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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구정'이 아니라 '설날'입니다

hherald 2019.02.03 17:33 조회 수 : 3790

 

1895년은 우리 역사에 치욕과 굴곡이 많이 남은 해인데 '설날'의 수난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으로 들어선 김홍집 내각은 을미개혁으로 조선의 여러 제도를 바꾸는데 그중 하나가 태양력의 사용이다. 고종은 태양력을 공식 채택했고 이에 따라 1895년 음력 11월 16일 바로 다음 날이 1896년 양력 1월 1일이 됐다. 우리 역사에 1895년 11월 17일부터 12월 31일은 사라졌다. 양력 1월 1일을 ‘설날’로 지정했다. 그렇다고 당장 음력설이 사라졌던 것이 아니다. 국민은 모두 음력설을 지냈다. 양력설은 그냥 휴일이었고 왕실에서도 음력설에 행사를 했다.

 

 

1907년 순종 시절, 이토 히로부미 친일 내각의 총리대신 이완용은 "국가가 태양력을 이미 쓰니까 음력설 행사를 이제 하지 말자"고 순종에게 제안해 허락을 받아냈다. 학교에서는 신정 때 10일 방학을 하고 구정에 시험을 치게 했다. 관공서와 기업에서는 신정이 공식 휴일이 되고 구정에는 무조건 일을 하게 했다. 그래도 구정을 지내는 풍습이 사라지지 않자 음력설에 방앗간에서 떡을 못 만들게 하고 설빔으로 흰옷을 입은 이들에게 먹물을 쏘았다고 한다. 이처럼 일제가 우리 민족 전통의 뿌리를 뽑으려 드니 국민 저항은 오히려 더했다. 그래서 양력설을 '왜놈 설'이라며 거부했고 윤극영 선생이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노래까지 만들었다.

 

해방됐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이중과세(二重過歲)’를 금지한다며 신정을 3일 연휴로 하고 구정을 국경일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음력설은 우리 민족의 수치’라는 표어까지 만들었다. 박정희 정권은 극장 광고물에 '구정 프로'라는 표현을 못 쓰게 하고 떡집도 단속했다. 이승만 보다 더 심하게 구정 열차 증편도 금지했다. 전두환 정권도 비슷했다. 그러다 보니 구정에는 공무원만 빼고 모든 가족 친지가 모였다. 결국 1985년에서야 음력설은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짜리 공휴일이 된다. 당시 집권여당에서는 ‘조상의 날’이라는 명칭을 요청했다고 한다.(음력설을 민속의 날이란 명칭으로 하자는 안은 박정희 정권 당시 나왔다) 그런데 명칭이 '설날'이 아니라 '민속의 날'이고 하루만 쉬니까 ‘반쪽 설’로 불렸다. 국민 불만이 높았다는 방증이다.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공휴일에 연휴까지 제대로 갖춘 것은 1989년, 군사독재 정권이 물러난 이후다. 벌써 30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신정'이란 말에 구분해서 부르던 '구정'이 아니라 당당히 '설날'로 불러야 한다.

설의 수난이 민족의 수난, 특히 서민의 수난처럼 보인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1967년부터 1988년까지 음력설이 공휴일이 아니었다. 이 점에서는 남북이 어찌 이리 같은지. 김일성 주석이 1967년 '봉건 잔재'를 뿌리 뽑는다고 1967년에 양력설을 제외한 모든 민속명절을 없앴다. 무엇이 '봉건잔재'이고 무엇이 '전통'인지 서민은 아는데 1895년부터 1989년까지 100년이 넘게 최고 지도자층은 몰랐다는 말이다. 

 

100년 넘게 짓밟아도 죽지 않고 생명을 이어오다 화려하게 부활한 설날. 설은 새해 첫날인 만큼 그 출발의 희망만큼은 서민들의 뜻대로 하고 싶다는 의지가 설을 지키고 살려낸 것 아닐까.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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