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천재를 끄집어내라
왜 샤워 도중 새로운 생각이 마구 샘솟는가
아침 샤워 도중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고, 밤새 꼬였던 생각들이 스르륵 풀리고, “이거다!” 싶은 영감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는 경험, 누구나 경험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비누칠 하다 나와서 공책에 쓰기도 전에 이 멋진 단상들이 순식간에 증발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뇌 속에 작은 천재가 살고 있다가, 샤워가 끝나면 수증기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동서양 고금을 통해 이러한 현상을 많은 사람들이 겪고 따로 shower thoughts 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샤워하다가 나온 좋은 생각이 날라가서 안타까워 하고 어떻게 꼭 샤워를 안해도 어떻게 이런 경지에 접근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데 이 현상에 꽤 흥미로운 신경과학적인 이유가 있다는 점이 밝혀져 오늘은 이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정신이 없다, 기억력이 가물하다, 갱년기가 되었더니 예전같지 않다, 내 두뇌는 소중하다 하는 분들께서 참조해주십시오.
샤워 중 깨달음이 터지는 과학적 이유
핵심은 바로 두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
DMN, 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켜지는 뇌의 “백그라운드 모드”입니다.
산책할 때, 버스 창밖을 무심히 바라볼 때, 소위 멍때리고 있는 상태에서 DMN이 활성화되며, 놀랍게도 창의력·직관·문제 재구성 능력을 끌어올린다고 합니다.
샤워는 DMN이 활성화되기에 거의 완벽한 환경이라고 합니다.
외부 정보가 차단된 환경에서 따뜻한 물 + 일정한 소리 + 단순한 동작의 조합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두뇌는 “마음껏 연결해봐!”라는 허가를 받고, 마음속 깊은 곳에 저장된 정보들이 서로 만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따뜻한 물이 만드는 알파파(α-wave)와 소량의 도파민 증가가 더해지면서, 생각은 느슨하지만 통찰력은 살아있는 독특한 뇌 상태가 만들어집니다.
왜 샤워 아이디어는 금방 사라질까?
간단합니다.
샤워 상태의 뇌는 창의성은 최상의 상태지만, 기억 저장 기능은 낮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즉, 번뜩임은 강한데 저장 버튼이 잘 눌리지 않습니다.
영국식으로 표현하자면 “브릴리언트하지만 금붕어 기억력 (brilliant but with a goldfish memory)’’상태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방금 떠올렸던 완벽한 문장, 기발한 해결책, 새로운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타월을 잡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삭제되는 것입니다.
잠깐! 그런데 계속 뉴스, SNS 무한 스크롤링은 왜 천재 모드와 정반대일까?
요즘 많은 분들이 샤워할 때는 천재가 되지만, 침대에서는 멍하니 SNS만 내리다가 둔재가 되어 하루가 시작되곤 합니다.
여기에는 아주 명확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둠스크롤링(Doom scrolling)은 DMN을 끄고 ‘스트레스 회로’를 켜버립니다.
끝없는 뉴스·SNS 타임라인은 뇌를 미세한 위기/불안 모드로 전환시키고,
이때 활성화되는 두뇌 시스템은 편도체(amygdala) 부위로서 창의성의 적입니다.
쉬지않고 스크롤링하면서 뇌는 생존·경계·반응에 집중하느라 깊은 생각, 관조, 영감 따위가 나올 여유가 없습니다.
둘째, 시각 자극이 너무 강해서 ‘내면의 목소리’가 들릴 틈이 없습니다.
천재 모드는 조용함, 단순함, 긴장이 풀어진 느슨함에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에 반해 둠스크롤링은 자극, 속도, 비교, 감정적 동요의 콤보입니다.
DMN은 이런 환경에서는 완전히 차단됩니다.
셋째, 정보 과부하가 ‘연결 능력’을 떨어뜨립니다.
창의성은 새로운 정보보다 ‘기존 정보의 새로운 연결’에서 나오는데,
둠스크롤링은 정보를 흡수하기만 하고 연결할 시간을 전혀 주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뇌는 바쁘기만 할 뿐, 똑똑해지거나 현명해지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샤워는 천재 모드의 최적 환경이고,
둠스크롤링은 뇌 회로의 정반대 방향을 향합니다.
샤워 모드를 일상에서 재현하는 실질적 방법
1. 단순 반복 행동 활용
걷기, 설거지, 빨래 개기, 정원 가꾸기 등은 DMN을 바로 켜줍니다. 옛 성인들이 단순 노동을 하면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예가 많으며 많은 철학자들은 수시로 산책하였습니다.
아마 현대인의 천재 모드로의 전환 핵심은 스마트폰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일 것입니다. (둠스크롤링 모드로 전환되는 순간 끝입니다.)
2. 낮은 자극 환경 만들기
조용한 카페, 은은한 조명, 따뜻한 음료, 단순한 책상 위 공간. 심신 안정 + 마음의 평화!
런던처럼 자극 많은 도시에서는 이런 미니멀한 환경을 추구하는 것이 큰 효과를 냅니다.
3. 아침 생체리듬 활용하기
아침 단잠에서 깨어날 때 두뇌에는 아직 세타파가 남아 있으면서 상승하는 코르티졸/도파민 조합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습니다. 이때가 천재 모드의 황금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침 샤워, 산책, 스트레칭은 모두 샤워 모드를 복제합니다.
4. 소프트 포커스 훈련
눈을 살짝 풀고, 생각을 억지로 하지도, 억지로 막지도 않는 상태.
이것이 DMN의 스위치를 켜는 가장 빠르고 심플한 방법입니다. 동서양의 도인들이 이런 경지에 자주 접하지 않았나 합니다.
5. 즉시 기록하기
아이디어는 기록해야 남습니다.
음성 메모, 작은 메모장 등 어떤 방식이든 빠른 기록이 핵심입니다.
마무리
샤워 중 떠오르는 반짝이는 생각들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 순간 우리의 뇌는 가장 창의적이고 유연하며 통찰력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상태는 샤워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조금만 의식적으로 환경을 조정하면 하루 중 여러 번 재현할 수 있습니다. 두뇌를 억지로 짜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두뇌 내부의 고도 능력이 발휘할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조용함, 반복 동작, 낮은 자극, 그리고 빠른 기록만 있다면 누구나 일상에서 “내면의 천재”를 불러낼 수 있습니다.
런던한의원 원장
류 아네스 MBAcC, MRCHM
대한민국 한의사
前 Middlesex 대학 부설 병원 진단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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