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익산에 아가페 정원이 있습니다. 500여 그루의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하늘을 찌들 듯 높이 솟다 병풍을 두르고 있는 전라북도 민간정원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거인 연산홍이 불을 꽃을 피워 담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작은 카페에서 수녀님이 내려 주시는 커피를 마시며 하늘로 부터 날아오는 향기에 취할 수 있습니다.
조금 느리게 걷는 것도 괜찮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음을 심쿵하게 하는 글귀가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 느리게 걷는 것도 괜찮음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천천히 걷습니다. 너무 천천히 걸어서 뒷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누가 뭐래도 내가 걷는 걸음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기에 가장 느린 걸음을 걷습니다.
좀 느리게 걸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입버릇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이 날라 간다는 말을 합니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은 초 스피드로 흘러만 갑니다. 시대의 어른이신 김동길 교수님은 나이만큼 시간이 흐른다 했습니다. 삼십대는 삼십킬로로 시간이 흐르며 사십대는 사십킬로, 오십대는 오십킬로 그렇게 흐르다 육십이 되면 육십킬로가 아니라 알파킬로가 붇는다 했습니다. 칠십과 팔십에는 미지수 알파 킬로가 붙어서 속도를 가늠할 수 없다 했습니다.
오늘이라는 현실은 더디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대하무성, 큰물은 소리를 내지 않고 흐릅니다. 오늘은 더디 가지만 한 주일은 쏜살같이 흘러만 갑니다. 때론 한 주일은 더디 흐르는 것 같은데 한 달은 순간에 흘러갑니다. 물리적으로 시간은 정확하게 같이 지나갈 터인데 생각하는 것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육체가 받아들이는 능력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시간을 붙잡아 둘 순 없을까요?
시간을 붙잡아 둘 순 없을지라도 흐름을 더디게 할 순 없을까요?
시간을 더디게 할 수 없을지라도 잠시 시간이 멈춤을 느낄 순 없을까요?
역사적으로 달이 멈추고 태양이 멈춘 사건은 존재합니다. 팔레스타인 기브온 전투에서 있어던 사건입니다. 당시 그 땅을 지배했던 미디안 부족들은 연합국을 형성하여 이스라엘을 침공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총 지휘했던 여호수아 장군은 군대를 이끌고 미디안 족속들과 대 혈투를 벌였습니다. 승리는 이스라엘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미디안 5개부족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하려 할 때 여호수아는 명령합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너도 야일론 골자기에 머물러 있어라
해가 지며 어둠이 순식간에 덮쳐서 전쟁을 마무리 할 수 없기에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외친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태양은 멈추었고 달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기에 이스라엘의 대 승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과학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공전과 좌전을 하는 태양이 멈출 수 있을까 많은 연구와 검토를 하였습니다.
2017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구팀이 이 기록이 사실임을 밝혀냈습니다. 다만 물리적 멈춤이 아니라 일식 현상이라는 사실일 것이라 했습니다. 사건은 1207년 10월 30일에 있었던 실제적 일입니다. 이날 금환일식이 있었으며 해와 달이 궤도를 멈춘 것이 아니라 일식으로 인해 빛을 잃은 현상을 기록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2003년에 개봉된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의 주인공 짐 캐리는 신이 되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은 이룰 수 있습니다. 커피를 시켜놓고 홍해가 갈라지듯 커피가 갈라지게 하는 능력을 시험해 보기도 하고 장풍을 일으켜 지나는 여인의 치마를 들어 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여자 친구를 위해서 달을 끌어당겨서 거대한 달을 아파트에 매달아 두기도 합니다.
개인을 위해, 혹은 한 민족을 위해 지구의 좌전과 공전을 멈출 수 없습니다.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그 능력을 개인적으로나 어느 특정 집단이나 국가를 위해 사용할 순 없습니다. 한쪽을 위해 태양이 멈추고 달이 멈춘다면 지구촌 반대편에는 심각한 자연재해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짐 캐리로 그렇게 달을 끌어당겨 여자 친구를 위해 능력을 과시했지만, 뉴스에서는 자연재해에 대해 연일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시간은 공평한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빨리 흐르거나 혹은 더디 흐르게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느끼는 감정으로 빠르게 흐르기도 하고 더디 흐르기도 합니다. 대하무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큰 물은 소리를 내지 않고 흐른다'입니다. 작은 물은 소리를 냅니다. 빈 수레가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떠들썩하게 주변을 시끄럽게 하지만 결과적으로 얻어지는 묵직한 열매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를 추월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잠시 비켜 주면 됩니다. 큰물은 소리를 내지 않고 흐릅니다. 작은 시냇물보다 유족은 더 빠릅니다. 주어진 일상에서 묵묵하게 푯대를 향해 흘러가는 대하무성, 그런 삶을 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