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의 먹거리는 지혜롭습니다. 다른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그 민족이 즐겨 먹었던 음식을 먹어보면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낸 음식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게 됩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당연히 조국의 음식이 최고로 맛있는 것이라는 사실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나라마다, 문화마다 음식이 다른 것은 그 시대의 아픔과 고통, 민족이 걸어온 겨울의 한파를 견뎌낸 나이테와도 같다 여겨집니다.
영국의 음식은 음식 재료 자체의 맛을 잃지 않게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시금치 하나를 먹더라도 시금치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과 향이 파괴되지 않도록 조리할 뿐 아니라 양념을 첨가하지만 첨가된 양념으로 인하여 시금치 고유의 맛과 향을 헤치지 않는 범주에서 향료를 사용합니다. 시금치뿐 아니라 모든 음식이 그러합니다.
영국의 북쪽 스코틀랜드 전통음식 Scottish traditional dish, Haggis 중에 일반인들은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있습니다. 양 내장인 간, 심장, 허파를 삭혀서 만든 <하기스>라 불리는 음식입니다. 음식 이름이 한국의 아기 기저귀와 같습니다. 전통음식이기에 여행객들은 먹어보길 원하지만 주문한 음식을 모두 먹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한 수저 입에 넣으면 냄새로 인하여 욱하는 헛구역질 소리가 식당 여기저기서 들려올 정도로 냄새가 아주 고약합니다.
우리네 조상들은 갖은양념을 할 뿐 아니라 다양한 재료가 함께 어우러지는 음식을 개발하여 발전시켰습니다. 음식 궁합이란 말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듯합니다. 돼지고기를 삶아서 먹는 보쌈에는 반드시 새우젓을 먹는 것은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된 음식궁합일까요?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다양한 재료를 섞어서 맛을 내는 일종의 음식의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한 악기의 소리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악기로 한 곡을 연주하는 것은 우리네 음식문화와 많이 닮았습니다.
음식 재료 자체에 독성이 있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 민족이 즐겨 먹는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효소는 캡사이신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독성입니다. 서양인들은 재료에 독성이 있는 것을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음식은 중화시켜서 먹습니다. 봄철이 되면 영국 전역에 고사리 동산을 이룹니다. 낫으로 빌 수 있을 될 정도로 고사리 산을 이루는 곳이 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작은 비닐봉지 하나 가득히 뜯을 정도로 고사리가 가득합니다.
영국인들은 고사리가 지천으로 깔려 있을지라도 그것을 먹지 않습니다. 간혹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고사리를 뜯어가기도 합니다. 도심 공원에는 아예 고사리나, 명이나물, 곰취, 버섯을 채취하다 적발되면 5천 파운드의 과도한 벌금이 부과된다는 경고문을 붙여 놓기도 했습니다. 고사리를 먹지 않는 것은 고사리의 독성 때문입니다. 그 독성이 얼마나 강한지 고사리는 벌레도 끼지 않고 사슴이나 양, 소들은 절대로 고사리를 먹지 않습니다.
그러한 독성이 강한 것을 삶고 우려서 말려서 최고의 식품으로 만들어 먹는 민족은 우리뿐입니다. 고사리뿐 아니라 온 산천에 산마늘 나물로 가득합니다. 봄철이 되면 명이라 불리는 산마늘 나물이 피어나는 보라색 꽃으로 산자락을 뒤덮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영국인은 고사리뿐 아니라 산마늘도 먹지 않습니다. 역시 독성 때문입니다. 곰취도 그러합니다. 그냥 먹을 수 없기에 독성을 제거하고 먹지 않는다면 부드러운 상추처럼 먹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음식문화는 세계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독특합니다. 한 가지 음식 재료만을 먹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음식 재료를 끓이고 삶고 삶아서 함께 버무려 먹습니다. 음식을 하기 전에 먼저 국물을 며칠간 끓이는 것도 독특합니다.
사람은 어떤 음식을 먹는가에 따라서 성격과 세계관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한국인들은 영어권이나 다른 민족들보다 다양성과 수용성의 폭이 넓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 음식만을 먹지 않기 때문에 폭넓은 세계관을 장착할 수 있었습니다. 서양인들의 주식은 빵입니다. 어떤 이들은 진짜 빵만 먹기도 합니다. 간간이 커피도 마시지만, 주식이 빵 자체입니다. 우리의 주식은 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쌀로 밥을 지어서 밥만 먹지 않습니다. 쌀을 먹는다는 것은 쌀 보다 더 중요한 밑반찬들이 상을 빼곡하게 차려져야 합니다. 어우러져 함께 먹을 때 맛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심심한 야밤에 벗님들과 신당동 떡볶이집을 방문했습니다. 먹기보다는 그 분위기를 즐기며 옛 추억에 잠겨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떡볶이라는 한 가지 음식에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가 서로 어우러져 맛을 냅니다.
떡볶이는 왜 신당동이 유명할까 잠시 검색을 해봤습니다. 신당동이라는 이름 자체가 영험한 신을 모시는 신당이 있어서 신당 神堂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합니다. 갑오개혁이 있었던 19세기 말 새로운 도시라는 의미로 신당 新堂으로 바뀌었다 합니다.
이곳이 떡볶이의 명소가 된 것은 이름과는 별개입니다. 가장 먼저 시작한 분이 ‘마복림’ 할머니셨다 합니다. 그곳을 시작으로 주변에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해서 오늘날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명물이 된 것입니다. 특별한 맛을 느끼기보다는 분위기가 좋아서 떡볶이 골목을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현대는 떡볶이보다는 매운 닭발을 찾는 젊은이들이 더 많습니다. 외국인들도 우유를 마시면서까지 매운 닭발을 즐기는 것을 쉽사리 볼 수 있게 됩니다.
박심원 목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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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네 조상들의 음식문화 지혜 속에서 함께 더불어 어우러져야 하는 인생을 살아야 함을 터득하게 됩니다. 내 맛은 단조롭고 싫증 날 수 있지만 너의 맛이 더해질 때 우리의 맛을 창출해 냅니다. 신당동 떡볶이 한 그릇에 나의 맛, 너의 맛이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맛을 낼 수 있는 인생의 오묘한 법칙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