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국왕 2023년 11월 8일 런던 코리아타운 뉴몰든 방문기
영국 국왕 찰스 3세(His Majesty King Charles III)가 11월 8일 오후 영국의 한인타운으로 불리는 뉴몰든(New Malden)을 방문했다. 찰스 3세뿐 아니라 영국 왕실 고위 인사가 뉴몰든을 찾아와 한인 사회를 둘러본 것은 처음이다. BBC는 이날 ‘찰스 3세가 코리아타운의 왕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비가 많이 내린 이날, 승용차로 뉴몰든에 도착한 국왕은 직접 우산을 들고 환영나온 한국인과 현지인들에게 인사했다. 특별히 한복을 입고 태극기를 든 어린이들의 환영을 받으며 감리교회(Methodist Church)에 들어갔다.
찰스 3세는 이날 검은 양귀비 장미 배지와 카리브해 및 아프리카 지역 사회의 흑인 퇴역 군인을 기억하는 전통적인 양귀비 배지를 착용했다.
방명록에 서명하고 김치와 김치 요리책을 선물로 받았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않는 국왕은 김치를 선물 받고서 "Will it blow my head off?' (김치를 먹으면 매워서) 머리가 터질까.”라고 농담했다. 윤여철 주영대사에 따르면 국왕이 '배추(cabbage)로 만든 것이죠'라고 물어 '발효된 것'이라고 했다 한다. 이날 선물한 김치는 이하연 대한민국김치협회장이 한국에서 담가 보냈으며 김치 요리책은 뉴몰든 지역에서 전해지는 한국, 북한, 중국 연변의 김치 비법을 모은 것으로, 한영문화교류 KBCE가 제작했다.
왕실을 대리해 초청 업무를 담당한 킹스톤시 관계자는 국왕의 전격적인 방문 목적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 State visit에 앞서 한인사회 주요 인사 및 그와 관련된 지역사회 인사들과의 만남을 갖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언론은 찰스 3세 국왕이 윤 대통령 국빈 방문에 앞서서 뉴몰든에서 한국 문화와 음식을 배웠다고 보도했다.
감리교회에서는 기다리고 있던 한인사회 대표 인사들을 만났다. 한인 단체 대표들과 인사를 나누며 활동 내용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대한노인회 영국지회 소속 노인에게 노인회 가입 나이를 묻고 65세라고 하자 자신은 기준을 통과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탈북민인 이정희 재영탈북민총연합회 회장과 영국 의회의 북한 관련 초당파 모임에서 일하는 티모시 조 씨에게 북한에서 탈출해 영국에 정착한 과정과 가족이 남아있는지 등을 물었다. 또한 어떻게 북한을 떠났는지,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갔었는지 등에 관해 물었고 이정희 회장은 "중국에서 잡힌 탈북민들을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는데 그들이 북한으로 돌아가면 거의 죽을 목숨이다. 이를 막는데 영국 정부가 도와달라"고 국왕에게 요청했다.
런던한국학교 교장, 재영한인회 회장, 한국문화예술원 이사장, 민주평통영국협의회 회장, 한인 출신 킹스톤 구의회 의원 등도 접견했다.
찰스 3세는 런던 한인 허밍버드 합창단 London Korean Hummingbirds Choir의 '아름다운 나라'를 감상하고 합창단원들에게 영국에 온 지 얼마나 됐는지, 한국에 가끔 가보는지 등을 묻고선 약 30여 년 전인 1992년 11월의 방한 기억을 떠올렸는지 "정말 멀다. 진 빠진다(exhausting)"라고 말했다. 또 한인 무용가의 부채춤 공연을 감상했는데 무용가가 공연에 사용한 부채를 건네며 펴보라고 해 국왕이 이를 하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자, 소리 내 웃었다.
