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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남북협력 사업을 추진할 때 미국과 반드시 먼저 상의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해 우리 정부의 반발을 불렀다. 해리스 대사는 이전에도 거친 입과 고압적인 자세로 몇 차례 문제가 됐는데 특히 이번에는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정책과 구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큰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다. 마침내 '조선 총독' 같다는 비난까지 나왔다.

 

해리슨 대사를 조선 총독에 비유한 한국 정치권의 비난에 대해 미국 신문은 '미국인을 일본인으로 보는 것은 인종차별에 해당한다'고 반응했다. 해리스 대사가 일본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를 둔 혼혈이라서, 일제 강점기 한국에 저지른 잔혹함에 대한 감정이 아직 한국에 팽배하다는 것, 조선 총독들이 대부분 콧수염을 길렀다는 사실에 비춰 이런 연상을 불렀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해리슨 대사는 이번 사태에 대해서 "나의 경력을 통틀어 혈통을 문제 삼은 것은 태평양 사령관으로 하와이에 있던 시절 중국인들과 이번 한국인들뿐"이라고 화를 내며 주제를 벗어난 혈통 이야기로 치부하고 주권국 내정간섭을 한 자신의 월권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고 있다.

 

조선 총독은 모두가 군인 출신이었다. 그것도 1명을 제외한 전원이 육군 대장 출신이었다. 당시 일본군의 파벌 정치가 얼마나 극심했느냐 하면 문관 출신을 후임 총독으로 보내자는 의견이 나온 적 있는데 후임 총독 예정자의 아버지(육군 최고 실세)가 앞장서 반대했다. 육군 파벌의 이익을 위해 아들조차 자를 만큼 집단에 집착했고 상대에 잔혹했다. 대만 총독도 있었지만 일제는 조선 총독에 유난히 공을 들였는데 조선의 가치가 그만큼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자리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의 행정, 사법, 입법 3권과 군 통솔권까지 모두 쥔 무소불위의 존재였다. 일본 황실 의례에 따라 궁중 의전에서 조선총독은 제6위에 해당할 정도였다.

 

일제 강점기를 통해 모두 8명의 조선 총독이 재임했고 하나같이 자신만의 강압 통치를 하며 조선을 악랄하게 착취했다. 마지막까지 악랄하게 수탈했는데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미군이 9월 9일 한반도에 와서 미군정을 수립할 때까지 한 달이 안 되는 짧은 기간에도 총독부는 한반도에 있던 일본인을 위해 인플레이션을 노리고 화폐를 미친 듯이 발행했다. 그들이 많은 재산을 갖고 일본으로 돌아가도록 도운 것인데 해방 후 한국의 경제가 무너진 것은 이때 살인적 인플레이션의 영향이 크다.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이런 말을 했다며 '아베 노부유키의 저주'라고 인터넷에 떠다닌다. <우리 대일본제국은 패전하였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장담하건대, 조선인들이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여 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 조선인들은 서로를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다.> 사실 노부유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는 조선에 남은 일본인들을 버리고 자기 재산만 챙겨 도망간 인물이다. 따라서 이것은 '일본이 조선을 더 통치했으면 지금보다 더 좋았을 것이다.'라는 일부 일본인의 망언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한국을 간섭하고 싶은 현대판 조선 총독이 일본에는 많은지 모른다.

 

해리슨 대사의 콧수염이 과거 일본 총독들의 콧수염과 닮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일국의 대사에 불과한 자가 주재국 통수권자의 의지가 반영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월권과 거친 망언이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의 혈통과 콧수염은 근본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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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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