사단입니다. 그의 조카인 ‘웜우드’는 삼촌인 사탄으로부터 성도들의 신앙을 무너지게 하는 31가지 비법을 편지 형태로 사사 받는 우화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비법은 인간들에게 고난을 주지 말라 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받게 되면 인간들은 생각하게 되고,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어서 삶을 뉘우쳐 바르게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적당한 성공을 주어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사단의 가르침입니다.
고통이나 고난의 유권 해석을 정확하게 하지 않을지라도 인간은 고통이 오게 되면 삶을 잠시 멈추고 내면세계를 돌아보게 됩니다. 고난이라는 가시밭길이 있었기에 영성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단련된 인물을 꼽으라면 다윗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시편의 150편 중의 100편 정도가 다윗이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다윗의 이름이 들어간 시는 73편이지만 다윗이 쓴 것이라 확정되는 시는 시편의 삼 분의 일이나 됩니다.
그중에서 인기 있는 시는 시편 23편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입니다. 그다음으로 많이 인용되는 시는 시편 1편인 “복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그러나 다윗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시를 쓰면서 제목에 황금시라는 이름으로 6편을 선정해 놓았습니다. 시16 편, 56편, 57편, 58편, 59편, 60편입니다.
이 여섯 편의 시 앞에는 ‘다윗의 믹담’ 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믹담’(miktam)은 ‘속죄의 송가’라는 의미도 있지만 유대 랍비들은 이를 ‘황금시’(The Gold Psalm)라 불렀습니다. 황금시의 대표는 57편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3천 명의 군사들에게 특별 명령했습니다. 더 이상 이스라엘 땅에는 숨을 곳이 없어 다윗은 국경을 넘어 적국인 블레셋의 가드로 숨어들게 됩니다.
가드는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고향입니다. 다윗이 숨어 들었다는 소문은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전해집니다. 다윗은 아기스 왕을 두려워하여 미친 체하여 대문짝에 몸을 비비며 수염에 침을 흘렸습니다. 아기스는 그런 다윗을 보며 미치광이라며 쫓아냅니다. (삼상21:10-15) 아기스에게서 쫓겨난 다윗은 블레셋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의 헤브론 근처에 있는 동굴에 숨어들게 됩니다. 그 동굴이 ‘아둘람’ 동굴입니다. (삼상22)
이 동굴에서 쓴 시가 바로 시 57편입니다. 이 시를 찬찬히 묵상하게 되면 동굴로 피신한 비참했던 다윗의 모습은 볼 수 없고, 사울을 원망하거나, 아기스 왕을 저주하지도 않았습니다. 비록 비좁은 동굴이지만 그곳은 다윗의 꿈을 이루게 되는 원대한 궁전이 됩니다. 다윗이 동굴에 숨어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 400명이 찾아옵니다. 다윗은 그곳에서 다윗 왕국의 초석을 놓게 됩니다.
삶이 다윗을 속일지라도 다윗은 노하거나 분내거나 삶에 휘둘리지 않고 주어진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갔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삶에 휘둘리지 않고 본받아야 할 믿음이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