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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고종, 빌헬름 2세 그리고 밀서 密書

hherald 2019.09.02 17:14 조회 수 : 1906

 


독일 마지막 황제였던 빌헬름 2세의 후손들이 왕실 소유였다가 빼앗긴 보물과 재산을 반환해달라고 독일 문화제 관리재단 등에 요구했다고 독일 언론이 보도했다. 빌헬름2세의 후손들은 호엔촐레른 가문으로 18세기부터 1918년 1차 세계대전 패망까지 독일을 통치한 프로이센 왕국의 지배 세력이다. 1차 세계대전 뒤 왕실 재산을 빼앗겼다가 1926년에 많은 성과 저택을 돌려받았는데 재산 대부분이 소련에 있었던 탓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이번에는 소련에 모조리 빼앗긴다. 그러나 1990년 독일 통일 후에는 정부 산하 박물관, 문화재단 등지에서 이 가문이 남긴 보물과 재산 대부분을 관리해왔다. 왕족 후손들이 이 재산을 돌려달라고 관리하는 재단 측과 계속 접촉해 요구했다는 것이다.

 

왕족 후손들의 재산 반환 요구에 독일 국민의 여론은 따갑갑다. 독일 법률에 따라 소련에 재산을 몰수당한 경우는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지만 법을 떠나 1차 세계대전 당시 제국의 황제로서 제 역할을 못 한 책임과 더욱이 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와 교류한 왕족들이 지금에서야 재산 찾겠다고 나서는 걸 곱게 볼 독일 국민이 있을까. 독일에서는 나치에 협력했으면 이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 일제에 협력했으면 조상 재산 돌려달라는 말 하지 말라는 법이 우리나라에 있었으면 친일파 이해승 후손들의 소송 뉴스 따위는 듣지 않아도 됐을텐데

 

빌헬름 2세가 우리와 아주 관련 없는 게 아니다. 근대 역사에서 '카이저 황제'라고 하면 빌헬름 2세를 일컫는다. 끝이 위로 올라가서 권위와 위엄있게 보이는 멋쟁이 콧수염인 카이젤 수염도 그에게서 유래됐다.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고종 황제는 국서를 작성해 서구 열강의 원수들에게 보낸다. 함께 혹은 따로 밀서도 보낸다. 그때 보낸 친서 가운데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앞선 것이 바로 1906년 5월(1906년 1월에 쓴 것) 빌헬름 2세에게 보낸 것이다. '대덕국 大德國 대황제 폐하'로 시작하는 이 밀서는 독일이 다른 유럽 열강과 함께 조선의 독립을 도와달라는 내용으로 고종의 주권수호 노력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다. 독일은 이 친서에 찍힌 고종의 어새를 감정해 진짜임을 확인했으나 빌헬름 2세가 친서를 봤다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고종은 1905년 11월 17일 체결된 을사늑약을 무효로 하려 백방으로 노력했다. 1905년 12월 민영찬 주프랑스 공사, 이범진 주러시아 공사 등 유럽 주재 공사들에게 '조약 승인 불가' 훈령을 내린다. 영국의 이한응 공사는 그해 5월 이미 순국한 뒤였다. 고종은 훈령을 통해 을사늑약을 우리가 승인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의지를 주재국 정부에 전달하라고 지시하며 <이 나라가 번영을 되찾으려면 우리는 과거와 같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금 같은 훈령을 내린다 해도 고칠 말이 있을까.

 

빌헬름 2세의 후손들이 옛 재산을 찾으려 나선다는 소식이 구한말로 돌아가 고종의 외교 노력을 되짚어 보는 계기를 줬다. 고종의 이런 비밀외교가 국제정세를 제대로 모르는 외교였으며 따라서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하고 결국 나라를 잃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그가 일국의 왕으로서 무너져가는 나라를 두고 고성낙일 孤城落日 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빌헬름 2세와의 밀서가 최근 발견된 뜻도 그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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