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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런던도 본격적인 휴가철에 접어들면서 해외 관광객들이 몰려 들고 있다. 반면 ‘런더너(Londoner)’들은 남프랑스로, 그리스로, 이베리아반도의 지중해로 모두 떠났다. 텅 빈 런던 거리를 외국인 관광객들이 채우고 있다. 한국에서도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영국을 방문하고 있어 길거리나 미술관에서 한국말을 듣는 일이 전혀 낯설지 않다. 이제 코로나로 망가졌던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온 듯해서 안심이 된다.
고국에서 온 영국 방문객들에게 ‘런더너들도 잘 모르는 런던의 숨은 명소’와 ‘런더너만 아는 숨은 명소’를 소개하고자 한다. 모두들 아는 영국박물관, 국립미술관, 런던탑이 아니라 정말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란 런더너도 잘 모르거나 런더너만 알고 이용하는, 그러나 알고 나면 반드시 ‘아하!’ 하는 감탄이 나올 명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원수들이 마주보고 있는 마거릿 스트리트
 
영국 역사에서 가장 질풍노도의 시기라면 바로 영국시민전쟁(1642년 8월~1651년 9월) 때다. 당시 잉글랜드 왕이던 찰스 1세와 청교도 대장 올리버 크롬웰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생사를 건 전쟁을 벌였다. 결국 찰스가 져서 크롬웰에 의해 참수형을 당하면서 전쟁이 끝나고 왕이 없는 11년간(1649~1660년)의 공위시대(空位時代·Interregnum)가 열렸다. 이때가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건너온 정복왕 윌리엄 이후 현재까지 잉글랜드 1000년의 역사 중 왕이 없던 유일한 공화정 시기였다.
그런 철천지 원수 사이인 찰스의 흉상과 크롬웰의 동상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어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묘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현재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 성당은 모두 해당 교구를 관장하는 주교의 관할에 속해 있는데 단 두 개의 성공회 성당만 영국왕의 직할로 되어 있다. 하나는 왕의 주말 거처인 윈저성에 있는 성조지성당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남편 필립 공작과 같이 묻혀 있는 곳이다. 다른 하나는 역대 왕의 대관식을 비롯해 윌리엄 왕세자 부부 결혼식과 다이애나 왕세자빈 장례식이 열렸던 웨스트민스터사원이다. 그 대단한 왕실 성당 경내에 평민교회 하나가 조촐하게 들어서 있다. 바로 영국 최고의 명총리 윈스턴 처칠 경이 결혼식을 한 교회이다. 동서로 세워진 이 교회 동쪽 끝 바깥 벽에 납으로 만들어진 찰스 1세의 흉상이 부착되어 있다. 그리고는 바로 길(St. Magaret Street) 건너편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앞 마당 ‘크롬웰 그린 정원’에 크롬웰 동상이 석조 기단 위에 높이 서 있다. 마치 둘을 대결시켜 놓듯이 정면으로 바라보게 대치시켜 놓은 모습이다.
찰스는 크롬웰을 바라보고 있는데 크롬웰은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를 일러 사람들은 찰스를 참수시킨 양심의 가책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크롬웰 동상은 1899년 10월 31일 공화정을 추앙하는 하원의원들의 제안에 의해 영국 정부 주도로 세워졌다. 아일랜드 독립 전이라 크롬웰의 유명한 아일랜드인 대학살(1649~1653년)에 아직도 치를 떠는 아일랜드 지역구 하원의원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설립되었다. 반대편 벽의 찰스 흉상은 ‘순교자 찰스왕 협회’의 찰스 추종자에 의해 고물상에서 1945년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이후 1950년 성마거릿교회에 기증되어 설치되었다. 설치 당시 크롬웰 동상에 맞서는 찰스 흉상이 설치될 장소로 더 이상 적합한 곳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기증을 할 때 흉상을 크롬웰 동상 바로 앞 벽에 설치하라는 조건으로 거액을 기부했다는 설이 있기도 한데 거의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된다.
 
