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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노인(老人), 바뀔 운명에 놓인 단어

hherald 2012.06.20 16:07 조회 수 : 5690

노인(老人), 바뀔 운명에 놓인 단어



서울시가 ‘노인(老人)’이란 말을 대체할 새 이름을 공모한다.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란 뜻의 이 말보다 나이 든 이의 경험과 지혜에 대한 공경, 활동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가 담긴 쪽으로 새로운 용어를 만들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의도다. 사실 노인이란 말에는 모든 면에서 위축된 어떤 쓸쓸함이 묻어 있다. 창의적인 명칭이 나오면 좋겠다.

노인이란 말을 대체할 용어를 공모한 것은 서울시가 처음이 아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1998년에 했었다. 1999년이 UN이 정한 '노인의 해'였는데 이를 앞두고 명칭을 공모했다. 그때 가장 많이 응모한 용어가 '어르신' '선인(先人)' '경인(敬人)' 등이었는데 이 중에 '어르신'이 가장 많아서 이것으로 정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시가 공모를 하면서 '어르신' 같은 기존 명칭도 제안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젊고 활동적인 느낌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고 밝혀 '노인'의 대체 용어로 '어르신' 보다 더 활기찬 용어를 기대하고 있음이 엿보인다.

노인의 대체 호칭은 참 많이, 최근에는 부쩍 더 많이 연구되고 있다. 누구나 늙었다는 말을 싫어하는 데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섰고고,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나이도 70-74세가 되어야 한다니 노인이라는 표현이 지금의 추세를 못 따라가는 낧은 표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정부 기관에서 은년(銀年), 은인(恩人), 할님(할머님+할아버님)등을 대체 호칭으로 검토한 바 있다.

외국에서는 대체 호칭으로 많이 불린다. 1988년 미국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불리기 싫어하는 호칭으로 old man/old woman, aged person이 꼽혔다. 그래서 이제는 senior citizen, golden age로 불린다. 프랑스는 60세 이상자를 ‘제3세대층’으로 부르는데 이는 새로운 연령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고년자(高年者), 또는 50~60대를 익어 열매가 맺는다는 뜻으로 실년(實年)이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쓰고 있다. 실버(silver)라는 말도 미국이나 영국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만들어낸 말이다. 은발의 중후한 노년을 연상케 한다. 중국에선 50대 숙년(熟年), 60대 장년(長年), 70대 이상 존년(尊年)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2050년에는 우리나라 사람의 기대수명이 남자 85.1세, 여자 89.3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환갑을 넘기기 힘들었다는데 이제 인생 칠십은 옛말이 됐다. 그만큼 노인이란 말도 바뀌어야 할 때가 됐다. 노인(老人)은 바뀔 운명에 놓인 단어가 됐다.

노인이란 호칭도 호칭이지만, 노인을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소외 속에 방치해두고서는 무기력하고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도 호칭이 바뀌면서 함께 바뀌어야 할 것이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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