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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선택과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 선택은 단순히 직업이나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결단이다. 성경에는 그런 갈림길에 섰던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왕궁에서 자랐고, 권력의 중심에 있었으며, 미래가 이미 보장된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모세’이다.

 

오늘 우리는 모세가 서 있었던 자리를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왕의 자리와 함께 바라보려고 한다. 그 왕은 바로 ‘아멘호텝 3세’이다. 한 사람은 이집트 황금기를 완성한 왕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황금기를 버린 종이었다.

 

이 두 인물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묻고 계신다. “너는 무엇을 붙들고 살 것인가?”

 

1. 아멘호텝 3세(Amenhotep III) — 완벽해 보였던 질서의 왕

 

이집트는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국경은 안정되었고, 전쟁의 북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왕궁에는 금이 넘쳤고, 신전은 태양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제국은 질서 정연했고, 세계는 잘 작동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아멘호텝 3세’가 있었다.

 

아멘호텝 3세는 실패한 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이집트가 꿈꾸던 이상을 가장 완성도 높게 구현한 통치자였다. 아멘호텝 3세는 싸우지 않았고, 대신 관계를 맺었다. 칼을 들지 않았고, 대신 외교 문서를 주고받았다. 미탄니와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의 왕들은 그를 ‘형제’라 불렀고, 이집트의 부를 부러워하며 금을 요청했다. 제국은 안정되었고, 왕의 통치는 흠잡을 데 없어 보였다.

 

도시들은 아름다웠다. 룩소르와 카르나크의 신전은 질서의 미학을 돌로 새겼고, 테베 서안에 세워진 거대한 장제전은 왕권의 영원을 선언했다. 지금은 두 개의 거대한 좌상만 남아 있는 멤논의 거상은, 한때 이집트가 얼마나 크고 견고했는지를 침묵으로 증언한다. 아멘호텝 3세는 신전을 세움으로써 “이 세계는 안정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멘호텝 3세는 자신을 신적 존재로 연출했다. 태양신의 사랑을 받는 자, 살아 있는 신의 현현. 이집트 왕권 이데올로기는 아멘호텝 3세의 시대에 가장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왕은 신이었고, 신은 질서를 보증했다. 질서가 신적이라면, 그 질서는 질문될 필요가 없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집트의 완성은 동시에 한계를 품게 된다.

 

제국의 평화는 정의의 결과라기보다 억제력의 산물이었다. 반란은 불가능했고, 저항은 체제 안에서 소거되었다. 전쟁이 없다는 사실은 곧 울부짖음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단지 그 울부짖음이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다. 외교 문서에는 왕들의 인사와 금의 수량이 적혀 있었지만, 노예들의 이름은 없었다. 국제 질서는 안정되었으나, 내부의 고통은 제도 밖에 남아 있었다.

 

아멘호텝 3세의 위대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아멘호텝 3세는 제국을 잘 관리했다. 너무 잘 관리했기에, 이집트는 더 이상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았다. 신전은 찬란했고, 질서는 견고했으며, 왕권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질서는 노예제 위에 세워진 질서였다. 평화는 누군가의 강제된 노동 위에 놓여 있었고, 아름다움은 누군가의 신음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집트는 개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반면에 이집트는 출애굽을 필요로 하는 질서였다. 이것이 성경이 바로를 단순한 악한 인물로 그리지 않는 이유다. 출애굽기의 문제는 한 사람의 폭정이 아니라, 너무 잘 작동하는 체제였다. 선한 왕이 와도 유지될 수밖에 없는 구조, 도덕적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 시스템. 아멘호텝 3세는 그 체제를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한 왕이었다.

 

바로 그 시대, 왕궁 어딘가에서 한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그는 이집트의 모든 지혜를 배웠고, 왕이 될 수 있는 교육을 받았다. 만약 그가 이집트에 남았다면, 그는 아멘호텝 3세보다 더 유능한 통치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더 인간적인 제국, 더 정의로운 개혁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집트를 고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불러내셨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제국의 개선이 아니라, 백성의 해방이었다. 가장 안정적인 질서에서 떠나는 것, 가장 완벽해 보이는 세계를 뒤로하는 것. 그것이 출애굽이었다.