더군다나 찰스의 아들 찰스 2세가 프랑스에서 돌아와 복권한 뒤 웨스트민스터사원 안에 묻힌 크롬웰 수하들의 묘를 파묘한 뒤 부관참시하고 화장해서 성마거릿교회 마당에 뿌렸으니 더욱 뜻이 있었을 것이다. 찰스 2세는 웨스트민스터사원 제일 성스러운 동쪽 끝 지성소(至聖所)에 묻힌 크롬웰도 파묘해서 부관참시하고 잘린 머리는 현재 동상 바로 뒤 웨스트민스터 홀 지붕에 30년 이상 걸어놓는 중벌을 내렸다. 크롬웰의 머리는 그러다가 결국 사라져서 개인들 손을 거쳐 1960년 크롬웰의 모교인 케임브리지대학교 시드니 서섹스 칼리지에 보관되는 운명을 맞았다.
크롬웰은 영국인들 사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아직도 영웅인지 폭군(tyrant)인지가 결론 나지 않아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인물이다. 짧게나마 공화정을 시도해 영국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영웅이냐, 아니면 왕을 살해하는 중죄(regicide)를 저지르고 청교도혁명이란 미명하에 거의 20년간 영국인들을 억압한 공포의 폭군인지가 말이다. 그러나 영국 왕실의 입장은 분명한 듯하다. 영국 역사에서 유일하게 참수당한 왕의 이름을 따서 현재의 왕이 찰스 3세라고 왕명을 정한 걸 보면 간접복수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웨스트민스터 의회당의 크롬웰 동상과 성마거릿교회의 찰스 흉상 중간 길에 서서 양쪽을 돌아보면서 영국 역사와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돌이켜보는 일도 뜻이 있을 듯하다.
 
 
 
 
 
 
유엔이 탄생한 세계감리교회 총본부
 
웨스트민스터사원 서쪽 정문 건너편 길 건너에는 존 웨슬리(1703~1791년) 성공회 신부에 의해 시작된 개신교 종파 감리교회(The Methodist Church) 총본부인 큰 돔 건물이 있다. 감리교회는 웨슬리 신부의 열성에 의해 전파되어 현재 전 세계에 7000만명의 신자를 가진 대단한 교회가 되었다. 웨슬리 신부는 87년의 생애 동안 영국은 물론 아일랜드, 미국 등 40만㎞의 초인적인 선교 여행을 다녔다. 신교인 감리교회에는 가톨릭처럼 성인이 없기에 망정이지 만일 있었다면 ‘성 존 웨슬리’라고 불려야 마땅할 만한 삶을 살았다.
비록 3대에 걸친 성직자 집안 출신의 신부이고, 영국 최고의 명문 사립학교인 차터하우스와 옥스퍼드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를 나온 은수저 출신이지만 평생을 그늘지고 궁핍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에 몰두했고 계급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자신의 설교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신자들을 만났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보고 공장은 물론 길거리, 심지어는 술집에서도 설교를 하고 기도와 예배와 미사를 드렸다. 이런 활동을 당시 기성 교단은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결국 성공회로부터 처벌을 받았다. 그 결과 교구 내 교회에서 사목을 금지당해 자신들만의 교회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교회를 사람들은 감리교회라고 이름 붙였다. 웨슬리는 죽을 때까지 자신은 성공회 신부라고 여겼다. 그러나 후대들은 자신들을 성공회로부터 떨어져 나온 개신교 중 하나인 감리교회라고 명명했다. 웨슬리가 세상을 뜰 때 웨슬리 교회에는 541명의 성직자와 13만5000명의 신자들이 있었다.
바로 이런 웨슬리의 감리교회 본부 건물이 바로 ‘스토리스 게이트(Storey’s Gate)’에 있는 세계감리교회 총본부 중앙홀(The Methodist Central Hall)이다. 우리에게 이 중앙홀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국제연합, 즉 유엔(UN)이 시작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2차대전이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선언으로 끝나고 불과 4개월도 안 된 1946년 1월 10일 바로 이 중앙홀에서 첫 유엔총회가 51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그 첫 총회에서 원자력위원회와 유엔에서의 공용언어, 민간단체와 유엔의 관계 등이 논의되었다. 그리고는 바로 4년 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유엔 주도로 첫 유엔군의 출병이 이루어졌다. 우리와 관련이 있는 역사의 한 자락이 이렇게 무심하게 있다.
중앙홀의 모습은 동심원의 의자가 홀 중앙 사방에 배치되어 있어 뉴욕의 유엔 본회의장이 이 중앙홀을 그대로 복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유엔 창설을 위한 준비사무국도 웨스트민스터사원의 내정에 있던 현 영국 성공회 의사당 건물에 있었다. 그렇게 보면 유엔은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시작된 셈이다. 그러다가 유엔 분담금을 가장 많이 부담하면서 목소리가 커진 미국의 뉴욕 맨해튼으로 이전해 간 걸 알 수 있다.
중앙홀 바깥 남쪽 벽에 제1차 유엔 총회가 열렸다는 간단한 명판이 붙어 있어 역사를 증명해 주고 있다. 이 중앙홀은 보통 웨스트민스터사원,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빅벤타워,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를 차례로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또 다른 방문 이유도 제공한다. 바로 중앙홀 지하층에 넓고 쾌적한 카페가 있기 때문이다. 주문하고 기다릴 필요 없이 뷔페식이라 음식 고르기도 쉽다. 더군다나 급할 경우는 음식을 안 사먹어도 눈치 보지 않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명연주를 들을 수 있는 ‘들판의 성마틴성당’
 
