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세프, 이두호의 음식세상 1
한국음식의 원형 김치찌개
얼마 전 한국의 어느 기관에서 직장인들의 점심메뉴를 설문조사 했는데 김치찌개가 남녀 불문하고 45%라는 압도적인 선택으로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세계 각 나라의 물가를 가늠하는 빅맥지수처럼 예전에 어떤 동포 신문사에서 조사한 김치찌개 지수도 있었는데 일회성으로 끝나기는 했으나 그만큼 김치찌개가 우리 음식의 대명사임을 입증한 셈이다.
빅맥지수가 세계 각국의 맥도날드사 햄버거 가격을 달러로 환산한 후 미국 내 가격과 비교한 지수인데 빅맥은 세계적으로 품질, 크기, 재료가 표준화되어 있어서 이를 기준으로 비교할 경우 각국의 통화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김치찌개 지수 또한 전세계 32개 도시를 대상으로 김치찌개 가격을 조사한 것으로 한국의 김치찌개 가격을 100으로 잡고 비교한 결과 영국을 비롯한 유럽 지역은 200에서 300 정도로 한국보다 두세배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김치찌개가 한국 음식의 원형이랄 수 있는 것은 모든 찌개의 원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찌개는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부대찌개 등 종류가 참으로 많다. 우리의 음식에는 유독 국물 음식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그래서 한국음식을 습식(濕食)으로 정의하는 학자도 있지 않던가. 그 국물 음식의 대명사가 탕이나 국과 함께 찌개로 밥맛이 없을 때 따끈한 국물 한사발이면 특별한 반찬 없이도 밥 한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는 것이 한국인의 식성이다.
이국 땅에서 한국 음식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도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김치찌개라고 한다. 지금이야 언제든지 배추를 구할 수 있고 한국 수퍼에 가면 포장김치가 넘쳐나지만 예전의 유학생들 경험담을 들으면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 싶어서 양배추로 김치를 담가 찌개를 끓이기도 했다고 한다. 오랜 기간 먹지 않으면 일종의 금단증세를 일으킬 정도인 이 김치찌개가 외국인에게야 시큼하고 매운맛에 불과할지 몰라도 한국인은 오묘한 김치찌개 맛을 감지하는 유전자를 소유하고 있다.
찌개의 원형은 <디히개>다. 옛 문헌에 보면 지금의 김치를 <디히>라고 했고 그것이 나중 <지>가 되었는데 그 흔적이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오이지, 소박지, 묵은지, 짠지 등이 있다. 순 우리말인 그 디히개가, 디개> 지개에서 된소리로 변해 찌개로 정착이 된 것이다. 결국 디히개는 김치로 만든 것이었고 찌개의 원형은 김치(지)로 자박하게 끓인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끝에 붙는 개는 어떤 도구나 완성물에 붙는 어미로 오늘날 부침개라는 음식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지금 보편적으로 쓰고 있는 김치는 순 우리말이 아니다. 침채(沈菜)라는 한자어에서 유래해 우리말로 정착된 단어로 침채> 딤채> 김치로 변해왔다. 그래서 김치냉장고로 한창 주가를 올렸던 딤채라는 상표도 있었다.
김치(지)로 만든 찌개가 세월이 흐르면서 파생되어 여러 메뉴가 생겨났다. 먼저 언급한 찌개 말고도 생태찌개, 비지찌개, 두부찌개 등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찌개의 종류는 무한정이다. 내용물도 변화를 겪었다. 김치찌개만 해도 16세기 이후에 일본을 통해 고추가 들어왔으니 그전의 김치찌개는 빨간색이 아니었을 것이고 한반도에 감자가 전래된 것이 19세기니 된장찌개에는 그 이후에나 감자가 들어갔을 것이다. 하긴 부대찌개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햄으로 만들기 시작했으니 그 역사는 5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김치찌개는 김치와 돼지고기가 주재료다. 거기에 대파나 양파, 그리고 두부 몇 조각이면 훌륭한 한끼의 국물 음식이 된다.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멸치를 넣어도 되고 더 간편한 것으로는 참치 통조림을 넣어도 맛있고 두부만 들어간 찌개도 괜찮다. 김치찌개에 두부를 넣는 것은 식물성 단백질을 보충하는 현명함도 있지만 김치 특유의 냄새를 감소시키는 작용도 한다.
김치찌개는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넣어 끓이는 것보다 김치를 먼저 끓이는 것이 순서다. 잘 익은 김치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식용유를 약간 넣고 볶는데 김치가 너무 익어 신맛이 강하면 김치를 살짝 짜서 넣어야 국물맛이 담백하다. 육수를 붓고 한소끔 끊인 후 돼지고기나 멸치 등 기호에 따른 재료를 넣고 한 번 더 끓인다. 마지막으로 두부와 다진 마늘, 대파, 양파 등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곧 맛난 찌개의 완성이다. 여기서 다진 마늘 같은 향신료는 가능하면 늦게 넣어야 한다. 센 불에서 단시간에 요리하는 중국음식은 생강이나 마늘을 먼저 넣고 향을 내야 하지만 조리 시간이 긴 한국음식은 그 반대다.
간혹 유명 인사들에게 할 줄 아는 요리가 뭐냐고 물으면 김치찌개라는 대답을 한다. 또 김치찌개는 어느 한국음식점엘 가도 메뉴판에 올라와 있고 요리법도 대동소이하다. 그런데도 왜 찌개맛은 각양각색일까. 김치찌개는 김치맛이 절반을 좌우한다. 그래서 맛있는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가 맛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김치찌개는 누구나 만들 수 있을 만큼 쉬우면서도 한편 제맛을 내기 어려운 요리가 김치찌개다.
종종 어떻게 하면 찌개를 맛있게 끓일 수 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것처럼 음식도 꾸준히 연습을 하면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김치찌개를 잘 만들지 못한다고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영원한 한국의 대표음식 김치찌개는 잘 만드는 것보다 제맛을 알고 먹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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