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가 안 된다, 배가 자주 아프다, 가스가 찬다, 위산이 역류하고, 신경 쓰면 체하고 위장이 뭉친다, 과민성 대장이다….’ 임상의 현장에서 너무나 자주 접하는 소화기 증상입니다. 한의학 진단의 특성 상 그 어느 부위가 아프더라도 인체 전반의 상태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소화기 상태의 체크는 필수입니다. 소화기 질환은 소화기 증상으로 끝나지 않고 인체 전신에 파급 효과가 대단하기 때문이며 많은 만성 질환, 난치 질환의 기저에 소화기 문제가 먼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위장관이 병든 상태가 만병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는 점입니다.
소화되지 않은 물질은 나를 공격한다
입에서 항문까지 이르는 튜브 모양의 소화기 조직은 인체 내부를 관통하고 있으나 피부처럼 인체 내부와 외부가 만나서 상호 작용하는 장소로서 고분자 물질이 분해되어 인체에 들어올 수 있도록 선택적으로 흡수되고 원치 않는 물질은 배설이 결정되는 곳입니다. 위산과 각종 효소로 처리된 음식물은 소장 융모에서 인체 내부로 들여 보낼 것인지 아닐지 결정됩니다. 소장은 길이 6-7m에 달하지만 표면적은 무려 테니스 코트 넓이로서 음식물과 인체 혈액과의 사이에는 세포 하나 정도의 관문이 존재하는데 이 좁은 관문의 지능과 튼실함이 결정적입니다. 대단히 선택적인 흡수가 관건으로서 인체에 들어오지 말아야 할 물질, 예를 들면 소화 안된 고분자 물질, 세균이나 곰팡이, 유독 물질이 여과 없이 들어오거나 소장 융모 세포를파괴하고 인체 내부로 들어오는 상태가 문제로서 세간에서는 ‘Leaky gut 증후군’, ‘새는 장 증후군’ 이라하여 소화기 문제가 전신 문제로 파급되는 계기가 됩니다.
인체 염증도와 독성의 증가
들어가야 하지 말아야 할 물질이 장벽을 통과하여 혈액으로 들어가면 혈액의 염증도가 높아지고 이는 위장관 뿐만 아니라 인체의 어느 부위에서나 염증 상태로 발현할 수 있습니다. 아토피 피부염을 비롯 각종 점막의 염증, 알러지 상태가 대부분 이러한 기전을 가지기에 몸에서 거부하거나 소화가 잘 안되는 식이를 피하고 처방에는 위장관의 점막을 재건할 수 있는 약재가 들어가야 인체 전반의 염증도를 근본적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더욱 심한 경우 면역 과다 항진 상태가 되어 이물질의 침입에 대항해 인체의 면역 세포가 대거 출동하는데 자신의 조직마저 이물질로 표식하여 맹렬히 공격, 파괴하는 상태가 되면 무시 무시한 자가 면역 질환의 시작입니다. 조직이 충분히 파괴되고 항체 검사를 해야 확진을 받을 수 있어 초기에 진단 받기 힘든데 제가 보기에는 요즘 자가 면역 기전에 의한 질환이 굉장히 흔합니다.
한의원에서 가장 많이 보는 질환인 갑상선 기능 저하 증상도 TSH수치나 T3, T4 수치 정도만 확인하고 저하라고 진단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자신의 면역 세포가 갑상선을 파괴시키고 있는지 갑상선 항체 검사까지 받을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가면역성 갑상선 질환인 하시모토 갑상선염으로 구체적으로 진단 받을 것이며 자가 면역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 장점막의 복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관절 조직의 경우도 염증이나 자가 면역에 가장 쉽게 부식, 훼손되는 부위로서 통증의 억제를 위해 진통제를 사용하여 위장관을 더욱 해치는 경우 염증 상태가 만성화되고 재생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장 상태가 안좋아서 신체에 불이 나고 있는데 화재가 나고 있는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관절염이 좋아진다거나 하는 법이 없습니다. 염증 상태에서 해방되고 신체 어느 부위든 새로이 재생시키고 물질적 토대를 공급하는 데에는 소화기의 충실함이 관건입니다.
횡격막을 넘어서! 뇌와 장의 밀접한 관계
뇌신경 전문의는 두뇌 문제가 장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힘들고 하루 종일 망가진 장 상태를 관찰하는 소화기내과 전문의는 이 상태가 두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나 점점 두뇌와 장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의 최적의 두뇌 발육을 원한다면 장을 해치는 음식을 먹이면 안되며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으로 장내유산균을 파괴해서는 안됩니다. 유아기의 항생제 노출은 성장기의 유전자 발현 양상에 영구적인 악영향을 미칩니다. 두뇌와 장 사이에는 미주 신경(vagus nerve) 라고 신경전달 직통 라인이 개설되어 있는데 소화가 안되는 상황은 두뇌에 악영향을 미치며 놀랍게도 두뇌 상태가 안좋아서 만성 소화 불량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성인 4명 중 한 명이 정신과 약물을 복용할 정도로 두뇌 질환이 많고 저희 의원에서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시중에서는 프로작 같은 항우울제로 두뇌의 세로토닌이나 여타 신경전달물질의 활성화를 높인다고 하나 우울증이 신경전달물질의 화학적 불균형에 의해 비롯되었으리라는 가설은 증명된 바 없으며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신경전달물질은 두뇌보다는 장에서 훨씬 많은 양이 생성됩니다. 최근에는 장의 염증 상태가 두뇌로 파급되어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학설이 점점 더 많은 학자들의 수긍을 얻고 있습니다. 맑은 정신과 행복감을 원하시는 분들도 장의 건강과 올바른 식이 선택에서부터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런던한의원 원장
류 아네스 MBAcC, MRCHM
대한민국 한의사
前 Middlesex 대학 부설 병원 진단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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