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셰프, 이두호의 음식세상 10
한여름의 보양식 삼계탕
요즘 같은 한여름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으로 무엇이 있을까. 곧 초복도 다가오는데 여름철에 땀 흘리며 먹는 음식으로는 삼계탕만한 것이 없다. 복날 음식 하면 삼계탕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심리적인 면도 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 한국인이 유독 보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탓이다.
예전에 귀한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았다는 말이 있다. 백년손님이라면서 사위를 귀하게 대접했던 장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속담인데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요즘처럼 고기를 쉽게 먹을 수 없던 시절에 고기를 맛볼 수 있을 때는 생일이나 제사 아니면 명절 때였다. 이런 궁핍한 시절에 사위가 오면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아 대접을 했는데 보통 닭을 푹 삶아 뽀얀 국물이 우러난 백숙이었다.
이 닭백숙이 삼계탕의 뿌리인데 바로 씨암탉 백숙이 아닌 영계백숙이다. 그럼 삼계탕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영계백숙은 어떻게 생겨난 말일까. 먼저 영계는 병아리 티가 나는 닭이라는 연계(?鷄)에서 고기가 연한 닭이라는 연계(軟鷄)로 바뀌었다가 아직 알을 낳지 않은 어린 닭이라는 의미의 (Young鷄)로 변한 말이다. 그러니 영계는 영어와 한자말이 혼합된 국제어인 셈인데 영계는 흔히 약병아리라 해서 보신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삼계탕은 어린 닭에 인삼과 마늘 대추 찹쌀 등을 넣고 푹 고아서 만든 음식으로 원래 이름은 계삼탕(鷄蔘湯)이었다. 삼계탕은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이 부재료이므로 계삼탕이라 해야 우리 어법에 맞는데 그래서 국어사전에도 계삼탕을 표준말로 올려놓고 있다. 오랫동안 계삼탕이라 불려오다 삼계탕으로 바뀐 것을 우리나라 1세대 음식평론가라 할 수 있는 조풍연 선생은 인삼이 대중화되고 외국인들이 인삼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면서 인삼을 위로 놓아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명칭이 바뀐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 인삼이 재배되기 시작한 것이 조선 중기인 16세기부터인데 당시의 인삼은 아주 귀한 약재로 쓰였기에 음식에 인삼을 넣는 것이 서민들에게는 쉽지 않았다. 닭백숙만 나오고 보이지 않던 삼계탕이 문헌에 나오는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선데 아마 인삼이 들어간 것도 그 후였을 것이고 해방 이후 인삼이 대중화되고 일본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삼계탕은 확실한 한국음식으로 자리를 잡는다.
어쨌든 삼계탕은 여름철에 땀을 많이 흘려 체력이 떨어지고 입맛을 잃기 쉬울 때 먹으면 보신 효과가 높은 우리의 전통 음식이다. 또 닭고기가 육질을 구성하는 섬유가 가늘고 연한 것은 지방질이 근육 속에 섞여있지 않기 때문인데 그래서 맛이 담백하고 소화흡수가 잘 된다. 지방이 적고 단백질의 질도 우수한데다 지방산 중에 리놀렌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성인병 예방에 좋고 노인식으로도 아주 적합한 음식이다.
풍부한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의 보고인 닭고기와 예로부터 영약으로 인정받은 인삼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삼계탕은 인삼의 약리작용과 찹쌀, 마늘, 밤, 대추 등의 성분이 어우러져 영양의 균형을 이룬 훌륭한 음식이다.
어려운 요리 같지만 재료만 있으면 집에서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삼계탕이다. 내장을 제거한 어린 닭에 불린 찹쌀과 인삼, 대추, 밤 그리고 기호에 따라 마늘이나 잣, 은행 등은 추가해도 되고 없어도 무방하다. 내용물을 담고 잘 묶은 다음 닭이 충분히 잠기는 넉넉한 솥에 넣어 80분 쯤 끓이면 삼계탕의 완성이다. 삼계탕은 미리 간을 하지 말고 먹기 직전에 소금을 넣는 것이 훨씬 뽀얀 국물을 먹을 수 있다.
음식에는 보신의 개념이 있고 맛의 개념이 있다. 삼계탕은 둘 다 포함하고 있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신은 맛이 없어도 몸에 좋다니까 억지로라도 먹어줘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삼계탕은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약식동원(藥食同原)의 개념이 짙게 배어있는 음식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삼계탕의 효능은 몸이 차서 추위를 많이 타고 쉬 피로를 느끼는 사람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좋으나 성질이 뜨거운 음식이므로 열이 많고 고혈압이나 뇌심혈관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음식이다.
아무리 보양식이라 해도 삼계탕 한 그릇에 병치레가 없고 허약한 몸이 금방 건강해질까. 이 땅에 모든 영양소를 담고있는 완전한 식품은 없다. 그러나 세상에 완전식품은 없지만 안전식품은 있다. 그래서 밥상을 마주하면 이 음식을 누가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위생적으로 만들었는지를 생각하고 먹어야 하는 것이다. 기름에 튀기고 설탕 양념으로 범벅이 된 음식보다는 삼계탕은 웰빙식에 가깝다. 귀한 내 자식, 내 남편에게 삼계탕 같은 음식을 권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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