런던 중심 트라팔가광장 귀퉁이에는 ‘들판의 성마틴 성당(Saint Martinin the fiekds)’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성당이 있다. 영국 국교회 성공회 성당(Charling Cross Road, Trafalgar Sq) 중  한 곳이다. 네빌 마리너라는 세계적 명지휘자와 함께 역사에 남을 수많은 명반을 연주한 관현악단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체임버 오케스트라(ASMF :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가 바로 이 교회와의 협력으로 만들어졌다. 성마틴성당은 국립미술관이나 트라팔가광장을 보러오는 관광객들이 찾기 좋은 위치에 있으나 이 성당의 특징을 몰라 자칫하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이 성당은 여러 가지 면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첫째는 점심 시간의 무료 콘서트이다. 격조 높은 성악, 관현악, 앙상블 연주, 심지어는 제대로 된 관현악단의 다양한 연주가 무료로 성당 안에서 연주되기 때문이다. 도보관광에 지친 다리를 쉬려면 이 성당이 최고이다. 그런데 이 성당에서 점심 시간에 무료 연주를 한다는 사실은 런더너들도 잘 모른다. 항상 아깝게도 반 이상이 자리가 빈 채 연주회가 진행된다. 밤에도 유료의 훌륭한 연주회가 열리는데 다른 런던 공연장의 반값에 티켓이 판매된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촛불만 켠 성탄 음악회가 열려 분위기가 그만이다. 만일 연말 즈음 어느 날 저녁 런던을 들를 일이 있으면 여기에 와서 귀와 마음을 식히면서 한 해를 돌아보는 추억을 만들어 보시기 바란다.
또 하나 이 성당의 지하실 카페에서는 일부러라도 찾아와야 할 정도로 훌륭한 요리가 적당한 값으로 제공된다. 아는 사람들만 찾아서 별로 붐비지 않고 고즈넉해서 조용히 분위기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실내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듯한 분위기로 가득해서 상업적인 레스토랑에 식상했다면 제대로 찾아온 셈이다. 성당 웹사이트는 이 지하 카페를 ‘크립트(crypt)’라고 부르는데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깜짝 놀랄 수 있다. 크립트는 원래 성당 지하무덤과 납골당을 이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말해도 이곳은 원래 성마틴성당의 지하무덤과 납골당이었다. 그런데 성당을 개조하면서 무덤을 옮기고 정리해 멋진 카페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실내는 거의 현대식이 아니라 중세의 동굴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도 가끔 재즈 연주회가 열린다. 이렇게 런던은 정말 다양한 이벤트가 매일 열린다. 해서 1755년에 첫 영어 사전을 만든 사무엘 존슨이 ‘런던에 싫증난 사람은 인생에 싫증난 사람이다(When a man is tired of London, he is tired of life)’라고 지금으로부터 거의 300년 전에 말했는지 모른다.
이 성당에는 하나의 구경거리가 더 있다. 바로 교회 앞에 있는 아기 예수(Christ Child) 조각이다. 이 조각의 다른 별명은 ‘태초에(In the Beginning)’ 혹은 ‘밀레니엄 조각(the Millennium Sculpture)’이다. 사각형 화강암 기둥 위에 아기 조각이 숨은 듯 있어 아는 사람만 아는 명작이다. 거인이 아닌 이상 조각 앞에 놓인 돌에 올라서야 화강암에 조각된 아기 예수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아기 예수를 보려면 그 정도 수고를 하라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 듯하다. 갓 태어난 아기 예수가 탯줄을 아직 배꼽에 달고 손가락을 입에 물고 고추를 다 내놓고 흙 속에 파묻힌 듯 하늘을 향해 반듯이 누워 있다. 볼이 통통하고 아직 머리칼도 제대로 나지 않은 아기의 왼발은 꼬부려진 채 공중에 올려 놓았다. 조각은 화강암을 그대로 깎아서 만든 것이라 아기의 등은 돌에 묻혀 있다. 돌이 아기 예수로 변하고 있는 중이라는 작가의 뜻 같기도 하다. 단언컨대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아기 예수 조각은 감히 볼 수 없다고 해야 할 만큼 아기 예수 조각은 충격 같은 깊은 감동을 준다. 4.5t의 직사각형 기둥 위의 돌조각 아기 예수는 오늘도 이렇게 자신을 알고 찾아준 행인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조각 기둥의 사면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은 살이 되어 우리들 사이에 살아 있다(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became flesh and lived among us)”라는 요한복음서 첫 줄이 새겨져 있다. 조금 과장하면 이 조각 하나만 건져도 런던 하루 관광은 목적을 다 했다고 할 만하다.
 
