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탄, 기회를 놓친 자의 절규입니다. 살다 보면 기회가 찾아 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주어진 기회를 잘 포착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기회를 포착한다는 것은 생각대로 쉽지 않습니다. 기회는 기회라고 외치면서 찾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귀한 보석을 구하러 여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다다랐을 때 사람들이 생각할 때 별 쓸모 없는 밭 깊숙한 곳에 귀중한 보석이 매몰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밭 주인을 만나서 매매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밭 주인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조차 버려진 밭을 사려하는지 의문을 남겼습니다.
여행자는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가산을 정리하여 현금화 하여 밭 주인에게 값을 지불하고 밭을 구매했습니다. 그리곤 그가 하는 일은 밭에 숨겨진 보석을 발굴해 내는 거였습니다. 그냥 평범한 밭이었지만 소석이 발굴 된 후로는 보석의 가치 뿐 아니라 버려진 밭도 가치가 올랐다는 이야기 입니다. 오래도록 그 밭은 소유했지만 숨겨진 보석의 기회를 밭주인은 몰랐던 것입니다.
기회는 항상 숨겨져 있습니다. 때론 절망 속에 숨겨져 있으며,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숨겨져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구도 기회의 보석이 찾아 온 것임을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회를 포착한다는 것은 배움을 통해서 알아 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학이시습이란 말이 있습니다. 배움은 반복해서 해야 한다는 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번 듣고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배움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말이 이래서 생겨난듯 합니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평생을 배워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배우지 않는다면 본능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기에 제한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평생을 배워야 합니다. 배움은 자기 확장입니다. 자기많이 쌓은 비좁은 울타리를 헐러 버리고 넓은 곳으로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배움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배움은 발가벗기는 수치를 이겨낼때 가능해 집니다. 옷은 수치를 가릴 수 있지만 입은 만큼 배움에 제한을 받게 됩니다.
풍수지탄, 기회를 놓친 자의 절규입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섬기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을 절절히 표현한 시구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자식은 부모가 죽은 후에 진정한 효자가 된다.' 합니다. 부모가 죽은 후에 효를 한다 한들 그것은 진정한 효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주변인들에게 효가 비칠 뿐이고 효를 하지 못한 자식에게 심리적 안정을 줄 뿐입니다. 효를 하지 못함에 대해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듯이 배움도 그러합니다. 배움의 시간이 주어질 때는 배움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합니다. 질풍 로드의 시대로 배움을 온몸으로 거부합니다. 배울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풍수지탄하게 됩니다.
배움은 진정한 자기 쇄신입니다. 변화를 위해 가죽을 벗겨내고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야 합니다. 배움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해야 하고, 시간을 투자 해야 합니다.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습관이지만 전체적으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빨리 읽는 사람이 아니라 꾸준하게 오래도록 읽는 사람, 즉 시간을 오래도록 투자한 사람입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토끼가 당연히 이겨야 할 경주였지만 결론은 거북이기가 승리합니다. 토끼와 거북이를 경주시킨 것은 그들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교훈을 위해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경기를 치르게 한겁니다. 토끼는 자기 능력을 믿은 것이 아니라 상대인 거북이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상대를 본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레이스를 쉼없이 한 것입니다. 결과는 거북이의 승리입니다.
한 방울 물방울은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쉬지 않고 떨어지면 바위에 아름다운 구멍을 낼 수 있습니다. 바로 거북이 전법인 셈이지요. 타고남 보다는 꾸준하게 배우고 훈련하는 사람을 이겨낼 수 없게 됩니다. 토끼는 타고난 탁월함이 있기에 그 탁월함을 믿고 자만했다면 거북이는 타고남은 부족할지라도 꾸준하게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린 성실함입니다.
오래 전에 설악산을 방문했습니다. 어렸을 때 뛰어놀던 곳입니다. 아련한 아픔의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설악산 방문을 꺼린 적도 있었습니다. 뛰어놀던 곳에 갈대숲이 많았었는데 숲은 온데간데없고 닳고 닳은 돌들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돌들이 온몸으로 나그네 인생을 반겨주었습니다. 벗기고 벗겨져 하얗게 닳아 있었습니다. 교만이 벗겨지고, 자만심도 벗겨지고, 욕망도 벗겨진 뽀얀 속내를 드러냅니다.
벗기고 벗겨진 것은 수치이기도 하지만 거룩한 성장입니다.
진정한 배움은 자만과 교만이 벌거벗겨진 상태여야 합니다.
벗겨져야 자기 쇄신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쇄신을 통해 발전하고 성숙해 지는 일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