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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복병 伏兵 은 문제 될 것이 없다

hherald 2010.07.17 20:33 조회 수 : 10905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것이지만 이런 일에도 복병伏兵이 있다니...
우리 집은 이 지역에서 아름다운 길로 소문난 ‘디 에비뉴’와 ‘솔즈버리 로드’가 연결된 길목의 끝자락에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디 에비뉴’의 정면에는 멋진 교회가 있어 그 운치를 더한다. 볼 때마다, 고흐의 ‘오베르의 교회’를 연상하게 된다.

봄이 되면 길가로 벚꽃이 만발하고, 여름이 되면 큰 나뭇가지들이 늘어져 아치(Arch)가 된다.아내는 그 길을 통과해서 가게 되는 우리 집을 좋아한다. 참 소박한 여자다. 허영심 많은 여자로 태어났다면 ‘디 에비뉴’를 그냥 통과해야 하는 인생을 구시렁대며 불평하고 있을 텐데...

 

사실 ‘디 에비뉴’도 좋지만 나는 예쁜 공원 두 개를 끼고 있는 ‘솔즈버리 로드’를 더 좋아한다. 그 길에 있는 집들은 한결같이 가든이 깨끗하고 정갈하다.

시절을 따라 사시사철 끊임없이 꽃이 피도록 봄 여름 가을꽃을 종류대로 심어놓은 집들도 있다. 그렇지만 아내와 나는 ‘Ryegrass’를 섞지 않고 ‘Bentgrass’를 좀 더 많이 섞은, 종자 좋은 잔디로 심플하게 꾸며놓은 잔디정원을 좋아한다.

사실 그렇게 꾸미려면 꽃을 심는 것보다 손이 더 많이 가야 한다.

보기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미터기를 달아 물을 쓰는 만큼 수도세를 내야 하는 집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바로 그 길과 연결된 ‘커딩턴 에비뉴’가 우리집 골목이다.

400미터 직선도로라 한 밤중에 급 가속을 하는 미친놈들이 많다.

그리고 그 길목에 초등학교가 있는데 바로 그 맞은 편에 우리 집이 있다. 마지막으로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한 가지 더 추가하게 되는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맞은 편 집들 중에서 앞 가든이 제일 지저분한 집이 바로 우리 집’이라는 것이다.

이사를 와서 보니 앞 가든이 별났다. 전 주인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가든 바닥에 틈새가 있는 비닐을 깔고 그 위에 자갈을 부어놓은 것이다. 더구나 바닥은 차를 세워놓는 공간보다 30cm나 가라앉아 있었다.

 나름대로 모양을 낸다고 그 한 가운데는 수국을 심어 놓았다. 그래도 수국은 꽃 색깔이 괜찮은 것을 골라 심어 꽃이 피는 7월 한 달은 그나마 봐줄만했다.

옆집과 경계선에는 볼품없이 가지를 늘어뜨린 향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벌써 이사 온지 8년이 지났다. 처음부터 볼썽사납던 앞 가든은 더 흉물 맞게 방치되어 언제부턴가 이웃들의 눈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따가운 이웃의 눈총 때문에 시작한 일은 아니다.

며칠 전 산책을 하다가 잔디로 잘 꾸며진 어느 집 앞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아내를 봤다.

큰 집에 시선이 묶였다면 절망이었겠지만 가든에 묶인 아내의 시선쯤은 내가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인터넷을 뒤져 망가진 가든을 정리하는 방법들을 찾아보았다.
그 다음날로 팔을 걷어붙이고 바닥에 깔린 비닐을 걷어냈다.

 한 가운데 있던 수국은 뒤 마당으로 옮겨 네 군데로 포기를 나눠 심어놓았다. 반나절이나 톱질을 해서 향나무도 잘라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5톤의 흙(Top Soil)을 부어 35cm쯤 바닥을 높여 앞 마당의 전체적인 레벨을 맞췄다. GCSE시험을 끝낸 아들놈이 있어 바닥을 고르는데 한결 도움이 되었다.

삽질을 하는 나를 바라보는 이웃들의 반가운 표정들이 보인다. 옆집 마크는 가드너들 다 굶어 죽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대체로 종자가 좋지 않은 ‘Turf-잔디모종’보다는 정성이 많이 들지만 씨를 뿌리는 것이 낫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대로 종자 좋은 씨앗을 넉넉히 주문해서 뿌렸다.

 

사흘 만에 흉물 맞던 가든을 깨끗하게 바꿔놓았더니 직장에서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던 아내의 표정이 환하게 살아난다. 
가장 형편없던 가든을 바꾸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돈이 있어야 해결 될 문제라고 생각하며 한없이 미뤄두었는데 모든 일이 돈으로만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결단과 열정과 노력이 없었던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망가진 내 인생을 바꿔줄 사람은 없다. 내가 결단하고 팔을 걷어붙이지 않으면 ‘맞은 편 집들 중에서 가장 지저분한 집이 바로 우리집’이 되듯 내 인생이 그렇게 되고 만다.

이제 뿌려놓은 잔디가 싹이 돋으면 아내가 그렇게 꿈꾸던 깨끗한 잔디정원이 완성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동네 고양이들과 여우들이 퇴비를 섞은 흙 냄새 때문에 여기저기 바닥을 파헤쳐 정원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것이지만 이런 일에도 복병이 있다니...
그러나 문제 될 것은 없다. 이런 천적들을 다 초월해서 아름다운 잔디정원을 만든 사람들이 우리 이웃 사방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게 드라마틱한 우리들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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