 

모세는 이집트가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에 떠난 것이 아니다. 이집트는 너무 완벽해 보였기 때문에 떠나야 했다. 그래서 출애굽은 반란이 아니라 신앙의 선택이 된다. 하나님 없는 질서가 아무리 잘 작동해도, 그 질서는 언젠가 떠나야 할 질서라는 고백. 아멘호텝 3세의 황금기는 그렇게, 성경 안에서 하나의 질문으로 남는다. 가장 잘 작동하는 세계가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세계는 아니다.

 

2. 모세 — 왕이 될 수 있었던 사람

 

이제 시선을 바꿔 보겠다. 성경은 모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세는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행 7:22).

 

이 말은 단순한 교육 이야기가 아니다. 모세는 왕이 되기 위해 준비된 사람이었다. 왕궁 교육, 행정과 외교 감각, 정의에 대한 강한 내적 민감성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만약 모세가 히브리인의 정체성을 내려놓았다면, 모세는 충분히 아멘호텝 3세보다 더 유능한 바로가 될 수 있었다. 어쩌면 노예 제도를 완화하고, 이집트를 더 인간적인 나라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모세는 왕이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히 11:24).

 

모세의 선택은 실패가 아니라 거절이었다. 모세는 기득권을 포기했고, 보장된 미래를 내려놓았다.

 

3. 선택의 본질 — 더 큰 나라? vs 하나님의 백성?

 

히브리서 11장은 모세의 선택을 이렇게 해석한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5).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모세는 덜 좋은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모세는 더 안전한 길 대신 더 참된 길을, 더 큰 권력 대신 더 깊은 부르심을 택했다는데 있다.

 

아멘호텝 3세는 제국을 유지했다. 모세는 제국을 떠나게 만들었다. 아멘호텝 3세는 돌로 신전을 남겼고, 모세는 말씀과 공동체를 남겼다. 하나님은 이집트를 개혁할 사람보다, 이집트를 떠날 사람을 부르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라보다 언약의 실현을 원하셨기 때문이다.

 

결론: 오늘 우리 앞에 놓인 두 개의 왕좌

 

오늘 우리 앞에도 두 개의 왕좌가 있다. 하나는 안정과 보장된 미래의 왕좌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불확실하지만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길이다.

 

모세는 말한다. “나는 왕이 될 수 있었지만, 종이 되었다.” “나는 황금기를 가질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시간을 택했다.” 그래서 성경은 모세를 기억하고,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왕은 침묵 속에 남겨 둔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질문을 남기고 싶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살고 있는가? 왕좌인가, 아니면 부르심인가? 하나님은 오늘도 묻고 계신다. “너는 어느 자리에 앉아 있기를 원하느냐?”

 

아멘호텝 3세는 이집트의 황금기를 만들었다. 모세는 그 황금기를 버리고 하나님의 시간을 열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은 왕좌에 앉은 자보다, 왕좌를 내려놓을 줄 아는 자를 통해 역사를 시작하신다.

 

■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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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호텝 3세(Amenhotep III)의 왕관은 상(上)·하(下) 이집트를 상징한다 - 연꽃과 파피루스] 고대 이집트에서 국토는 단순히 지리적 구분이 아니라 우주 질서의 두 축이었다.

▪상(上) 이집트: 나일강 상류, 남쪽 → 상징 식물: 연꽃(Lotus) → 의미: 재생, 태양의 떠오름, 생명의 시작

▪하(下) 이집트: 나일강 하류, 북쪽 델타 → 상징 식물: 파피루스(Papyrus) → 의미: 번영, 다산, 질서의 확장. 이 두 식물은 단순한 지역 마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가 하나의 질서 안에 묶여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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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논의 거상]은 ‘아멘호텝 3세’가 세운 두 개의 거대한 석상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아멘호텝 3세 자신의 장례 신전 입구을 지키는 문지기 역할을 했다. 멤논의 거상은 아멘호텝 3세가 자신을 ‘영원한 왕’으로 남기려 했던 흔적이며, 동시에 완벽해 보이던 이집트 제국의 잔해를 상징한다.

 

 

글쓴이 전공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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