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세계는 수많은 신들로 가득 찬 세계였다. 비, 바람, 태양, 죽음, 풍요, 전쟁—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모든 영역에는 신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유일신”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
기원전 14세기, 한 왕이 등장한다. 그는 고대 이집트 제국의 절정기 한가운데서 이렇게 선언했다. “신은 하나다. 그리고 그 신은 태양 광선이다.”
그의 이름은 아크나톤. 많은 이들이 그를 “인류 최초의 유일신교도”라 부른다. 그러나 성경은 또 다른 “유일신” 이야기를 들려준다. 태양도, 별도, 자연현상도 아닌,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노예의 신음에 반응하시고,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이시다.
오늘 우리는 이 두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살펴보려 한다. 태양을 붙든 왕의 유일신과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드러내시며 사람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부르시는 유일하신 하나님. 이 둘은 겉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완전히 다른 신임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이단자 왕’ 아크나톤 (The ‘Heretic King’ Akhenaten) - 아크나톤은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왕이었다. 그는 전통 종교를 공격하고, 오직 하나의 신만을 숭배하도록 강요했다. 이 조각상은 아크나톤이 왕비 네페르티티와 여러 딸들과 함께 아텐(Aten)의 축복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아텐은 태양 원반으로 묘사되었으며, 그 광선은 끝에 손이 달린 모습으로 생명을 베푸는 장면으로 표현된다.]
1. 아크나톤(Akhenaten): 황금 제국 위에서 시작된 신학 실험
아크나톤(Akhenaten)은 몰락한 제국의 왕이 아니었다. 그는 아멘호텝 3세(Amenhotep Ⅲ)와 티예 왕비에게서 태어난 아멘호텝 4세(Amenhotep IV)였다. 아멘호텝 3세와 티예 왕비가 물려준 이집트는 전쟁도 부족함도 없는 “완성된 제국” 그 자체였다. 외교는 안정적이었고 국고는 넘쳤으며 신전은 황금으로 빛났다.
문제는 신전이 너무 강해졌다는데 있었다. 테베의 최고신 ‘아문(Amun)’을 섬기는 신관(제사장)들은 왕과 경쟁할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졌었다.
아크나톤은 여기서 결단한다. “신은 하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신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는 왕이어야 한다.” 이것이 아크나톤의 종교 개혁의 출발점이었고 자신의 이름 ‘아멘호텝 4세’(Amenhotep IV)를 ‘아크나톤’(Akhenaten)으로 바꾸어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
2. 아텐(Aten): 빛은 있으나 목소리는 없는 신
‘아문(Amun)’은 ‘테베’의 최고신이었다. ‘호텝(Hotep)’의 뜻은 ‘만족하다’, ‘기뻐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멘호텝’(Amenhotep)은 ‘아문’신이 만족하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아크나텐’은? ‘아크’는 “기쁨을 주는 자”, “유익한 자”, “신에게 합당한 존재”라는 뜻이다. ‘Aten’은 “태양의 원반”, “태양의 광선 자체”를 뜻한다. 그러므로 ‘아크나톤’(Akhenaten)은 “아텐에게 유익한 자”, “아텐을 위해 살아가는 자”, “아텐의 뜻을 실현하는 자”이다.
아크나톤이 선포한 유일신은 ‘아텐(Aten)’이었다. 인간의 형상도 아니고, 동물의 모습도 아니며, 오직 태양 원반과 그 광선으로만 표현되었다. 이 신은 철저히 추상적이었다. ‘아텐’은 말하지 않았고, 명령하지 않았고,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저 비추고, 생명을 유지시킬 뿐이었다. 그래서 아텐 신앙의 핵심 찬가는 이렇게 말한다. “아텐이 떠오르면 세상이 살아 있고, 아텐이 지면 모든 것이 잠든다.”
아크나톤의 유일신은 도덕적 판단자도, 언약의 주체도 아닌 ‘질서의 에너지’에 가까운 신이었다.

