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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여성 비하, 그 자체가 '이류'다

hherald 2015.06.15 19:02 조회 수 : 1234

 


암 치료법 개발로 노벨상을 받은 영국의 박사가 여성을 비하하는 말을 했다고 대학 명예교수직에서 물러났다. 여성 비하 발언이 아니라 여성을 추행하거나 폭행해도 끄떡없는 한국 교수들과 비교해 '역시 영국'이라고 해야 할지, 그를 쫓아낸 그 대학의 저력에 감탄해야 할지.

팀 헌트 박사는 한국 학생도 많이 가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대학(UCL)의 생명과학과 명예교수였다. 그는 새로운 암 치료법 개발로 200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석학이며 2006년에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한국에도 자주 왔는데 여성 비하 발언이라고 문제가 된 것도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세계과학기자대회에서 여성 과학자들과 식사를 하던 중 한 말(본인은 가벼운 마음에서 한 실언이었다고 사과했다)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남성 우월주의자>라며 <여성 과학자들은 실험실에 있으면 남성 과학자와 사랑에 빠지고, 비판하면 울어 버린다>, <(여성들은) 마음을 산란케 해 동성 과학자들만 있는 실험실을 선호한다>고 했다. 

한 참석자가 이 발언을 트위터에 올렸고 여성 과학자들이 팀 헌트 박사의 성차별에 반발하고 나섰다. 연구실에서 특수 장비나 방진복 등을 착용하고 있는 자신들의 사진을 트위터 계정에 올리며 <우리 여자 과학자들은 세계를 구하느라 바빠 눈물을 흘릴 시간이 없다>며 그의 발언을 조롱했다.

사태는 여성 과학자들의 반발로 그치지 않았다. 영국 과학계 전체로 비판이 확산됐다. 영국과학협회 회장은 농담이었든 아니든 그의 발언은 문제가 된다고 했고 UCL 대학은 홈페이지를 통해 그의 사임을 알렸다. UCL은 성명에서 <우리 대학은 잉글랜드에서 처음으로 여학생들을 남학생과 똑같은 조건으로 입학시킨 곳이며, 이렇게 결말이 난 것도 양성평등을 위해 공헌하고자 하는 우리 대학의 노력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제아무리 노벨상 수상자라 해도 여성 차별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헌트 박사는 문제의 발언이 있기 몇 해 전 한국 UNIST 대학에 와서 <사람을 대할 때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나누는 것은 좋지 않고 상호 존경하는 게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대학에서는 총장이 있고 일하는 청소부가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책임을 다합니다. 사람과 관계는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여성 비하 발언을 한 모습과 사뭇 다르다. 그래도 결론은 사임이었다.

영국에서 여성차별은 인종차별과 동성애 혐오와 함께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비판받는다. 프리미어리그 CEO가 <집안에 여자 식구가 늘면 여성의 불합리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고 했다고 곤욕을 치렀고 축구 선수인 리오 퍼디난드는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 발언으로 3경기 출전 정지와 25,000파운드 벌금을 냈다.

우리나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누구보다 바른 성 인식을 가져야 할 공인들의 발언을 보라. 황교안 총리 후보자는 <부산 여자들이 드세서 부인 구타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박용성 전 중앙대학교 이사장은 <분 바르는 여학생들 잔뜩 입학하면 뭐하느냐. 졸업 뒤 학교에 기부금도 내고 재단에 도움이 될 남학생을 뽑으라>고 했다. 그래도 멀쩡하다. 

여성 비하, 여성을 이류로 묘사하는 국가나 민족이나 집단은 그 자체가 '이류'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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