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선생이 생일날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할아버지라 합니다. 눈물 나도록 가슴 벅찬 감동을 감출 수 없게 됩니다. '이게 내 인생의 자화상이구나.' 자화상은 내가 그려내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비친 모습이 정확한 내 모습입니다. 머리는 작고 배가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특징을 아주 잘 살려냈습니다. 아이에게 내 모습이 이렇게 비친다는 사실에 많은 생각을 하는 자화상입니다.
인생, 참 쉽지 않습니다. 정답을 다 알면서도 답지에 답을 쓰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인생을 시험문제로 풀 수 있다면 밤을 새워 공부해서 만점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같은 생각일 겁니다. 그러나 인생의 시험은 책상 위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이 시험문제라는 사실이 두려운 것입니다. 인생 시험은 어느 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치러야 하는 고단한 일이면서 동시에 내 인생을 비춰볼 수 있는 영혼의 거울입니다.
실상 두려운 것이 아니라 거룩한 책임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 그 아들을 닮은 자녀를 낳습니다. 지금 내 모습은 나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 앨범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청년 시절 아버지와 찍은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수척하고 야윈 자신이 낯설었습니다. 내 모습보다 양복 입은 아버지의 모습은 더 낯설었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내 모습이 아버지를 닮아간다는 사실에, 외모보다는 속마음이,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병약한 부분이 아버지를 닮는 것에 기쁨이면서 속상했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낳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낳는 것이기보다는 닮음을 낳습니다. 낳음은 곧 닮음입니다. 닮음 중에서 마음 아픈 것은 내가 가진 능력과 장점을 닮는 것이 아니라 연약함을 닮는 것에 눈물이 납니다. 내 인생은 아버지의 약함을 닮았습니다. 신비롭습니다. 만약 기계적으로 DNA를 조합할 수 있었다면 좋은 것만을 골라서 강점을 물려줄 터인데 그렇게 하지 못함이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인간이 가진 최고의 강점이 됩니다. 그래서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고 목숨 바쳐 그를 보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약함은 넘어지게 하는 올무가 아니라 최고의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약하기 때문에 그 약함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됩니다. 아버지의 약함을 닮았을지라도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손자 선생 역시 내 인생을 닮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창조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좋은 것만을 물려주는 기계적 진화를 할 수 없기에 내 인생의 가장 연약함을 그도 답습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품어서 그의 인생길을 걸어가는데 영적 디딤돌 역할을 하기 위해 몸부림하게 됩니다.
손자 선생은 나를 닮고, 나는 아버지를 닮고,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닮고, 할아버지는 그의 아버지를 닮고, 그의 아버지는 또 그의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가장 위에 계신 분은 전능자요 창조주께서 존재하십니다. 내 약함을 저주하고 욕한다는 것은 맨 위에 계신 그분을 향한 욕됨이 됩니다. 인간은 거만합니다. 그래서 약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 약점이 있기에 전능자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나보다 못한 이웃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태풍이 오면 강한 나무는 부러집니다. 그러나 연약한 갈대는 태풍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강한 나무는 부러질지라도 연약한 갈대가 견뎌내는 것은 춤을 추듯 태풍을 타는 것입니다. 인생을 감싸는 시간은 마치 태풍과도 같을 때가 있습니다. 성난 노도와 같이 거세게 불어오는 태풍 앞에 맞설 것인지, 아니면 그 태풍 앞에 엎드릴 것인지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맞서야 한다면 목숨을 걸고 맞서야 할 것이며, 엎드려야 한다면 철저한 낮아짐의 부복이 필요합니다.
나무는 나이테를 남깁니다. 사람도 나이테와 같은 무늬를 남깁니다. 그의 인생을 보려면 무늬인 인생 역사를 눈여겨보면 그의 인생이 보입니다. 인간이 남긴 무늬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니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인생의 무늬를 아름답게 포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직 폭력에 몸담은 사람들은 사회에 그늘진 곳을 찾아 돕는 아이러니한 일을 하기도 합니다.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시장을 찾아가서 떡볶이를 먹는 이유가 뭘까요? 정치는 어떻게 보면 보여주기의 쇼와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입니다. 백성이 원하는 정치인은 떡볶이를 먹는 정치적 쇼를 하는 사람이 아닌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고 품는 그런 아비와 같은 사람을 원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 그 사람이 속한 단체가 거룩하거나 깨끗할 수 없습니다. 더러워서 더러운 것입니다. 더러운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더러우므로 더러움이 모여들어서 더러운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힘이 있다면 더러움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선한 일로 둔갑하는 기술이 있게 됩니다. 손자 선생이 그려준 자화상, 내 인생을 더 세미하게 들여다보는 영적 엑스레이가 되기에 충분한 가치 있는 그림입니다.
육체적으로는 병약함을 물려주었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인 거룩함을 물려 주고 싶기에 내 존재 자체를 뒤집어 자신을 잔인하게 살펴봅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고된 일이면서 동시에 기쁨이 됩니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고된 일을 넘어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망각하게 됩니다. 편안한 것만을 추구하게 되고 불편한 것은 거부하게 됩니다. 인생은 불편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정답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 불편함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내가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면서 동시에 나를 치유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유명화가들은 그의 유작이 자기 자신을 그린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내 자화상을 통해 지난날을 회심하려는 순수한 마음과 미래 지향적인 꿈을 꿀 수 있게 됩니다.
박심원 목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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