[아크나톤의 개혁은 예술을 바꾸었다. ‘바로’는 웃고, 아이를 안고 있는 인간적인 ‘바로’로 묘사된다. ‘Aten’은 “태양의 원반”, “태양의 광선 자체”를 뜻한다]
3. 출애굽의 하나님: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분
이제 성경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 이 선언은 단순한 철학적 존재 증명이 아니다. 히브리어로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의 뜻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출애굽의 하나님은 태양이 아니었다. 단순한 자연 법칙이 아니었다. 출애굽의 하나님은 노예의 신음에 반응하시는 분이었다.
아텐은 단순히 빛만 비추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신다. “모세야, 모세야.” 여기서 우리는 ‘아텐’과 ‘하나님’은 결정적으로 완전히 다른 신임을 알 수 있다.
4. 유일신의 방향: 위에서 아래로 vs 아래에서 위로
아크나톤의 유일신 신학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왕→신 ▪ 백성→침묵). 신은 왕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하고, 백성은 직접 부를 수 없다.
반면 출애굽의 신학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내 백성의 고통을 내가 분명히 보았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내가 들었다”(출 3:7).
그러므로 출애굽의 하나님은 왕궁이 아니라 노예 숙소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아크나톤의 유일신은 권력을 정당화하는 신이었고, 출애굽의 하나님은 권력을 무너뜨리는 신이었다.
5. ‘아마르나’의 광야 vs ‘출애굽’의 광야: 두 개의 ‘새로운 시작’
아크나톤은 기존의 수도 테베를 떠나 광야에 새로운 도시를 세운다. 그 이름은 아케타톤(Akhetaten), “아텐의 지평선”이다. 겉으로 보면 출애굽과 매우 닮았다. 새로운 수도 ‘아케타톤’은 옛 질서인 ‘테베’를 떠났다. 광야로 나아갔다. 새로운 신 중심 공동체 ‘아마르나’를 광야에 건설했다.
그러나 본질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아마르나’는 왕이 설계한 도시였다. 왕을 중심으로 한 신앙이었다. 그러나 광야에 새롭게 건설된 수도 ‘아마르나’는 ‘아크나톤’(Akhenaten) 왕이 죽자 그 공동체도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시나이 반도의 광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을 정착이 아니라 이동하면서 40년 동안이나 걸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지된 공동체였다. ‘모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죽어도 ‘여호수아’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통해 계속되는 ‘언약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공동체였다.
6. 예술의 변화 vs 삶의 변화
아크나톤의 개혁은 예술을 바꾸었다. ‘바로’는 웃고, 아이를 안고 있는 인간적인 ‘바로’로 묘사된다. 그러나 백성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노예 제도는 유지되었고, 억압 구조는 그대로였다.
출애굽은 다르다. 하나님은 예술을 바꾸기보다 삶의 질서를 바꾸셨다.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애굽 왕 바로의 소유였던 노예들에게 광야에서 자유를 얻게 하셨다. 애굽은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렸지만, 하나님은 율법을 스스로 지키게 함으로 자존감이 넘치는 나라로 만드셨다.
하나님은 돌로 만든 빛난 조각상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삶으로 드러나는 거룩을 요구하셨다.
7. 혁명의 실패와 언약의 지속
아크나톤이 죽자 모든 것은 무너졌다. ‘아텐’ 신앙은 즉각 폐기되었다. 아마르나 신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아크나톤’의 이름은 파괴되었다. ‘아크나톤’의 아들 ‘투탕카멘’은 옛 신들을 복원하며 질서를 되돌렸다.
왜일까? 아크나톤의 유일신은 왕 개인의 신학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출애굽의 하나님은 백성과 맺은 대대로 이어지는 ‘언약의 하나님’이었다. 모세는 죽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리더십을 여호수아가 이어갔다. 이스라엘 왕들이 타락해도,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며 바른길로 되돌렸다.
결론: 태양은 지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남는다
아텐은 해가 지면 사라지는 신이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포로기에도, 폐허 속에서도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으로부터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위로와 희망의 이름이었다.
아크나톤은 말했다. “신은 하나다.” 그러나 출애굽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다.” 이 차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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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전공수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