 
 
 
오스카 와일드의 해괴한 조각상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 한 자락(3 Adelaide St)’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조각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민족들이 오스카 와일드로부터 느끼는 기발함과 재치와 위트 그리고 유머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문학을 전공으로 하는 영문학도가 아니라면 솔직히 말해 한국인에게 오스카 와일드는 좀 낯설다. 그런 이름만 들어봤지 작품을 직접 접해 보지 않은 그렇고 그런 무심한 작가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어 민족들에게 오스카 와일드는 단순한 작가가 아니다. 그의 이름을 부를 때 영국인들은 항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 중 한 명(one of the greatest playwrights)’이라고 부른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민족이 아니면 연극이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의 예술이라 그 묘미의 위대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작품 전체에서 톡톡 튀는 재치와 칼날 같은 해학과 가슴을 파헤치는 냉소의 대사는 천재만이 할 수 있는 축복이다.
그런 현대 영어문학의 최고 극작가인 와일드의 문학관이나 기념관이 영국과 아일랜드 어디에도 없다. 이유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만 해도 파렴치 범죄이자 신성모독 범죄인 동성애자의 유품을 누구도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와일드는 동성애로 재판을 받고 2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형기를 꽉 채우고 출옥해서는 영국과 아일랜드 어디에도 받아 주는 곳이 없어 추방당하듯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파리로 망명했다. 파리 한구석에서 숨이 지내다가 겨우 3년 뒤인 46세에 숨을 거둔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100년이 다 되어 가던 1990년 중반 영국의 연극인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위대한 극작가가 살았고 활동한 런던에 그에 대한 기념물 하나가 없다니 말이 되느냐는 자괴감과 죄의식이 생겼다. 겨우 영면 100년을 2년 남긴 1998년에야 그것도 연극의 중심지 코벤트가든 중심이 아니라 끝자락인 트라팔가광장 옆 골목길에 조금은 ‘해괴한’ 기념물이 세워졌다. 벤치 같은 모습을 한 기념물은 실제는 화강암으로 만들어 진 석관 모양이다.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특유의 장발 머리를 산발한 와일드가 석관 끝을 비집고 나오는 듯이 머리만 드러낸 옹색한 기념물이다. 석관의 나머지 부분에는 행인들이 앉아서 적당한 높이의 자리에서 쉴 수 있게 비워 놓았다. 석관에는 그의 유명한 연극 ‘원더미어 여사의 부채’ 중 촌철살인의 대사인 ‘우리 모두가 시궁창에 처박혀 있을 때 우리들 중 누군가는 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있다(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the stars)’가 새겨져 있다. 
사실 오스카 와일드의 또 다른 명작 기념물 석상은 그의 고국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다. 메리온광장이라는 이름의 공원에 있는 석상은 와일드처럼 특이하다. 하지만 런던에 있는 석상이 더블린에 있는 석상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훌륭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훨씬 더 예술성이 높으나 와일드의 성격만큼이나 냉소적이다. 세상의 어느 인물상이 세상을 비웃듯이 돌 위에 비스듬히 앉아 비딱한 입술에 냉소를 띠면서 내려다보고 있는가 말이다. 언젠가 더블린을 갈 기회가 있으면 와일드를 모르더라도 세상에 가장 특이한 석상을 본다는 이유로라도 반드시 찾아가 보길 강추한다. 특히 세상의 모든 석상과 동상이 단색인 것과는 달리 와일드의 이 석상은 각종 화려한 종류와 색깔의 돌들로 만들어졌다. 그가 평소에 잘 입던 멋진 보라색 깃과 소매가 달린 초록색 재킷의 와일드를 한번 보시라는 뜻이다.
 
