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처녀 제 오시네
-일제 강점기를 향한 민족 저항운동의 상징-
겨울이 아직 그의 보따리를 싸기도 전에 봄을 초청합니다. 환경은 겨울과 살고 있으나 마음은 봄과 한 몸을 이룹니다. 봄의 전령사는 잎을 틔우기 전에 피는 꽃입니다. 겨울과 봄의 경계는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봄이 오는가 싶으면 겨울의 향취가 아직 베어져 있고, 아직 겨울인가 생각할 때면 봄의 향기가 온몸을 채웁니다. 겨울이라는 고통의 긴 터널을 통과한 합격증서와 같이 피워내는 꽃망울은 대부분 꽃부터 피우게 됩니다.
그래서 봄꽃을 찾는 나비를 일컬어 옛 선인들은 “봄 처녀”라 부르곤 합니다. 1932년 ‘홍난파’는 ‘이은상’의 시조에 가락을 붙여 한국적 가곡을 탄생시킵니다. 아직은 일본의 서슬 퍼런 눈빛을 피해 선조들은 몸을 움츠리고 살아야 하는 끝나지 않은 일제 강점기라는 겨울의 냉혹한 터널의 한복판에 있을 때입니다. 지금도 ‘봄 처녀 제 오시네’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만 설레게 할 뿐이지만 그 당시에 들었던 노래의 감흥은 과히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눈물에 절인 희망 애창곡이었습니다.
봄 처녀가 상징하는 것은 일제 강점기를 견뎌내고 드디어 자유를 찾은 광복의 기쁨을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겨울은 보통 몇 달만 버티면 봄을 맞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해 겨울은 너무 길어서 한 인간의 일생보다 조금 더 긴 45년이었습니다. 겨울이 주는 무게는 겨울 그 자체가 아니라 겨울을 만들어낸 인간들, 특히 힘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겨울의 중심인 일본을 한반도에 끌어들이고 우리의 주권을 그들에게 넘겨준 매국노의 미친 행위 때문입니다. 겨울의 냉혹함이 주는 고통보다는 믿었고 신뢰했고 따랐던 지도자들의 친일 행위가 더 절망적이었습니다.
백성의 어버이라 불리는 왕은 힘을 잃고 다른 나라의 공사로 몸을 피해야 할 만큼 연약할 뿐이었습니다. 과거엔 왕 앞에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던 대신들은 일본의 힘을 빌려 왕 앞에서 오히려 큰소리쳤습니다. 왕실에서 있었던 비밀스러운 일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일반인들이 가지 못하는 최고급 술집에서 그들이 자랑삼아 왕이 내 앞에서 벌벌 떨었다는 것을 떠들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조선의 양심이라 불리는 선비들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이들에게 수염을 잘리는 수모를 참지 못해 스스로 자결하는 이들도 생겼습니다. 뜻 있는 사람들은 몸은 움츠려 있을지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겨울을 향한 뜨거운 저항을 나름대로 방식으로 쏟아냈습니다.
언제쯤 우리 민족에게 봄 처녀의 선물이 찾아올지 한탄하며 기다렸습니다. 끝나지 않은 일제 강점기의 길고 긴 겨울의 터널에서 틈틈이 봄 처녀의 소식은 전해져 왔습니다. 우리 민족의 영원한 누나 유관순은 어떻게 보면 암흑의 터널에서 아직 피지 못한 봄 처녀를 상징하는 희망의 나비 자체였습니다.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은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내 인생이 피워 낼 꽃은 무엇인가?
내 인생을 빛낼 봄 처녀,
나는 오늘 그녀를 기다립니다.
박심원 목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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