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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몇 년 새 크리스마스 Christmas를 크리스마스라고 부르지 말라는 분위기가 확산한다. 올해는 유럽연합(EU)이 직원 간 종교적 차별을 배제한다고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포용적 소통을 위한 가이드라인'이란 것을 발표하면서 사용 금지 용어로 규정했다. 크리스마스를 크리스마스라고 부르지 말라니, 그럼 뭐라 하나, 홀리데이 holiday라고 부르라 권고한다. 그러자 교황청 심기가 불편하다는 반응이 곧 나왔다. 차별 금지는 옳지만, 다양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지적에 유럽연합은 '앗 뜨거라', 가이드라인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며 슬그머니 철회했다.

 

종교편향적이라는 이유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사용하지 말자는 진보 단체와 기독교계 사이의 싸움을 '크리스마스 전쟁'이라고 부른다. 주로 미국에서 벌어진다. 진보주의 시민단체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미국에서 특정 종교의 교주 이름이 들어간 인사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크리스마스'는 '크라이스트(christ)'와 '메스(mass)'의 합성어로 구원자는 당연히 예수를 지칭하기 때문에 종교편향적 용어라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크리스마스'라는 용어가 사라져가자 미국 기독교는 '메리 크리스마스' 고수 운동을 전개한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해도 괜찮아요(It's OK to say Merry Christmas)’라는 내용의 배치를 만들어 교회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진짜 전쟁이라고 할 만큼 치열한데 크리스마스라는 용어 대신 홀리데이를 사용하는 가게나 단체의 명단을 공개해 불매운동을 전개하기도 하고 한 쪽에서는 그런 가게를 찾아내 홍보하고 물건 많이 팔아주자고 방문을 독려한다.

 

앞서 봤듯이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미사', '메리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지 예수가 탄생한 날은 아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 축제를 금지했었다. 성경에도 없는 12월 25일은 그들에게 그냥 많은 평일 중 하루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주민들은 동지 축제의 전통에 따라 술 마시고 흥청거리며 술에 취해 서로 반갑다는 인사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고함쳤다. 따라서 술 취한 민중의 저속한 인사였던 '메리 크리스마스'를 청교도 지도자들은 금지했지만, 그런다고 안 할 사람들인가. 소비를 권장하는 19세기의 상업적 분위기와 맞아떨어져 겨울이 오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가 먹고 마시고 돈 쓰고 놀자는 의미의 최고 인기 구호가 됐는데 잘 아는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라는 캐럴도 '메리 크리스마스' 유행에 큰 몫을 했다. 결국 교회가 대세에 따라 메리 크리스마스를 허용한 것은 1940년대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밀려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다른 종교 신자나 무신론자를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Merry Christmas가 Happy Holidays로 많이 바뀌고 있다. 물론 홀리데이도 holy day(성스러운 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종교 색채가 덜 느껴진다고 이 표현을 많이 쓴다.
영국 왕실은 'Happy Christmas'라고 한다. 반드시 'Merry' 대신 'Happy'를 쓴다는데 과거 청교도 지도자들이 싫어했듯이 'Merry'에는 하층 계급의 소란스러운 천박함이 느껴진다는 걸까. '크리스마스'가 퇴출당하기 전에 'Merry'가 고상한 이들에게 이미 구박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하긴, 홍길동전도 아니고, 유럽연합조차 크리스마스를 크리스마스라고 부르지 말라는데 원.

 

 

 

헤럴드 김 종백단상.JPG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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