 
 트라팔가광장 제4의 전시대
 
트라팔가광장 모서리에는 이미 3개의 동상이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동상을 세울 빈 전시대가 북서쪽 모서리에 있다. 이곳에 무엇을 세울지 영국은 지난 150년간 논하고도 결국 결정을 못했다. 이제는 전시품을 일정 기간 전시한 후 바꾸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런던을 방문하는, 특히 트라팔가광장에 오는 관광객은 물론 영국인들마저 좀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 들어서는 전시 작품이 워낙 엉뚱하거나 기괴해서다. 세계 어느 곳 광장에도 이런 식의 초현대작품이 야외에 설치되어 있지는 않다. 원래는 150년 전 영국 왕 윌리엄 4세의 승마 조각상이 세워질 예정이었으나 건설자금 부족으로 일시 중단되어서 결국 빈 채로 남겨졌다. 이후 계속해서 그 기단 위에 뭘 세울지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못 내리고 오랫동안 빈 채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1998년 예술제조상업장려 왕립협회가 주도해 조각품을 설치하기 시작하면서 런던의 또 하나의 명물이 되었다.
이후 부정기적으로 조각품이나 설치물이 등장해 감탄을 자아내거나 또는 탄식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3년부터 트라팔가광장의 관리권이 웨스트민스터 자치구에서 런던시로 넘어간 다음에는 정식으로 런던 제4의 전시대(Fourth Plinth) 위원회가 구성되어 이제는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선정된 7~8개의 작품을 대중의 인기투표를 통해 결정해 전시하는 걸로 바뀌었다. 1999년 이후 현재까지 14개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2024년 9월에 15번째 작품이 설치되어 2년간 전시될 예정이다.
2026년과 2028년 작품은 이미 결정되어 작품이 제작 중이다. 국가적인 ‘결정장애’가 멋진 전시대가 생겨나게 된 계기가 된 셈이다. 사실 이런 임시 전시품이 전시되고 있는 동안에도 영구 전시 작품 결정을 위한 일종의 국가적인 논의가 있어 오긴 했다. 그중에는 넬스 만델라 조각상을 세우자는 제안부터 2013년 마거릿 대처 영면 직후 대처 동상을 세우자고 당시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과 런던 시장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제안해 하원에서까지 논의된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조각상을 세우자는 제안이 시작되었는데 가장 실현 가능성이 있는 제안이다. 
 
 
  주간조선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보라여행사 대표. IM컨설팅 대표. 영국 공인 문화예술해설사.
저서: 여왕은 떠나고 총리는 바뀐다 <영국 왕실+정치 편> (2024) 핫하고 힙한 영국(2022),
       두터운 유럽(2021), 유럽문화탐사(2015), 영국인 재발견1,2 (2013/2015), 영국인 발견(2010)
연재: 주간조선 권석하의 영국통신, 조선일보 권석하의 런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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