국왕은 한인들이 준비한 한식 생일상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우선 재영외식업협회 우옥경 회장이 국왕에게 한식에 관해 설명하고 음식을 직접 준비한 임형수 셰프가 세부적인 설명을 했다. 임형수 셰프에 따르면 이날 준비한 한식은 행사 1주일 전 왕실로부터 국왕에게 한식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마침 며칠 후(11월 14일) 국왕 생일이라 생신진연수라를 만들었다고 한다. 수라상 진설이 워낙 공이 들어가 힘이 들었는데 밤새워 마련해 방짜유기에 담아 국왕에게 선보였다고 한다. 특히 한국음식의 아이콘인 김치 종류를 다양하게 준비했는데 찰스 3세는 김치를 선물 받은 데다 생일상에도 여러 종류의 김치가 있는 것을 보고 관심을 보였다. 국왕을 안내한 킹스턴 구의 한인 구의원 박옥진 씨에 따르면 찰스 3세는 해산물을 재료로 많이 사용해서 한식이 건강에 좋은지, 구절판이 채식인지, 수정과는 어떤 재료로 만드는지 등을 물었고 한번 맛 보라고 했지만 나중에 먹어보겠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어서 전시된 한복과 한·영수교 140주년 기념 전시물들을 둘러보았다.
찰스 3세는 이어 교회 옆 한국 카페(Cake & Bingsoo Cafe)에 가서 김종순 대표와 케임브리지 대학생 허지원 양을 비롯한 청년들을 만나 10여 분 대화를 나눴다. '이게 빙수냐, 종류가 여러 가지냐,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냐, 한 번에 못 먹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평소 얼그레이 차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찰스 3세는 이곳에서 75번째 생일을 기념해 얼그레이 케이크를 선물로 받았다. 김 대표에 따르면 "국왕이 떠날 때 '한국 문화에 관해 많이 알게 됐기를 바란다'고 인사하자 국왕이 답하기를 '윤 대통령을 만나면 한국 문화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라 했다.
찰스 3세는 이후 2차선 도로 길 건너 전쟁 기념비(War Memorial) 앞에서 이형국 국방무관과 함께 도열한 Alderman Ken Smith JP를 비롯한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브라이언 패릿 준장은 한국전이 '잊힌 전쟁'이 되지 않도록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도로변에는 'God save the King!'을 연호하는 군중이 비가 내리는데도 아랑곳없이 계속 모여들었다. 찰스 3세는 공식 행사가 끝난 후 도로변에서는 정해진 동선을 무시하고 즉석에서 대중들 사이로 산책하며 대화를 나눴는데 장희관 재향군인회장, 김지호 노인회장 등이 회원들과 함께 'Welcome! His Majesty King Charles III'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곳으로 와서 비를 맞으며 기다린 노인회원들, 재향군인회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재향군인회 장 회장에게 회원이 몇 명이냐, 윤 대통령 방영 때 참가하느냐 등을 물었다.
영국 언론들은 찰스 3세가 예정된 시간을 넘겨 가며 환영나온 한인들, 현지인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는데 '찰스 3세가 뉴몰든 한인타운 방문을 정말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고 보도했다.
행사장 밖 도로변에서 국왕을 기다린 김지호 노인회장에 따르면 한복을 차려입고 양손에 태극기와 영국 국기를 들고 국왕을 기다리는 한인들에게 대다수 영국인은 미소를 지으며 우호적인 눈길을 보냈다고 한다. 대부분 국왕을 환호하는 가운데 '당신은 나의 왕이 아니다', '가자를 도와달라' 등이 적힌 피켓과 현수막도 있었지만, 눈길을 받지는 못했다.
한편 이번 행사에 한인사회 대표자로 초청된 인사 선발에 큰 문제가 있었다며 향후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인사회의 큰 행사에 한인회가 유명무실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동포사회 인터넷 매체인 <런던타임즈>는 "한인 초청자 선발 기준이 모호해 한인사회의 대표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불만의 소리도 적지 않게 나온다. 이는 한인사회를 잘 알지 못하는 (킹스톤) 시청의 담당자가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소수 한인의 의견에만 의존해 선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향후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과제라고 여겨진다."고 했다.
한인헤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