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생선이나 세월이 변하면서 신분이 상승한 경우가 있다. 지금은 스타로 각광을 받는 연예인을 옛날에는 광대라 해서 아주 천한 계급이었고 시대가 바뀌기 전에는 자신이 속한 이 계급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동이가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데 그녀가 천민에서 내명부 최고 품계까지 올라간 것은 임금의 성은이 아니고는 거의 불가능한 신분상승이었다. 조선의 임금 중에 가장 오래 살았고 재위 기간도 길었던 영조가 평생 열등의식에 시달린 것도 바로 어머니의 천한 계급 때문이었다.
생선 중에서 가장 큰 신분상승을 한 생선이 있으니 바로 아구다. 아구는 사투리고 표준말은 아귀다. 그럼 오늘의 칼럼 메뉴인 아귀는 어떤 생선일까. 보통 문어의 생김새나 붕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바로 설명할 수 있지만 아귀의 생김새를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못생긴 죄로 불교에서 욕심 많은 이가 죽은 후 귀신이 된 아귀(餓鬼)란 이름으로 불리는 생선답게 아귀의 생김새는 정말 볼품이 없다.
그래서 예전에는 뱃사람들이 아귀를 잡으면 그냥 버렸다는데 생긴 모양이 워낙 흉칙하고 못생겨서 재수없다며 어부들은 아구가 그물에 잡히면 바로 버리거나 거름으로 썼단다. 그래서 바다로 텀벙 던졌다고 해서 물텀벙이로 불리기도 한다. 아구는 몸과 머리가 납작하고 입이 거의 몸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크고 먹성도 대단하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어김없이 아구를 기록하고 있는데 <아구는 입이 매우 크고, 입술 끝에 두개의 낚싯대 모양의 지느러미가 있는데 의사가 쓰는 침 같다. 그 끝에는 밥알 같은 하얀 미끼가 있어 다른 물고기가 이것을 따먹으려고 달려들면 잡아먹는다>라는 설명과 함께 조사어(釣絲魚)라고 적고 있다.
표준말이 음식 이름에도 적용이 되기에 아귀찜이 표준말이다. 그러나 자장면이 표준말이지만 일반적으로 짜장면으로 부르고 있고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이 더 맛있게 들린다. 아구찜도 마찬가지로 아귀찜 하면 어딘가 딱딱한 이름으로 들리다가도 아구찜으로 부르니 맛있는 음식으로 들리지 않은가. 아구찜 하면 이견없이 바로 마산을 떠올린다.
이 음식 또한 간판에 원조가 들어가지 않으면 섭섭한 음식이지만 따지고 보면 1960년도부터 시작된 음식으로 북어찜 요리법을 아귀에 적용한 메뉴였다. 곧 아구찜의 역사는 40년이 조금 넘는 셈인데 이렇게 부실한(?) 음식 역사를 놓고 전통과 원조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아구찜이 전통을 주장하기엔 다소 역사가 짧지만 마산의 어느 식당에서 아구라는 볼품없는 생선으로 찜을 만들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결국 명물 메뉴로 정착한 후 전국으로 퍼졌는데 대중의 입맛을 간파한 탓이다. 내가 아무리 햄버거를 맛있게 만들어도 맥도날드와 대결할 수 없듯이 음식 또한 산속에 들어가 폭포 밑에서 비법을 개발한들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아구찜은 원래 말린 아귀를 사용했고 콩나물과 함께 갖은 양념을 넣고 푹 찐 음식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생아구를 사용하는 오늘날의 아구찜은 엄밀히 말하면 찜이 아니라 볶음이다. 그리고 마산의 아구찜은 된장을 듬뿍 넣어 색깔이 다소 맛깔스럽게 보이지 않지만 요즘은 된장을 줄이고 소금간으로 담백한 맛을 내는 아구찜이 대세다.
아구찜은 요리하기가 복잡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간편한 음식이다. 주재료인 콩나물과 아구만 있으면 다른 부재료는 그냥 냉장고에 있는 것 보태면 된다. 아구찜에는 미더덕이 들어가야 한다지만 먹기 불편한 미더덕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물을 최대한 적게 넣고 콩나물을 삶아 건진 후에 그 물에다 적당히 자른 아구를 살짝 익힌다. 조금 깊은 후라이팬에다 삶은 아구와 건져 둔 콩나물을 담고 대파, 양파, 풋고추, 미나리 등을 썰어 넣고 맛술, 설탕, 다진 마늘과 고추가루를 넣어 잘 버무리면서 볶는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약간의 전분을 푼 후 참기름을 두르면 맛있는 아구찜의 완성이다.
아구찜은 지방이 없어 비린내가 나지 않고 소화가 잘되는 담백한 생선요리로 다른 생선과 달리 비타민 A가 많이 들어 있어서 피부미용에도 좋은 식품이다. 또한 콩나물을 비롯한 채소류가 듬뿍 곁들어지므로 비타민 C를 보충할 수 있고 아구찜의 특징인 매운맛은 고추가루로 조절하면 된다. 더위로 입맛을 잃기 쉬운 요즘 매콤한 아구찜을 저녁상에 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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