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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영국한인사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지금부터 약 110년 전, 1910년 런던 화이트 시티에서 일영박람회日英博覧会 Japan-British Exhibition가 열렸다. 지금 BBC 사옥이 있는 자리에 거대한 전시관이 들어섰다. 1910년 5월 14일부터 10월 29일까지 무려 5개월 넘게 박람회가 열렸고 800만 명이 다녀갔다. 당시 런던 인구가 700만 명이었다.
일본이 이런 박람회를 한 이유는 영국과 유럽에 '나도 강대국이다'라는 국가 이미지를 심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시한 제품으로 영국과 무역을 하고 싶었다. 

 

일본은 박람회 한쪽에 동양관을 만들어 한국관, 대만관, 일본 원주민 아이누관을 두었다. 이들 나라와 국민, 주민들은 일본에 식민통치를 받았다. 이 전시관에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일본의 통치를 받음으로써 제대로 된 문명국으로 발전했다고 느끼게 하려 꾸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만 원주민과 일본 아이누들을 직접 데려와 그들의 고향 집과 함께 전시했다. "이런 '야만'을 이런 '문명'으로 바꿔놓은 것이 일본제국주의의 힘입니다"라고 알리듯이 전시했다.

 

아시다시피 1910년은 경술국치가 있은 해다. 조약안이 공포된 날이 8월 29일이니까 박람회가 열리는 도중에 치욕스러운 조약이 맺어졌다. 총리대신 이완용이 경술국치 조약에 앞장섰는데 이 매국노는 일영박람회에서 우리가 손해를 보는데 한몫을 했다. 대한제국은 박람회에 참가하고 싶지 않았다. 일본 얼굴 세우려고 한국 깎아내리는 곳에 왜 가느냐고 모두가 반대했다. 게다가 박람회 비용의 반을 부담하라고 하니(한국관 전시장은 전체의 백분의 일 정도 쓰는데) 더더욱 갈 수 없었다. 그런데 이완용이 나서서 왕실을 쪼아 결국 비용을 부담하고 박람회에 참가하게 된다. 

 

해머스미스 아카이브 Hammersmith & Fulham Archives and Local History Centre에 당시 관련 자료들이 있는데 한국관의 모습은 작은 사진 한 장이 유일하다. 전통 양식의 문이 있는 입구에 KOREA 명판이 달려있다. 조선의 궁궐 모양 전시장 지붕에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잡상 雜像까지 만들어 올렸다. 이런 규모의 전시장 공사를 하려면 조선에서 기술자가 왔을 가능성이 높다. 최초로 조선 기술자가 영국에 들어와 건축물을 새운 사례가 되는데 관련 기록이 없어 단지 추측만 할 뿐이다.

 

박람회를 한다고 전시할 물건을 내라고 하니 한국은 마지못해 조달했다. 문제는 전시회가 끝나고 전시했던 물품들의 처리에 관한 것이다. 애초에 팔려고 내놓은 것은 팔리면 팔고 안 팔리면 갖고 오고, 전시만 하려던 것은 전시가 끝나면 다시 갖고 오는 것이다. 간혹 외교상 목적으로 기증하기도 한다. 한국관에 전시된 물품이 어디로 갔는지 찾아보니 박람회 전시를 책임진 일본인 관료가 영국박물관에 48점, 큐가든에 9점을 임의로 기증했다. 그러니까 이들 박물관에 1910년 컬렉션으로 편입된 한국 도자기 등은 주인(대한제국) 대신 일본이 생색낸 것이다. 씁쓸하다. 

 

1910년 런던, 일영박람회의 한국전시관은 완전히 밑진 장사요, 우리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였다. 1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이도 잊어서는 안될 영국한인사의 한 부분이라 간단히 소개해본다.

 

 

 

헤럴드 김 종백단상.JPG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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