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울림, 멈춤의 미학
삶은 때론 멈춰야 합니다. 멈춤은 게으름도 아니고 후퇴도 아닙니다. 최첨단 문명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무조건 쉼 없이 달려야 하는 전진 주의 늪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빨리 달리다 보면 목적지의 변경과 오히려 방향을 잃기에 십상입니다. 인간은 앞으로만 달려갈 수 있습니다. 결코, 뒤를 향해 갈 수 없습니다. 빨리 달리기 위해서 멈춤을 반복해야 합니다.
최신 자동차는 속도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빨리 달릴 수 있는 성능을 가졌습니다. 최대 성능을 시험할 일반 도로가 없을 만큼 속도계는 하늘을 치솟을 만큼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언제든 멈출 수 있는 안전한 장비가 장착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동차에 멈출 수 없다면 그 자동차는 사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달릴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곧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됩니다. 달려야만 퇴보되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 많이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고요하게 멈추어 있는 시간을 용납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멈춤의 상태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초조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불안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목적은 분명하지만, 천천히 걸을 때가 있어야 합니다. 천천히 걸을 수 있어야 빨리 가야 할 때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게 됩니다.
페이스북의 벗님께서 의미 있는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남루한 옷을 입은 작은 소녀가 거울 앞에 섭니다.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옷은 일년 이상을 빨지 않은 더럽고 추잡스럽습니다. 소녀는 신발도 신지 않았습니다. 머리는 언제 감았는데 떡이 져 있습니다. 손에 든 가방은 쓰레기처리장에서도 버려질 만큼 더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절세미녀의 비즈니스우먼입니다. 사람을 매료시킬 만큼의 외모에 세련된 복장과 높은 하이힐을 신고 아주 중요한 문서가 담긴 서류 가방을 들고 지난날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미소짓고 있습니다. 가난이 있었기에 미래를 꿈꾸게 됩니다. 가난 때문에 더 큰 세상을 꿈꾸며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인생은 어렸을 때나 성장했을 때는 같은 존재이긴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곤충에게만 탈피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옛 자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는 것은 쉼 없이 반복됩니다. 어제의 내가 부끄러운 것은 그만큼 오늘은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일기를 읽기가 두려운 것은 생각하는 사고력이나 세계관의 변화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오십보백보의 틀에 있을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나 좀 늦어지는 사람일지라도 역사의 한 선상에서 보면 조금 앞서 지고 늦어질 뿐이지 큰 차이가 나지 않게 됩니다. “격고명금”이란 말이 있습니다. 옛 군사용어입니다. 북을 치면 진격하고 징을 치면 후퇴하라는 신호입니다. 지금은 실제의 전쟁 기간은 아닐지라도 삶은 전쟁이란 표현을 많이 합니다. 전쟁은 전진만 할 수 없습니다. 전진을 위해 후퇴가 필요합니다.
북소리를 듣고 징 소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계절의 소리도 있지만, 내면에서 울리는 북소리와 징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면의 소리를 듣기 위해 고요함 속에 자신을 노출해야 합니다. 독서를 하기도 하고, 걸으며 묵상하기도 합니다. 여행을 통해서 내면의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세상의 소리를 줄여야 내면의 소리가 커집니다. 반면 세상의 소리가 클수록 내면의 소리는 숨을 죽이게 됩니다.
앞을 향해 달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달릴 수 없어서 마음 상할 때도 있습니다. 달리기 위해선 멈춤의 미학이 필요합니다. 멈출 수 있어야 달릴 수 있습니다. 인생의 길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길이가 다른 만큼 주어진 시간은 소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시간이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전부일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지나가기를 기다려지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위해 달려야 하며 그 달림은 멈춤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달림은 시간과 시간의 연결입니다. 멈춤 역시 시간과 시간의 연결이어서 더 나은 양질의 삶을 만들어 냅니다.
박심원 목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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