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일서란 매일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고, 일일일고는 매일 한 편의 원고를 쓴다는 의미입니다. 매일 책 한 권을 완독하기보다는 매일 책을 읽는다는 의미에서 일일일책이라 하기도 하고 매일 글을 쓴다는 의미의 옛말은 일일일필입니다. 과거에 글을 쓴다는 것은 붓을 들어야 하기에 하루에 한 번 붓을 든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현대는 손으로 쓰는 글보다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스마트폰 자판을 눌러서 글을 기록하는 것을 즐겨하는 편입니다. 예전에는 서예를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붓글씨 대해도 종종 개최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벼루를 준비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시대가 좋아지면서 먹물을 판매하는 것으로 발전하였지만 지금은 특별한 사람 외에는 붓을 들어서 글을 쓰는 사람을 만나 볼 수 없는 시대입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먼저 필체가 좋아야 했습니다. 시대가 급반전되는 계기는 컴퓨터의 발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가 보편화될 수 되도록 연구·개발했던 위대한 인물들을 천재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붓이나 펜을 들어 글을 쓰기보다는 컴퓨터 자판을 통해 글을 썼던 분들입니다.
컴퓨터를 많이 다루다 보면 필체는 악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필체가 좋지 않은 사람을 일컬어 천재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글을 잘 쓰지 못하는 모든 사람이 천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 천재들은 컴퓨터 앞에서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앉아서 연구했기에 당연히 필체와는 거리가 멀어진 것입니다.
필체가 좋지 않은 것은 천재의 특징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글을 많이 쓰고 연습하다 보면 당연히 필패는 보완되어 발전하여 보기 좋은 글이 되기도 합니다. 필체가 좋지 않은 것은 자랑삼아 천재는 모두 글을 잘 못 쓴다는 변명은 삼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글을 잘 쓸 수는 없습니다. 이는 마치 축구공을 던져 주었더니 천재 축구 선수가 되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중남미 월드컵을 시청하면서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한 뼘만, 한 발만 앞섰다면 골로 연결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월드컵이라는 세계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그는 탁월한 축구 천재임이 분명합니다. 처음부터 공을 잘 찬 것이 아니라 연습하고 또 연습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달란트를 뛰어넘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러합니다. 글을 많이 쓰면 쓸수록 필체가 좋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현대는 펜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자판을 두드려 글을 완성하기 때문에 필체가 악필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한 글이 아니라 자기 영혼이 담기고, 마음과 생각이 집결되어서 글을 쓰면 쓸수록 자기 정화작용 이루어집니다.
"수필은 거창한 이야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하루, 스쳐 지나가는 생각, 마음속에 남아 있는 기억 하나면 충분합니다. 아침에 창문을 열었을 때 느끼는 공기의 온도, 길에서 우연히 들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 오래된 사진을 보며 떠오르는 옛 기억 같은 것들이 모두 한 편의 수필이 될 수 있습니다.
수필은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문학입니다. 시가 감정을 압축해 노래하는 장르라면, 소설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을 그려내는 장르라면, 수필은 삶 그 자체를 말하는 글입니다. 그래서 수필에는 진솔함이 중요합니다. 꾸미지 않는 말, 있는 그대로의 마음, 그리고 삶 속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 수필을 빛나게 합니다." (최원현/내 삶이 문장이 될 때 -프롤로그-/해드림출판사 2026)
글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글을 읽는 행위는 일종의 인풋과 정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새로운 지식을 채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는 아웃풋 과정입니다. 채운 것은 나만의 언어로 소화하여 세상에 내놓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을 겸하고 있는 사해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입니다. 과거에는 해저 380미터로 기억했는데 최근에는 마이너스 430미터로 더 낮아졌습니다. 요르단강에서 흘러 내려온 물은 더 이상 배출할 곳이 없어서 고여 있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읽는 것만을 반복하게 되면 지식의 사해가 될 수 있기도 합니다. 움직일 수 없는 믿음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살다 보면 이론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모르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박식합니다. 그런데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 되기도 합니다.
이론적으로 하는 말 더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타인의 삶에 대한 훈수를 둘 수 있을지라도 자기 삶은 잘 보이질 않는 법입니다. 독서를 통해 인생의 지혜를 배웁니다. 타인이 살아온 삶을 독서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든가 혹은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함을 일깨우게 됩니다.
일일일서 일일서고,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행복한 인생입니다. 분주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책을 읽는 행위와 글을 쓰는 것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우리나라 독서율은 38.5%라는 통계입니다.
교과서나 학습참고서를 제외한 일반 도서를 단 한 권이라도 읽은 성인이 열 명 중 제명이 안 된다는 통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성인의 60%는 일 년에 책 한 권을 읽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 독서량은 약 70%지만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절반에 겨우 미친다는 통계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타인에 의해 조종당하게 됩니다. 스스로 지혜를 키울 수 있는 것이 독서이고, 읽은 것을 저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써 표출해 낼 때 자기 성찰을 물론 지혜를 얻을 수 있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